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을 견딘 자들이 어떻게 역사로 귀환하는가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 중 삽화 (by 임연기) 사람들은 조기 울음소리를 듣기 위해 물속에 대나무통을 집어넣고 귀를 기울였다.-본문 중-

자산어보는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어류 백과사전이다. 나비박사로 제주의 석주명이란 이름이 떠오르듯 물고기하면 흑산도의 정약전(1758~1816)이다. 정약전은 동생 정약용과 유배길에 올라 44세의 나이에 사방이 바다인 검은 섬과 조우한다. 창살이나 다름없는 바다를 오롯이 바라본다. 어둡고 시커먼 섬은 어느새 신비롭고 아득한 어둠으로 가득하다. 눈 뜨면 마주치는 흑산도 앞바다의 물고기를 어느 하나 놓칠 새라 정밀하게 기록한다.

정약전은 바다에는 무수한 중심이 있다고 믿었다. 끝없이 변모하는 중심을 바라본 선비였다. 무수한 세월이 흐른 지금, 한 시인은 지상에서 추방당한 한 유배객의 삶을 추적한다. 부산에서 성장기를 보낸 손택수 시인은 갯내음 물씬 나는 글을 노 저어 이백년 전 바다를 항해한다.

 

(나의 고전 읽기 1)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손택수 지음/정약전 원저/(주)미래엔 아이세움 출판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는 정약전의 원문에 나오는 특징적인 어류들을 뽑아 소개한다. 한문을 번역한 원문을 발췌 소개하고 작가의 설명을 더했다. 원문의 의미 파악이 모호한 부분은 여러 판본을 참조하여 추정 정리했다. 각 장마다 아름다운 세밀화와 시를 곁들였다. 시적 감성은 ‘숭어와 슈베르트와 예수님’, ‘조기 울음소리는 서울까지 들린다.','가마우지 페루에 가서 죽다.' 등 소제목에서 드러난다. 정약전의 기록에 한승원의 ’흑산도 가는 길‘을 빗대어 점층시키고 ’내 귀는 소라 껍질. 바다 소리를 늘 그리워한다.‘ 지구 반대편, 장콕토의 싯구를 덧댄다.

정약전은 어보를 통해 병 치료와 현실에서의 다채로운 활용, 그리고 경제적 가치까지 염두에 두었다. 시를 쓰듯 물고기의 이름을 짓고 줄줄이 족보를 엮었다. 짱뚱어의 생김을 살펴 재치있게 철목어(凸目漁)라 했다. 따로 ‘짱뚱’과 유사한 한자음 長同을 빌어다 표기했다. 자산어보는 단순한 해양생물 백과사전이 아니라 작가의 시적 상상력을 돋우어 주는 책이었다. 

"영남산 청어는 척추가 74마디이고, 호남산 청어는 척추가 53마디입니다. "  현대의 수산학자들도 경이로워할 만한 관찰력과 치밀함을 소유했던 이 소년은 자산어보의 공도 저자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자주 등장한다. -본문 中-

이토록 놀라운 해양생물지는 척추의 마디 수로 청어의 산지를 구별해 내는 섬소년 창대의 영민한 관찰력과 섬사람들의 산 경험이 축적되어 씌어졌다. 정약전은 이를 인용의 방식을 통해 분명히 한다. 당시 양반들의 봉건적인 지적 풍토로 볼 때 하찮기 짝이 없는 평범한 인물의 이름을 밝히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가 실사구시 뿐만 아니라 양반, 상놈의 구별이 없고 만인, 만물이 중요하다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정약전이 죽은 이후 어보는 한 장 한 장 뜯겨져서 어느 섬집의 벽지로 씌였다고 한다. 정약용은 천신만고 끝에 죽은 형의 유고를 구하고 제자에게 필사케 한다. 이 책은 한 자 한 자마다 사람의 노고가 더해진 공동의 유산임에 분명하다.

"그는 눈을 감을 때까지 흑산도를 온몸으로 사랑했다. 흑산도의 바람과 파도 소리와 흙냄새 그리고 사람들의 눈빛을 몸속에 빨아들여 그의 살이 되게 하였다. "-본문 中-

“귀양살이하는 사람이 한 섬에서 다른 섬으로 옮겨 갈 때 본래 있던 곳의 섬사람들이 길을 막으며 더 있어 달라고 했다는 말은 우리 형님 말고는 들어본 적이 없다.”- 다산 정약용-

책은 멸종한 바다생물과 바다숲에 관한 이야기로 마친다. 지구 생명체의 기원이 된 바다 식물 김과 미역이 주인공이다. 

섬은 우리의 그윽한 수풀이니 진실로 한번 경영만 잘하면 장차 이름도 없는 물건이 물이 솟고 산이 일어난듯 할 것이다. -정약용 ' 경세유표' -

이백여 년 전 흑산도에는 흑산도에서만 볼 수 있는 바다새가 정말 있었는지 모른다. 멸종되어 버린 정약전의 수조처럼 지금도 아름다운 것들은 무심히 사라지고 있다. 한번 사라진 아름다움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미래의 바다는 지금을 어떻게 기억할까. 시멘트로 뒤덮여진 강정 앞 바다가 아른거려 고개를 떨군다. 이백 년 전의 탄식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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