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숙희의 자연 & 사람 그리고 문화-22

“언니, 한라산에 눈 왔수다”
매일 아침 제주시에서  한라산을 넘어 서귀포로 출근하는 후배가 아침을 깨웠다. 산에 오르기를 좋아하는 그는 ‘겨울 한라산이 최고야’를 입에 달고 살았다. 오죽하면 오색단풍이 화려함의 절정을 이루어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속에서도 ‘겨울 한라산이 최고’라고 읊조려 김을 뺀다고 미움을 받았으랴.

 아무튼 한라산 눈소식에 서둘러 집밖으로 나와 보니, 아이고! 동장군이 어느새 제주까지 날아오셨나, 어제밤에 재활용품을 분리수거하러 나왔을 때하고는 사뭇 다르게 매서운 추위가  목을 움츠러들게 했다. 세상에! 겨울이 이렇게 한순간에 오는 거구나. 58번째 맞는 겨울, 철들고 나서만도 40번 넘게 겨울을 맞았으련만 계절을, 그야말로 체감하는 것은 처음인 듯했다. 그동안은 내 몸이 아닌 뉴스가 계절을 말해 주었던 것이다.

  꼼짝말고 방콕하리라, 마침 토요일이라 별일이 없었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 한참이 지나자 심심해진 딸아이가 과자를 산다기에 따라 나섰다. 해가 떴으니 좀 덜 추우려니 했는데 웬걸,  바람까지 세게 불면서 더 추웠다. 집에서 30미터 떨어진 단골 마트까지가 얼마나 먼지, 문을 열고 들어서서 낯익은 주인장을 보자마자 인사보다 추위타령이 먼저 나왔다. 
 “아유, 추워. 어제만 해도 안 추웠는데... 겨울이 어쩜 이렇게 한 순간에 오죠?”
 “당연하죠. 모든 게 한 순간 아닙니까?”
 허걱!

 평범한 도인이 여기 또 계셨네!  딸애가 과자를 고르는 동안 나는 주인장 아저씨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긴 수염도 없고, 꼬부라진 멋진 지팡이도 없이 작업조끼를 입고 티비에 눈을 고정하고 있다가 손님 오면 전자기기를 대서 물건 값을 계산 하는 이 아저씨, 어디에 ‘도사’가 숨어있는 것일까.
아, 생각나는 게 있다. 몇 달 전, 여름이었다. 마트 아저씨가 ‘학생 아이들이 불쌍하다’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바로 코앞에 남녀공학 중학교가 있는지라, 공부에 학원에 치인 청춘들에 대한 연민인가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아이들이 자꾸 물건을 훔쳐가요. 우리도 어릴 때 남의 밭에서 서리해 먹기는 했지요. 먹을 게 많지 않은 시절이고 또래끼리 모험심 같은 것도 있고.... 걸리면 부모님 손에 끌려가서 화난 어르신 앞에 싹싹 빌었죠. 그런데 요샌 그게 아냐”

 한 두 번은 장난이려니 하고 눈감아 주던 중에 상습적으로 훔치는 한 아이가 있어서 ‘안되겠다’싶어서 아이를 붙잡고 부모를 오시게 했다.
“첫마디가 우리 아이는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거예요. 부모맘이야 그렇지. CCTV를 보여주니까 그때야 믿는데, 그 반응이......”
“ 아이구, 이게 웬일입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이런 거 아니겠어요?”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아저씨는 다시 한숨을 푹 내쉬곤 말을 끊었다. 기가 막힌 듯, 잠시 허공을 바라보셨다. 약간 숙연한 분위기, 궁금해도 채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얼마예요, 돈 내면 될 거 아니에요?’라는 겁니다. 이거, 참. 내가 돈 몇천원 아까워 사춘기로 예민한 아이들에게 상처 주겠습니까. 나도 자식 키우는 사람이고, 그런 청소년기를 넘어온 사람인데...”

 아저씨의 다시 깊은 한숨,
“과거 우리 부모님들은 한술 더 떠서 ‘이 놈시키들 아주 혼내붑서’ 하면서 용서하려는 밭주인들을 부추겨서 우리를 더 무섭게 했는데.... 그게 부모노릇인데.... 솔직히 아이들은 잘못이 없는 거라. 어른들 잘못이 애들을 그렇게 만드는 거지....”
 부모노릇 못하는 부모를 만난 아이들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 남의 자식이 제 자식 같은 마음, 그래. 그때부터 범상치 않은 분이었어. 마트 아저씨 생각에 집으로 오는 길에는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몇일 전에 내 주변에서 도인을 또 만났다. 그는 병원 원무과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갑자기 내게 강연청탁을 하길래 병원직원들이려니 했는데, 난데없는 청소년지원 활동가들이 대상이라는 것이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직장 따라 서울살이 하다보니 고향 생각이 간절해 내려왔어요. 근데 고향이라도 직업적인 일만 하니까 재미없더라구요.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이 없을까 하다가 저도 청소년기에 멘토가 그리웠던 터라....”

 그 마음에 감동되어 일요일 이른 아침 우리집에서 아주 먼 곳까지 서둘러가 강연을 했다. 이게 다가 아니다. 어떤 젊은 부부가 동네아이들과 밤샘 캠프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골목친구들이 사라진 시대, 공동체의 멋과 맛이 무언지를 잃어버린 세대에게 아름답고 진실된 추억을 선물하기 위하여, 석달에 한번꼴이지만 자기 집을 개방하는 그 마음이 참 놀라웠다.
‘얌체과’, ‘이기주의과’ 인간들이 점점 늘어나지만 서귀포에는 이렇게 ‘혼자 잘 살민 무슨 재미꽈’ 인간들이 구석구석 살아있다. 1만 8천 신들의 고향 제주, 헛말이 아니다. 지금 나는? 무슨 ‘꽈’로 살고 있지?

                                                                                            오한숙희 / 여성학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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