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슬비 / 영천동주민센터

공직에 들어온 지 세 달, 동 주민센터의 기능이 마냥 등초본의 발급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도 변화한지 세 달이 지났다. 복지에 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마냥 정부가 무엇인가 힘든 분들께 도움을 주는 것이 복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5세 이하 어린이에게 아동수당을 주고 80세 넘는 노인들에게는 장수수당을 주고 나라의 곳간 사정이 어떻든 그저 준다니 모두가 반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선시대에는 빈민 구제를 위한 대표적인 사업으로 환곡제도가 있었다. 환곡이란 백성들이 굶주리는 시기인 봄철에 국가에서 곡식을 빌려주고 추수가 끝난 다음에 갚게 하는 제도이다. 오늘날의 복지 제도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한때 나의 복지에 대한 개념은 조선시대의 환곡과 같았다.

정부의 복지정책 예산은 140조원을 뛰어넘었고 전체 예산의 34%를 차지했으며 사회복지 공무원을 수천 명 증원했다고 한다. 또한, 맞춤형 복지 제도 시행 이후 수급자 제도 또한 완화됐다. 그러나 저소득층의 자살, 독거노인의 쓸쓸한 죽음 등 복지 사각지대에 관한 이야기는 끊이지 않고 우리 사회의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투자를 복지에 쏟아 부어야 하나, 책 몇 권을 뛰어넘는 제도들을 그의 부수적인 지침들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할까?

이런 나의 틀에 박힌 복지=환곡에 대한 개념이 송두리째 무너지게 된 것은 복지 업무를 경험하면서부터이다. 지금 우리의 헌법은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사회 보장과 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신체장애자나 질병, 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 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한 나라의 복지정책이 제대로 결실을 맺으려면 다양한 혜택이 대상자들에게 적기에 누수 없이 고루 돌아 가야한다. 그러나 현실은 위 헌법의 내용을 지키기엔 녹록치 않다. 대상자들은 대부분 노령, 장애인 등 정책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고, 복지 업무 경험을 처음 하는 나 또한 단번에 이해 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많다. 또한 제도의 기본 틀이 당사자 신청주의를 기반으로 해 좋은 혜택을 접하지 못하면 민원인들은 그 제도들을 그냥 흘려보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복지 업무를 맡으면서 느끼는 바는 이러하다. 조선시대 환곡이라는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아무리 잘 설계되어 있는 제도도 적절한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면 오히려 수혜자이어야 하는 백성을 착취하는 수단으로 변질했던 것과 같이, 오늘날의 복지라는 잘 설계되어 있는 제도의 성패도 각각의 제도들이 적절한 수혜자들에게 남김없이 전달되는가에 달려있지 않을까? ‘올바른 곳을 찾아서 전달하는 복지 정책’이야말로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실현하는 진정한 복지의 개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공직 생활의 첫걸음을 떼는 신규 공직자로서 또 복지담당자로서 모든 복지 담당 공무원이 그러하듯 재정적인 지원에 그치는 것이 아닌 그 제도들을 잘 전달해주는 친절한 복지 공무원의 자세를 함양해 적절한 수혜자에게 적절한 복지 제도가 전달될 수 있는 역할을 하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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