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훈 / 성공회대학 연구교수(평화학), (사)피스모모 연수전문가

화음을 갖춘 전쟁의 북소리들

작년에 ‘전쟁의 북소리에 춤추지 않는 교육’을 생각해달라는 주문을 받았을 때 탄식과 한숨부터 나온다. 한국 사회에 전쟁의 북소리도 너무 많고, 그 북소리에 춤추는 모습도 무수히 많고, 교육계도 그로부터 그다지 자유롭지 않다는 그동안의 관찰 때문이다. 더구나 작년까지만 해도 전쟁의 북소리를 더 크게 울리라고 선동하는 국내외 정치인들이 너무 많아졌다.

‘전쟁의 북소리’라는 은유가 불러내오는 현실은 군대, 징집제, 군가, 군의 영향력, 군사주의 담론, 군사주의 문화, 교육 속 군사훈련, 전쟁 선동, 군비경쟁, 안보주의 또는 안보장사, 전쟁 미화, 전쟁 영웅 찬미, 무기 찬양, 자국중심 전쟁사 교육, 등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고 전쟁의 북소리를 조금 더 찬찬히, 세세히 듣고자 한다면 우리는 더 많은 관찰을 얻을 수 있다.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시작되는 거대한 국제적 군사기지들, 민주 정부도 주창하는 부국강병론, 거대한 예비군제, 세계 최고 수준의 한국 무기 수출과 미국 무기 수입, 아군(한미) 무기에 대한 자부심, 군대-무기 매니아 현상, 군복 패션, 집회시위에서의 군복 착용, 군대식 신입절차, 아동 무기장난감, 전쟁 게임, 방대한 군 방계조직들(전우회, 참전회, 동지회, 안보교육시설, 안보교육 강사단 등), 성역화된 국방예산, 수치스러운 아동 군사훈련, 군 방계조직의 민간영역 침투 (지역사회에서의 특권적 지위, 관련 사업 독점, 예산 독점, 성역화-세력화, 민주인권-다양성에 대한 체계적 공격 등) 등 목록은 매우 길게 이어질 수 있다. 전쟁의 북소리에서 자유로운 영역을 찾는 일이 어려워질 수 있다.

전쟁의 북소리처럼 크게 울리지는 않지만, 북소리에 흔들리며 춤추는 모습들로 이런 것들을 또 관찰할 수 있다. 군대의 계급제도와 매우 유사한 사회적 계급제도가 강하게 유지된다 - 학번, 사번, 선후배, 나이서열, 직급서열, 직업서열, 빈부서열, 호칭서열, 언어서열, 자리배석 서열, 식사 서열, 말하기 서열, 심지어 학생회 간부와 회원간의 서열 등. 군대의 명령체제와 매우 유사한 상명하복의 조직관, 갑질, 질서의식이 가정, 학교, 종교, 문화, 예술 기관을 막론하고 사회 전반에 만연하다.

또 ‘안되면 되게 하라’와 같은 전투 방식과 매우 유사하게 돌격형 행동 양식이 만연하다: 목적-목표 달성 중심, 결과-성과 중심, 수단과 과정 무시, 감정적 작용 무시, 상호 경쟁, 적자생존, 지도자가 성과 독점, 지도자의 보호자화(정보와 판단 및 계획수립의 독점) 등. 군대에서의 군기와 체벌과 유사한 행위가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신입생 군기잡기, 후배 군기잡기, 신입사원 입사식, 병영체험에서의 청소년 군기잡기, 대학에서의 학생간 집단 군기, ‘버릇고치기’ 담론과 행위 등.

이 뿐만 아니다. 군대식 미적 감각도 만연하다. 공간과 배치에서의 군사주의라 부를 수 있다. 일사분란하지 않은 것에 대한 폄하나 무질서와 등치하는 관행, 유니폼을 통해 집단성을 드러내는 것을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관행, 완벽한 직선형 줄맞추기에 대한 집착, 사람들의 말소리 통제 집착(‘떠들지 마라’), 사람들의 몸 통제 집착(‘가만히 있어라’), 지휘관에 대한 집중 집착 (‘딴짓하지 마라’), 상징에 대한 강요된 집체의식 (국기에 대한 경례), 군인들을 위한 19금 수준의 여성착취 공연 등 - 너무 많은 일관된 일상이 존재한다.

이러한 널리 퍼진, 일관되게 기괴한 사회적 감수성은 군사주의를 떠나서 이해하기 힘들다. 더 나아가 우리의 일상에는 군가를 부르며 고무줄 놀이 하기, 책임지기 위하여 총대매기, 운동경기를 전쟁에 비유하기,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기, 개인의 잘못에 대해 집체식 징벌 가하기, 군대식 체벌을 친숙하게 만드는 언어, 군기 잡기 언어 등 군사주의 언어와 문화가 넘쳐난다. 젠더 불평등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여성 비하와 군사주의의 깊은 연관성에도 주목한다.

또 분단체제에서 전쟁의 북소리는 엄격한 2박자이다. 세계는 우리편-적편으로 나뉜다. 통일을 위한 어린이 그림에 북한의 국기가 등장하면 ‘안보위협’이 된다. 판단의 정신분열이 이분법으로 나타난다. 북한군의 ‘양민 학살’과 미군과 한국군의 ‘양민 학살’에 대한 평가는 극과극을 이룬다. 베트남 침략과 민간인 학살에 대한 인식도 양분되어 있다. 이라크 침략과 파병에 대해서도 판단이 양분되었다. 다른 나라의 군비증강과 한미연합군의 군비증강에 대한 판단도 분열되어 있다. 개도국 빈곤층 지원과 대북 인도주의 지원에 관해서도 이중 잣대가 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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