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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의 밝은 미래, ‘정석’을 만나다오한숙희의 자연 & 사람 그리고 문화-20
서귀포신문 | 승인 2017.11.09 09:34

“야, 참 잘생겼다”

우리 어머니는 제주도의 폭낭들을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잘생겼다는 표현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서귀포의 어르신들은 한라산을 보며 이렇게들 말씀하신다.

“저 산이 참 잘생긴 산이라! 내가 많이 다녀보진 않았주만 몇 군데 외국도 가봐신디 저만치 잘생긴 산이 엇어라”

“내 평생 저 산을 보며 살앗져게. 하루라도 안 보민 못살키여”

아하! 이쯤되면 한라산은 서귀포의 아이돌이다.

티비와 영화에 잘생긴 사람들이 왜 나오겠는가. 그 잘생김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젊은 친구들은 잘생긴 사람을 보는 것을 ‘안구정화’라고 까지 말한다. 정화! 그렇다. 맑고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힘, 한라산에는 바로 그런 힘이 있다.

“나가 할망신디 다 고랏쪄게”

서귀포 사람들에게 한라산은 곧 설문대 할망이다. 산이 아니고 신이다. 올라가서 그 정상을 정복한다고 표현되는 ‘산’이 아니라 살펴주고 챙겨주고 다 알아서 해주는 ‘신’이다(산과 신은 점 하나 차이네!). 그것도 할망이라고 표현되는 가깝고 편안한 신 말이다.

서귀포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한라산의 모양을 할머니가 누워계신 형상으로 인식하는 것이 어려웠다.

“언니, 저기 잘 봅서양. 오른쪽 흐름은 여자가 머리를 풀고 있는 것 같고 가운데는 머리 이마 코 턱 목선, 왼쪽으로는 살짝 가슴과 배가 있으면서 쭈욱 내려가는...... 딱 여자가 누워있는 거 같지 않수가?”

설명을 들어도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구 할머니 구름모자 쓰셨네, 거품 목욕하시네, 한라산에 구름이 감겨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저런 해석을 하기에 이르렀다. 날이 흐려 한라산이 또렷이 보이지 않는 날은? 아직도 주무시네. 한라산이 할라산 할미산 할미라는 것을 딱 믿게 된 것이다.

제주도를 만들었고, 척박한 시기에 모두를 먹여 살렸고, 수많은 인생들을 굽어보며 그들의 희노애락을 들어주었고 4.3의 학살과 피맺힌 울부짖음을 지켜보며 ‘살암시민 살아진다’는 통찰적 위로를 내려주었던 할망이 바로 한라산이다.

그러니 ‘내 평생 저 산을 보며 살앗쪄게. 하루라도 안 보민 못살키여’라는 표현은 잘생김을 봄으로써 기분 좋아지는 팬의 차원 너머 거기 의지하여 삶의 힘을 얻고 인생을 영위해가는 영적인 차원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이는 한 사람만의 것이거나 연세 높으신 어르신들만의 정서가 아니다. 50대 여성인 누구는 육지에 갔다 올 때마다 한라산을 향해 ‘할망 지켜줭 고맙수다’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고 하니 서귀포 사람들 속에 유전인자처럼 심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하여 한라산이 매일 보여야 서귀포에 사는 것이고 서귀포다움의 핵은 곧 한라산이다.

행정을 하거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서귀포가 발전을 하자면 높은 건물도 생겨야하니 한라산이 가려지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한라산을 시원하게 보려면 외곽으로 조금만 나가면 되지 않느냐고 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매일매일 집 앞에서, 그리고 항상 다니던 길에서 한라산을 보아왔고 할망께 가슴속 이야기를 다 아오던 사람들에게 한라산을 가로막은 높은 건물은 위압이며 차폐이고 단절이며 좌절이다.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라산 조망을 팔아먹게 하는 장사속에 밀려 평생을 봐 온 한라산을 잃은, 아니 뺏긴 사람들의 심정은 분노와 배신으로 부글거릴 수밖에 없다.

서울 시립대학의 정석 교수. 도시공학의 전문가로, 시민을 위한 도시 만들기에 주력해 온 그가 열흘 넘게 서귀포에 머물렀다. ‘좋은 사람들과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잘 지내다 간다’며 ‘설문대 할망의 보살핌 덕’이라고 말하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마을만들기란 곧 마음만들기’라고 갈파한 그는 서귀포 사람들의 정서 속에 할망과 한라산이 기둥으로 자리잡은 것을 진작에 간파한 것이었다.

“서귀포가 이렇게 가면 안 되는데... 아쉽고 안타까운 점이 눈에 띄죠. 그래도 아직까지는 남아있는 것도 적지 않으니까 그걸 잘 지키면 좋겠습니다. 서귀포는 튀는 사람보다 참한 사람들이 찾아와서 머물고 싶어 하는 그런 곳이거든요.”

그는 <나는 튀는 도시보다 참한 도시가 좋다>라는 책에서 ‘튀는’ 것과 ‘참한’ 것의 대조를 통해 시민들이 원하는 도시를 박학다식하게 설명한 바 있다.

‘자신의 집을 어떻게 짓고 관리할까는 매우 깊이 생각하고 노력하면서도 정작 그 집이 놓여있고 자신이 머물며 매일 숨쉬고 사는 도시경관이나 환경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면, 삶의 질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그의 뼈있는 통찰에 고개가 끄덕여 질 무렵, 그가 서귀포의 미래가 밝아지는데 힘을 보태겠다며 직접 그린 만화그림과 작은 봉투를 내미는데 완전 감동!(봉투의 금액을 보기 전 그 자체로 감동)

서귀포를 사랑하는 참한 시민이자 도시전문가인 정석 교수, 할머니는 이렇게 인재를 쏙쏙 뽑아다가 서귀포의 미래가 밝아지도록 등불을 하나씩 켜시나 보다.

오한숙희 / 여성학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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