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지 나 / 동국대 교수, 영화평론가

계절변화는 놀라운 자연의 축복이다. 무거운 코트를 벗고 봄바람 스치는 가벼운 차림으로 거리를 나서면 하루하루 새로움을 느끼게 된다. 봄바람과 함께 부는 미투운동 바람은 오랫동안 침묵의 카르텔로 봉인해 왔던 곪아 터진 권력의 민낯을 보여준다.

한때 대중음악에선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고 애달프게 이별 노래를 불렀지만, 이젠 여자도 배가 되어 자신의 인생여정 항해를 해야 하는 21세기 세상이 아니던가. “여자 팔자는 뒤웅박”이라는 옛말도 미풍양속이 아니라 여성 인권이 부재했던 시대의 의존적 여성관을 보여줄 뿐이다. 자신의 인생을 구해줄 남자를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자기 인생길을 가는 밀레니엄 세대 여성은 지구촌 어느 곳으로건 자유롭게 날아가는 메시지를 쏠 수 있는 스마트폰을 다룰 줄 아는 단독 주체로 살아가니 말이다.

봉건적 구태의 얼룩이 아직도

그런 미투 바람 속에 등장한 한 정치인의 어법은 조선 왕정 시대, 수많은 궁녀를 거느리고 통치했던 군주의 페르소나를 쓴 인물의 대사처럼 들린다. “네 의견을 달지 말라”, “(너는) 날 비추는 거울이다”, “그림자처럼 살아라”하여 (내가 무슨 말을 하건) “괘념치 말아라”.

이런 지시에 따르려면 군신일체의 화신으로 그를 우러러보며 모셔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의 얼굴 자체를 볼 수 없는 인간에게 거울은 자신을 타자화해서 들여다 볼 수 있는 유일한 자기 성찰의 도구이기도 하다. 자기 자신의 물리적 존재증명인 그림자는, 융의 심리학적 맥락에서 보면, 본인도 모르는 자아의 또 다른 어두운 분신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누군가에게 자신의 거울과 그림자가 되라고 명하는 것은 자아 콤플렉스의 어두운 측면을 부지불식간에 인정한 것이기도 하다. 마치 역사극에서 고뇌에 찬 왕이 읊조리듯이 뱉어내는 “괘념치 말아라”의 ‘하게체’는 콤플렉스를 보상받으려는 무의식적 코스프레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압축발전을 이룬 한국의 근대화 과정 속에 공존하는 봉건적 구태의 얼룩을 확대경으로 보여주는 것만 같다. 이런 비동시성의 동시성은 남성에게 기대 자신의 인생을 풀어가려는 멜로드라마 여성 캐릭터의 트라우마로 재현되기도 한다. 한국적 가부장제가 욕망하는 현모양처상을 반영해 온 멜로드라마는〈미몽〉(1936, 양주남)과〈자유부인〉(1969, 한형모)에서 바람난 유부녀의 현모양처 콤플렉스를 비장하게 다루고 파국적 결말로 나아간다. 급변하는 세상 속 삶의 조건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식민지는 여성’이라는 문구처럼, 헌신적 여성상을 미풍양속으로 미화하는 허구적 전통을 수행해온 셈이다. 그 전통은 밀레니엄시대 들어 영화에서도 깨져나가기 시작한다.

이청준의 단편소설〈벌레이야기〉를 각색한〈밀양〉(2007, 이창동)은 주인공 신애 캐릭터를 자기기만적 현모양처 판타지로 풀어내 보인다. 남편이 사망하자 수절하며 남편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가 피아노 학원을 운영해 아들을 잘 기르며 살겠다고 각오한 신애는 자신의 경제적 능력으로 살아가는 현대여성이면서 조선시대 열녀정신을 이어가는 전통적 여성상이다. 그러나 드라마가 전개되면서 남편의 불륜을 의도적으로 망각한 척 하는 신애 내면의 진한 그림자와 더불어 부자 코스프레를 하다가 유괴범에게 납치당한 아들의 죽음을 맞는 참사가 벌어진다.

남에게 인정받으려 전통적 구태와 현대적 능력을 과시하는 신애의 이중성은 유괴범의 이중성에 충격을 받는다. 자기 거짓에 치여 홀로된 신애는 신앙생활로 다시 삶의 활력을 얻어 유괴살인범을 용서하러 감옥으로 면회를 간다. 그러나 그는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았기에 신애의 용서가 필요 없다는 고백에 충격을 받고 졸도한다. 이 영화를 봤던 것일까? 미투 파장의 물꼬를 튼 서 검사의 가해자 안 전 국장의 신앙 간증은 놀랍도록 이 상황과 같은 패턴을 반복한다.

“소유냐, 존재냐”의 갈림길에서

촛불 혁명 이후 한국 독립영화에도 오랜만에 당당한 독립여성이 탄생했다.〈소공녀〉(2017, 전고운)는 세계 최저출산율과 최고자살율을 동시에 지속적으로 기록하는 N포세대의 일상적 풍경화를 절묘하게 그려낸다.

주인공 미소는 이름처럼 타인에게 소소한 일상의 미소를 짓게 하는 독립적 존재이다. 학비가 없어 대학을 중퇴하고 가사도우미로 살아가는 미소는 소유보다 존재를 택하며 자유로운 인생 여행 자체를 실천한다. 남들은 집을 지켜야 한다고 하지만 미소는 소득 대비 오르는 집세와 물가에 못이겨 가장 큰 지출 항목인 월세방을 뺀다. “집이 없는 게 아니라 여행 중인 거야”라는 포스터 헤드 카피처럼 ‘인생은 나그넷길’ 자체를 실천한다. 그 여행길에서 미소는 스카치 위스키 한 잔과 담배, 그리고 남친과 가난한 데이트를 즐기려 헌혈 알바를 하기도 한다.

한때 음악밴드를 같이 했던 멤버들의 집에 계란 한판을 들고 찾아가 동가숙서가식하며 그가 목격하는 친구들의 일상은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의 갈림길을 성찰하게 해준다. 바로 그 길에서 21세기 여성 미소가 그들만의 세상에서 눈치보며 뒤웅박 노릇으로부터 해방되어 당당하게 자기 트렁크를 끌고 인생여정에 들어선 모습은 시대와 세대의 변화 바람을 맛보게 해준다.

*<다산포럼> 게재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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