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을 거스르는 구상나무처럼”(2)

 

HRA(Human Renaissance Academy)는 2007년 문을 열었다. 제주대학교, 제주한라대학교, 제주국제대학교 등의 제주지역 대학생들이 참여했다. 최근에는 충남대학교 등 타 지역 대학생, 외국인 학생들도 입학했다.

HRA는 1년간 고전명작 읽기, 기업실무 사례연구, 한국경제사, 경영서 읽기, 스피치 훈련, 봉사활동 등 기존의 대학교육에서 배울 수 없는 깊이 있는 과제를 대학생들에게 부여한다. 또한, 7박 8일간의 겨울캠프, 진로와 취업상담을 위한 멘토링, 2개월간의 기업체 현장실습과 80시간 이상의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1년간 교육과정 수료를 인정받을 수 있다.

HRA는 2007년부터 2017년까지 10년간 278명의 수료자를 배출했다. 졸업생이 대다수인 1기부터 7기까지의 학생 취업률은 약 70%(수료생 192명 중 134명 취업)에 이른다. 사회로 진출한 졸업생 143명은 기업체, 공공기관, 금융사, 언론사 등에서 활약하고 있다.

수료생들은 "교실에서 배웠던 것들이 자신들의 인생에 큰 밑거름이 됐다"고 말한다. 조승주(HRA 9기 수료)씨는 "나 자신을 더욱 능동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준 것이 HRA라면서 특히 타인을 위해 봉사한다는 것, 그것에서 나오는 행복감이 얼마나 큰지를 배울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HRA 10년의 출발에는 많은 풍파가 몰아닥쳤다. 운영 초기, 교실이 정해져 있지 않아 이곳저곳 전전했다. 한마음병원 회의실, 사설 교육기관 세미나실 등이 그들의 배움터였다. 텐트학교 생활은 제주대학교의 적극 지원 속에서 마무리됐다. 2009년 제주대학교 물산업인재양성사업단의 위탁 교육을 실시하게 된 것이다. 2011년부터는 허향진 제주대학교 총장이 큰 관심을 보이면서 대학의 공식적인 후원이 시작됐다. 또한, 설립취지를 공감한 민간, 기관후원자들의 등장으로 HRA의 숨통이 트였다. 2011년부터 받은 후원금은 3억 원이 훌쩍 넘는다.

그중에서도 강신호 동아쏘시오 명예회장 등 개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보내온 후원금은 큰 응원이었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개발공사 등 기관 후원금도 적지 않다. 2013년 8월에는 안정적 운영을 기하기 위해 운영전담기관 사단법인 위즈덤시티(이사장 이유근)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교수·멘토진들은 학생들에게 단순히 배움을 전하기 위한 일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학생들을 보며 그들 자신도 배우는 것이 많다는 것. 인간에 대한 애정이 아카데미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자 미션이다. 김수종 교수는 서울, 베이징 등 한참 멀리 떨어진 곳에서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오는 것은 학생들에게 받는 감동 때문이라면서 "학생들의 진지함에서 우러나는 교감의 강력한 힘"이라고 설명했다

교수·멘토진의 바람은 제자들의 '자존'이다. 학생들이 1년간 교육과정을 통해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길 바란다. 학점을 부여하거나 취업을 보장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학생들 스스로 정의하기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1년의 교육과정을 통해 건실한 사회인이 되는 것. 이것이 인생 선배들의 보람이다.

다시 글의 앞머리로 돌아가 보자. 사람들은 아낌없이 주는 구상나무를 찬미한다.

"잎을 가득 달고 당당하게 서 있는 나무 곁에 흰 줄기와 가지만 남겨 놓은 채 죽어 있는 구상나무들. 비록 죽었지만, 다시 백 년을 그 자리에서 버티며 사람들에게 볼거리도 주고, 벌레의 집이 되고, 새들의 먹이터도 되고 끝내는 흙이 되어 다른 나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지. 살아 있을 때나 죽어서나 구상나무는 한라산에 사는 모든 생명들에게 이로움을 주는 것 같아"(문용포 곶자왈작은학교 교장/생태운동가의 글 중에서)

뿌리 깊은 나무처럼, 인생을 튼튼하게 키워나갈 인재를 키운다. 중력을 거슬러 자라나는 구상나무 열매처럼, 상식과 통념에 도전해 새로운 원칙을 만들어 나가는 청년을 만든다. 지식보다 지혜를 소중히 여기고 성공보다 성장을 꿈꾸며 소외된 이웃을 보듬고 지역사회에 헌신하는 사람을 키운다. HRA는 구상나무이다.

  글  김명지 / HRA 수료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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