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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극과 함께 사람이 돌아왔다홍창욱의 생생농업 활력농촌-18
서귀포신문 | 승인 2017.11.30 09:51
한은주씨의 공연 ‘모노드라마 자청비’.

농촌에서 나고 자란 젊은이라면 본능적으로 농촌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 부모님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라. 좋은 곳에 취직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좋은 대학’도 ‘좋은 곳’도 모두 대도시에 있다. 농촌에 남아 가업을 이으려는 청년도 많지 않지만 가업을 잇기를 바라는 부모도 많지 않다. 

본능적으로 농촌을 떠나고 싶어하는 나이는 아마도 청소년기일 것이다. 어릴 때는 농촌이 참 재미있는 곳이다. 과일을 몰래 따먹기도 하고 산속에 아지트를 만들기도 하고 여름엔 멱도 감는다. 동네에서 잔치라도 있을 때면 늘 아저씨 몇몇 분이 돼지를 잡았는데 그 구경이 재미났다. 정월대보름이면 달집을 만들고 집집마다 모인 아이들이 놀러 나와 노래자랑을 할 때도 있었다. 어릴 때는 모든 것이 신기했고 매일 매일이 신나는 일의 연속이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올라가며 읍내로 통학을 시작했고, 결국엔 도심지인 마산에서 자취를 하며 학교를 다녔다. 가끔 고향집에 가면 부모님 단감 농사를 돕는 것이 전부였고 그새 아이들은 도회지로 떠나고 마을은 점점 쇠락하여 이웃 할머니 돌아가셨다는 소식만 간간히 전해들을 뿐이었다. 그에 반해 도시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오락실은 하루 종일 열려 있었고, 시장에 가면 잔치 때나 먹던 잡채를 1년 내내 맛볼 수 있었다. 또래 친구들도 가까이 있어서 우린 늘 어울려 다녔다. 그렇게 나는 도시에 익숙해졌다. 

20년 만에 다시 농촌으로, 아무 연고가 없는 제주로 오니 어릴 적 그 재미있던 농촌이 아니라 가끔 고향에 가면 일만 하던 중고등학교 시절로 되돌아온 듯했다. 물론 점심 막걸리와 돼지 추렴이 빠질 수 없었지만 봄 되면 씨 뿌리고 가을이면 추수하는 똑같은 농촌일상이 왠지 나를 무료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중 연극인 한은주씨를 마을에서 만났다. 지난해 봄 콜라비 수확체험을 진행했는데, 그때 참여한 여성분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내가 6년 동안 매달 똑같이 반복해온 꾸러미 작업에 참여하여 우리 일을 도왔는데, 일하는 내내 웃으며 수다를 떨었다. 참 호기심이 많고, 밝고 명랑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연극인이었고 국제학교 교사로 있는 영국인 남편의 직장을 따라 제주에 왔다고 했다. 

그해 마침 영어교육도시에 살고 있는 100명의 외국인 교사에게 매주 꾸러미를 배송하는 일을 시작하게 되어 통번역이 가능한 능력자가 필요했는데, 영국 유학파인 은주씨가 우리를 적극적으로 도와서 초기 운영에 큰 도움이 되었다. 연극인이라는 본분으로 인해 우리 일에 발 벗고 나설 수는 없었지만 은주씨의 추천으로 명절 선물세트를 기업에 납품하기도 하고 은주씨가 갓 구운 브라우니, 스콘 등 맛있는 빵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좋았던 것은 그가 예술인이어서 그런지 자유분방하였고 사람을 대할 때도 스스럼이 없었다.  

그의 극단 ‘무브먼트 당당’이 서울에 있기에 내 평생 그의 연극을 볼 수 있을까 했는데 은주씨가 이번에 사고를 쳤다. 바로 우리 마을, 내가 일하고 있는 무릉외갓집에서 연극을 올린 것이다. 제주의 농경여신인 ‘자청비’를 테마로 모노드라마 극본을 만들고 이웃마을 가야금 연주자까지 설득하는가 하면 갈옷의 명인 양순자 선생으로부터 무대의상까지 제공받아 지난주에 극을 올렸다. 무릉외갓집을 오픈한 후에 한 번도 전시장을 찾지 않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공간을 꽉 채우고서는 1시간 반 동안 쥐 죽은 듯이 연극을 관람하셨다. 공연을 앞두고 목공을 취미로 하는 이웃집 형님은 몇 주 동안 무대를 짰고, 함께 꾸러미 작업을 하는 삼춘들은 공연당일 손님들을 위해 하루종일 빙떡 50인분을 지지기 시작했다. 

한은주씨의 공연 ‘모노드라마 자청비’는 내게 저녁이면 컴컴해져서 빨리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농촌마을이 이렇게도 달라질 수 있구나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내가 ‘일’로 경험한 마을이 농촌마을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금방 지진 빙떡과 발효가 잘 된 쉰다리는 농경신인 자청비가 가지고 내려온 ‘씨앗’처럼 농촌과 잘 어울리는 환상의 맛이었다. ‘떠나고 싶은 농촌’도 ‘돌아오고 싶은 농촌’도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게 아닌가. 돈 잘 버는 농촌도 중요하지만 연극인이 이웃인 농촌도, 연극 올릴 무대가 있는 여유도 참 소중하지 않을까.  

글‧홍창욱 / 무릉외갓집 실장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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