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을 넘겨 등단한 산억수 시인

산억수 시인.

칠순을 넘긴 노인이 문득 서재에서 55년 전 중학생 시절에 미처 납부하지 못한 수업료 고지서를 발견했다. 55년전 슬픈 자아와 마주한 시인은 미납된 삶의 부채를 해결하고 싶다. 그런데 지금의 물가로 그 액수를 환산할 수가 없어 모교 교장실을 방문해 100만원을 지불하고 나왔다.

노인은 슬픈 과거와 이별하는 쓸쓸함에 잠기는데 마침 가랑비가 내린다. 시인 산억수의 작품 ‘납부금 55년 전’의 내용인데, 전문을 다시 소개한다.

하늘/정문/서류검사 엄격하다는데

문학세계 나의 문학관 원고/쓰다 보니/중3 때 못 낸 납부금 있어

55년 전 일이라 계산키도 그렇고/일백만(최저임금 2017년 135만원)원을 청산하고

교장실 나오니

운동장엔/가랑비 내린다

작품의 주인공 산억수 시인을 만났다.

부모님은 가난을 면하기 위해 일본 오사카로 건너갔다. 그리고 2차 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1945년 2월, 일본에서 태어났다. 미군의 폭격을 피해 숲속으로 피신했을 때, 어머니는 바위아래 억새를 깔고 누운 채 어린 아기를 낳았다. 시인은 훗날 산속 억새밭에서 태어났다는 의미로 필명을 ‘산억수’라고 정했다. 본명은 오인수다.

일본의 패망이 확실해질 무렵, 자녀 셋을 데리고 귀국길에 올랐다. 그중 태어난 지 채 두 달도 되지 않았던 산억수는 당시 일을 기억할 수가 없다. 다만 당시 미군의 폭격을 간신히 피해 제주항에 도착했던 여객선이 그가 평생 지고 살아야 할 고난의 서곡이었다는 것만 짐작할 뿐이다.

아버지가 일본에서 고향으로 보낸 돈은 당시 가치로는 적지 않은 액수였다. 그런데 아버지가 귀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돈을 관리하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돈을 가까운 친척에게 빌려줬던 것 같은데, 빌렸다는 사람은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일가족에 일본에서 밑바닥 생활을 하며 겪었던 온간 고생은 결국 물거품으로 끝났다.

아버지는 그 이후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술을 마셨고, 어머니가 생선장수를 하며 3남을 키웠다. 어머니가 장남을 먼저 챙겼고, 공부 잘하는 차남에게 학비를 댔다. 결국 막내인 산억수 몫은 보잘 것 없었다.

환갑을 훨씬 넘긴 나이에 글을 쓰고 싶어졌다. 처음에는 수필을 배우기 위해 제주대 안성수 교수의 강좌를 들었다. 그리고 2011년에 〈현대수필〉을 통해 수필가로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2014년에 우연히 탐라도서관에서 시강좌가 열린다는 말을 듣고 수강을 했다. 당시 강사가 김광렬 시인이었다.

김광렬 시인의 강좌를 듣고 이제 시의 맛을 알았다. 그동안 알고 있던 복잡난해한 시가 아니라 개인의 삶과 느낌을 진솔하게 드러내는 서정시가 특히 마음에 닿았다. 그리고 2015년에는 나기철 시인의 강좌를 들었는데, 전체 10강 가운데 3강을 듣고 시를 쓰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시 몇 편을 쓰고 나기철 시인에게 보여줬는데, 나 시인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시를 쓰시면 되겠다고 했다.

“71세에 처음으로 시가 터졌다. 일흔을 넘겼는데, 언제 영구차에 오를 지도 모르는 일, 그전에 많이 쓰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가 뒤늦게 시에 빠져 만끽하는 기쁨을 표현하는 시가 있다.

예기치 못할/때/왔다

그분 메시지

시말은/시말들을/깨우더니

한 편/시를/마무리하고

웃는다

-‘시(時)말이 오면’ 전문

그리고 <문학세계>에 10편의 시를 보냈다. 처음에는 입선만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는데, 결과는 작품 ‘치매’가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에 올랐다.

마치 아기가 어느 순간 말이 터지는 것처럼 시인은 칠순이 넘어 시가 터졌다.

“시를 알고 나니 시가 굴러다니는 게 보였다. 그러면 혹시 그게 사라져버릴까봐 메모하고, 후에 글로 써서 교정을 하면 작품이 됐다”

시집 <바람 공쟁이>.

그리고 그의 작품들을 모아 지난 해 말에 ‘바람 공쟁이’(도서출판 천우)라는 제목으로 시집을 발표했다.

그는 서정시를 사랑하지만 세상의 일에 무관심한 건 결코 아니다. 특히 중국인들이 제주도에서 벌이는 대대적인 개발이 못마땅하다.

망할 자치도

서귀포목장/빌딩 숲 세워지고/24시 /자국민보호

펄럭인다/오성기

-망할 자치도‘ 가운데 후반부

그는 작품 ‘산억수’에서 ‘춥고 배고프게 살았다. 굶어도 구걸하지 않았다. 애정 구걸하지도 않았다’고 표현했다. 시는 외롭고 가난했던 그가 인생 후반부에 만난 유일한 벗이다.

칠순을 넘긴 노인이 작품을 쓰는 일에 유일한 우군은 며느리다. 며느리는 시아버지 작품의 최종 교정을 마다하지 않는다. 시인은 시를 만나 더 이상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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