윤용택(제주대 철학과 교수)

  나라다운 나라, 제주다운 제주를 꿈꾸며 찬바람 속에 촛불을 든 지 1년이 되었다. 그 이후 대통령과 여야가 교체되면서 그동안 묻혀있던 부끄러운 민낯들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국민도 적폐에 점점 무감각해지고 서서히 피로감을 느끼는 것 같다. 화해와 상생이라는 이름으로 적폐를 청산하지 못하고 다시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면 우리 사회는 영영 가망이 없다. 우리사회가 한 단계 더 성숙하려면 적폐청산을 멈춰선 안 된다. 화해와 상생은 지난 과오를 철저히 밝히고 응보의 과정을 거친 다음에도 늦지 않다.

  일제강점기, 제주4.3,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세계 최빈국이었던 우리는 국민들의 피땀으로 압축 성장을 하였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식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데 익숙해졌다. 그 결과 우리의 국민총생산(GDP)은 세계적 수준이 되었지만, 양극화속도, 노동시간, 소득대비 등록금, 노인빈곤율, 자살률 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가 되었고, 최저임금, 환경점수, 남녀평등지수, 청소년행복, 출산율 등은 꼴찌 수준이 되었다. 경제기적은 이뤘지만 행복을 잃은 나라가 된 것이다. 이제 정부와 기업은 국민들의 피눈물을 닦아주고 고통을 해결하는 힘을 쏟아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성장이 곧 발전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성장과 발전은 구분되어야 한다. 성장이 어떤 것의 크기가 더 커지는 것이라면, 발전은 그것의 잠재력을 확장하거나 실현하면서 보다 더 완전하고, 더 위대해지고, 더 좋은 상태로 되는 것을 말한다. 성장이 양을 키우는 거라면 발전은 질을 높이는 것이다. 그리 본다면 우리는 지난 50년간 경제, 교육, 사회, 문화 등에서 눈부신 성장을 하였지만, 그에 걸맞게 발전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삶의 질은 오히려 더 떨어진 측면도 있다.

  국내총생산을 높이는 데만 힘을 쏟다 보면 범죄가 늘어나고, 가족이 해체되며, 빈부차가 심해지고, 자원이 고갈되며, 생태파괴와 환경오염이 심해지고, 여가시간이 축소되며, 사고가 빈번해져 의료비가 증가하고, 사회기반시설 수명이 단축되고, 외국자산에 의존하게 된다. 그리고 가사노동과 육아가 매우 중요함에도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양적 성장보다는 삶의 질을 생각하고 진정한 발전을 생각해야 한다. 성장의 목적은 발전이요, 경제(돈)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이어야 한다.

  예전에는 등 따습고 배부르면 행복했고, 텔레비전, 냉장고, 컴퓨터, 자가용 승용차를 갖는 게 소원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걸로 만족하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이 부족하여 고통스러워할까? 이제 더 무엇이 있어야 행복할까? 우리에게 부족했던 것은 성장이 아니라 발전이었다. 제주가 발전한다는 것은 제주를 더 개발하거나 양적 성장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제주의 잠재력을 확장하거나 실현하면서 보다 더 완전하고, 더 위대해지고, 더 좋은 상태로 되는 것을 말한다.

제주가 진정으로 제주다워질 때 제주의 가치가 높아지고 진정한 발전을 이루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양적 성장보다 질적 발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학자 허먼 데일리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용어는 오로지 ‘성장없는 발전’으로 이해될 때만 의미가 있다고 설파한 바 있다.

  우리나라가 한 단계 질적 발전을 하려면 지난날의 부족한 부분은 메우고, 드러난 문제점들을 시정해야 한다. 정부수립 이후 쌓이고 굳어진 폐단을 청산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현 정부 5년간만으로는 도저히 완성할 수 없다. 다음 정부, 또 다음 정부까지 꾸준히 적폐를 청산하고 부족했던 부분들을 메워갈 때 우리도 남부럽지 않은 나라가 될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발전이다.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