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숙희의 자연 & 사람 그리고 문화]-28

한라산 설경(사진 자료=한라산 국립공원)

 작년 여름 그를 처음 본 순간부터 나는 예감했었다. 내가 그의 해피바이러스에 감염될 것이라는 걸.
 “여러분 오늘 행복하셨어요?”
 심각한 사안을 놓고 그에게 자문을 구하려고 모인 자리에서 그는 뜬금없이 우리가 보낸 하루에 대해 질문했다. 이건 뭐지? 나뿐 아니라 함께 모인 모든 사람의 얼굴에 똑같은 의문이 묻어 있었다.
 “우리가 행복하자고 사는 거잖아요. 오늘 여러분이 제게 도움말을 얻고자 하는 것도 그 문제가 해결되어야 행복하기 때문이 아닌가요?”
“네, 맞아요”
“그건 그렇죠”
우리는 하나 둘씩 행복이라는 단어에 끌려가기 시작했다.

“행복은 습관이고, 그 습관이 생기기까지는 열심히 연습해야 한답니다. 그럼, 우리 자기소개부터 해볼까요? 저는 오케이입니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도 있지만 저는 오케이로 불리고 싶어요. 사무총장님, 선생님 이런 호칭 말고 그냥 오케이라고 불러주세요. 저는 여러분과 친구가 되고 싶고, 친구의 자격으로 여기 왔어요. 여러분을 가르치러 온 사람이 아니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풀어가는, 그러면서 함께 행복해지고자 여기 왔어요”
 “네, 오케이님”

 역시 교육효과는 빨랐다. 그래도 서귀포에서 나름 사회적 이슈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인 물이니 이정도 속도는 나오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오케이는 밝게 웃으면서도 고개를 살짝 갸우뚱했다.   
“님 자도 빼주시면 안될까요? 그냥 오케이로!”
 “오케이!”
 누군가의 시원한 대답에 웃음이 빵 터지면서 분위기가 급전환되었다. 심각진지 모드에서 명랑발랄 모드로. 그는 우리가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낸, 그리고 더 나은 해결책을 계속 찾아가고 있는 여러 나라들의 사례를 소개해 주었다. 우리의 현실을 이야기하다보면 분노와 좌절이 생기던 것과 반대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해답들은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안겨 주었다.

 “제 이야기를 마치면서 숙제를 하나 내드릴까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오케이!!!”
“우와, 최고예요!”
그가 양손으로 엄지 척을 만들어 우리 앞에 쭉 내밀었다.
“매일 행복일기를 한 줄씩 쓰시는 거예요, 어때요? 하실 수 있겠어요?”
“오케이!!!”
그가 다시 양손 엄지 척을 내밀었고, 아마 그 순간이었으리라. 그의 해피바이러스에 우리가 집단감염이 된 것이. 그를 만나고 난 다음부터 사람들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회의를 하러 만난 자리에서 ‘행복’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했고 사람들끼리의 의견충돌도 부쩍 줄어들었다. 의견충돌이라고 해야 방법론상의 작은 문제이지만 그래도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는 것이어서 ‘행복’과는 거리가 먼 것임에 분명했다.

  한번은 내가 누군가를 ‘참,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그 사람 때문에 제일 힘들어 한 사람이 ‘그 사람도 자기 입장에서는 할말이 있을 것’이라고 말해 깜짝 놀랐다.  ‘그 사람 원망해봐야 내 행복만 줄어드는 거라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는 답에 더 놀랐다. 행복바이러스! 과연 세긴 세구나. 그걸 퍼뜨린 오케이! 대단하구나.
오케이, 그는 30년 가까운 세월을 이 세상에서 가장 힘없고 약한 사람들의 편에서 일해 온 사람이었다. 작고 가녀린 체구로 짧지 않은 세월을 차별과 소외의 현장에서 버텨 오는 것이 참 신기하다 싶었는데, 행복을 실천하는 긍정마인드! 그것이 그의 에너지원이었던 것이다.  

 안 좋은 일? 오케이, 좋은 일? 오케이. 화 나는 일? 오케이, 신나는 일? 오케이. 인생에서 바람처럼 불어오는 희로애락의 다종다양한 일들을 오케이라고 순응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 안에서 좋은 에너지가 나온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고, 웃으면 복이 오는 이유가 이것이다.

  새해 첫날, 그의 집에 놀러갔다. 아침 해는 외돌개에서 보았으니 마음의 해를 맞으러 오케이를 찾아간 것이다. 그는 지독한 독감에 걸려 있었다. 우리가 등장하자 바로 마스크를 쓰면서 떡국을 끓여 함께 먹자고 했다.

 자신을 찾아온 독감을 오케이! 하니까 예고 없이 놀러온 손님도 오케이였다. 그냥 돌아갈까 했던 마음이 그의 오케이 앞에 눌러 앉자로 바뀌면서 그의 감기에 도움이 될 게 없을까 생각하게 하면서 꿀녹차가 떠올랐다.  산속에서 야생녹차를 덖으며 혼자 살던 스님의 체험적 민간요법, 녹차를 찬물에 넣고 펄펄 끓여서 그 뜨거운 물에 꿀을 타서 원샷! 과연 차를 마시고 나자 곧 몸의 온도가 높아지면서 땀이 나는 ‘찜질’효과가 나타났다.

  아파죽겠는데 손님이 왔더라, 대신 손님 덕분에 아픈 게 좀 나았다로, 서로 행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역시 ‘오케이!’였다.
  오케이! 오케이! 오케이! 2018년 일년내내 나는 오케이룰 외치며 살꺼야!, 내 인생은 오케이니까! 

글‧오한숙희 /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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