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창욱 / 무릉외갓집 실장

불란지

 2015년, 나는 서귀포시에서 진행하는 귀농귀촌 교육을 받았다. 서울에서 제주로 이주한지 5년이 되지 않은 시기라 운 좋게 대상자가 될 수 있었다. 농촌에서 마을기업을 운영하며 지역의 문화와 역사, 농업의 특성에 대해 익힐 수 있었지만 교육을 받아두면 향후에 도움이 될 것 같아 바쁜 시간을 내었다. 100시간의 기초 교육을 받으며 처음 듣는 내용이거나 삶에 도움이 되는 내용은 별반 없었지만 제주생활에 첫 발을 내딛는 사람들이다 보니 비슷한 처지라 느껴졌다. 

 수료 후 함께 교육을 받았던 동기와 맥주 한 잔을 하다가 농산물 유통과 가공에 관한 공부모임을 한번 조직 해보자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서귀포 귀농귀촌인 밴드에 참여자를 모집하여 ‘불란지 모임’이 결성되었다. 10명이 넘는 귀농귀촌인이 모여 어찌어찌 모임의 리더를 맡게 되었기에 첫 해 커리큘럼을 내가 기획하게 되었다. 한해 동안 블러거 아이엠피터의 ‘인터넷 환경변화와 농산물 마케팅’, 문근식 아라올레 운영자의 ‘농부장터 조직 및 운영’, 맛있는 철학자 김명수 대표의 ‘감귤 가공 및 6차산업화’, 베리제주 조남희 대표의 ‘온오프라인 농특산물 마켓 운영’, 카카오 이상근 매니저의 ‘카카오파머 브랜드 기획’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강의비를 지원 받는 것 없이 회원들이 매번 만원씩 회비를 모으고 식사비를 제한 돈을 지역의 강사분들에게 드렸다. 처음엔 회비도 없어 각자가 가져온 농산물을 드렸는데 2회차 부터는 주유비도 안 되는 돈이지만 성의를 담았다. 

 수업 끝나고 맥주 한잔 하지도 않는 모임인지라 다음 해를 기약할 수 있을까 했는데 우린 지난해에 계속 가자고 결의했다. 전년도 모임을 평가하며 남의 이야기만 들었으니 이제 우리 이야기도 한번 해보자며 매월 회원 발표도 하고 여름철 1박 2일 워크숍도 계획에 넣었다. 보다 안정적으로 모임을 유지하기 위해 서귀포사회적경제복지센터에서 학습동아리 지원을 받기로 하고 모임의 이름을 정했다. ‘불란지’. 반딧불을 뜻하는 제주어로 낮에 열심히 밭을 갈고 밤에 열심히 불을 켜고 공부하자는 뜻이다.

 우린 한 달도 빠지지 않고 공부를 했고 여름 1박 2일 워크숍은 휴가철에 진행했다. 가을엔 두 번의 육지강사를 불러 워크숍을 진행했다. 그 중엔 카카오에서 운영하는 ‘스토리펀딩’도 있었다. 내가 ‘무릉외갓집 스토리펀딩’을 100% 초과달성 후 제주 농산물을 활용한 ‘스토리펀딩’이 지역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센터에 제안했는데 흔쾌히 지원을 해주었다. 워크숍 후 조직원 한 분이 제주 감귤을 리워드 상품으로 한 펀딩을 올 가을에 진행했는데 새로운 고객이 수 백 명 늘었고 펀딩결과 또한 300% 달성하였다.

 또 다른 기회는 우리가 함께 해볼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기대를 걸고 진행한 임경수 박사의 ‘협업의 방법과 사례’ 워크숍이었다. 우린 전직 화가, 프로그래머, 교사, 대기업 연구원, 공익재단 상근자, 제조업체 대표, 육묘장 운영자 등 각기 다양한 직종을 갖고 있었고 현재 제주에 귀농귀촌했다는 점, 각자 감귤농사를 짓는 것 말고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었다. 회원들이 모임에 기대하는 점은 있으나 이를 모아 내는 일이 어려울 듯 했는데 역시나 공동사업은 서로의 이해와 관심사가 달라서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학습조직을 한 해 더 이어갈 것인지를 결론짓는 연말 모임에서 우린 두 가지 중요한 결정을 했다. 내년에도 공부를 이어가자는 것, 우리가 함께 딛고 있는 기반이 감귤농업이기에 3년차엔 감귤을 공부하자는 것이었다. 1년차엔 농업 유통과 가공에 도움이 될 만한 다양한 사례를 알아보았고, 2년차엔 각자가 하고 있는 일과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보았으며, 3년차엔 공동의 관심사인 ‘감귤농업 및 유통, 가공분야’ 학습을 통해 함께할 수 있는 작은 기반을 마련할 것이다.

 2년째 학습조직을 운영하며 ‘공부’만으로, 혹은 서로간의 ‘관계’만으로 모임을 운영하는 것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습을 통해 서로가 성장하고, 이것이 상호간에 도움이 될 때 모임은 지속가능해진다. 내년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지 기대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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