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오름 밀집’ 성산읍, 어쩌나 신공항 예정지 됐나?

국토교통부와 제주도가 지난 2015년, 신공항 예정지를 발표할 때 내놓은 지도.

원희룡 제주지사 예비후보가 14일, 제주참여환경연대와 <제주의소리> 초청 토론회 자리에서 현장에 있던 도민에게 손찌검을 당하는 사고가 있었다. 원 전 제주지사를 가해한 도민은 칼을 소지하고 있었는데, 칼로 자신의 팔을 자해해 토론회 자리에 피가 흐르는 끔찍한 상황으로 번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원 예비후보를 폭행한 이는 제2공항성산읍반대대책위 김경배 부위원장으로 밝혀져 충격을 줬다.

공개 토론장에서 폭력을 행사한 행동은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음은 자명하지만 한 번쯤 집고 넘어가야할 문제가 있다. 김경배씨는 왜 결과가 뻔한 토론장 난입과 후보 폭행을 저질렀을까?

난데없는 제주 신공항... 주민들에겐 '날벼락'

박근혜 정부 시절인 지난 2015년 11월 10일, 국토교통부(당시 유일호 장관)와 제주자치도는 ‘제주 신공항’ 예정지로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실제로는 5개 마을) 일대가 결정했고, 사업비 약 5조원을 투입해 2025년 완공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할 뜻을 밝혔다.

국토부와 제주도의 발표가 나간 이후 어떤 이들은 그동안 개발에서 제외됐던 성산읍에 공항이 유치되면 지역이 발전하고 땅값이 상승할 것이라고 환호했다.

하지만 주위의 환호가 높을수록 현지 주민들의 수심은 깊어졌다. 삶의 터전에서 내몰리게 된 성산읍 지역 주민들은 2015년 12월에 접어들면서 제2공항 반대 투쟁을 준비했다. 공항 예정 부지에 포함된 성산읍 5개 마을(온평리, 신산리, 난산리, 수산리, 고성리) 가운데 고성리를 제외한 4개 마을 주민들은 “여태껏 여기서 농사지으며 살았는데, 어디로 가서 살라는 말이냐”며 반대대책위를 구성했다.

그리고 주민들에게 떨칠 수 없는 의구심이 있었다. 왜 성산읍 신산, 난산, 온평, 수산이었을까?

주민들의 싸움은 '사전타당성검토 연구' 영역의 부실을 밝히는 데 집중됐다.

국토부는 신공한 결정이 항공대 산학협력단(항공대·유신·국토연 등 컨소시엄)이 작성한 ‘제주 공항인프라 확충 사전타당성검토 연구’ 용역의 결과라고 밝혔다.

국토부는 이 지역이 기존 제주공항과 공역이 중첩되지 않아 비행절차 수립에 큰 문제가 없고 기상 조건이 좋으며 생태자연도가 높은 지역에 대한 환경 훼손이 타 지역에 비해 적은 것으로 평가되는 등 공항입지 조건이 다른 후보지들 보다 뛰어나다고 부연했다.

이런 설명들은 주민들을 납득시킬 수 없는 내용들이다. 최근 여름에 제주에 비가 내리면 다른 지역과 달리 성산읍 지역은 한꺼번에 홍수가 날 정도로 폭우가 빈번하다. 올해 1월에 제주를 강타한 폭설과 이상 한파의 피해도 성산읍이 가장 컸다. 성 성산읍 일대 월동무와 당근이 한파로 거의 괴멸됐는데, 기상여건이 좋다니?

게다가 성산읍과 인근 구좌읍은 제주에서도 오름이 가장 밀집한 지역으로 비행을 위해서는 오름 절취가 불가피하다는 보고들이 발표됐다. 게다가 거문오름을 젖줄로 하는 용암동굴이 지하에 거미줄처럼 깔려 있다. 환경훼손이 적을 것이라는 근거가 어디서 나왔을까?

그런데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가 전국을 강타했다. 제2공항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부실 ‘사전타당성검토 연구’의 배후에 국정농단세력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했다. 그리고 싸움은 문제투성이 ‘사전타당성검토 연구’에 집중했다.

그런데 촛불혁명을 거쳐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안타깝게도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신공항 지원’을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다. 주민들이 기대했던 ‘연구용역에 대한 재검토’는 꺼내지도 않았다.

그래도 문재인 정부라면 주민들의 호소를 들어줄 것이라는 기대로 호소문도 발표하고 김현미 국토부장관 면담도 요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성산읍 주민들이 사면초가의 입장일 때, 김경배씨는 지난해 10월부터 42일간 ‘사전타당성검토 연구’에 대한 재검토룰 주장하며 단식을 이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섰지만... 반대 주민들의 좌절

지난해 단식농성장에서 만난 김경배 부위원장.

당시 필자가 제주도청 앞 단식천막에서 김 씨를 만났을 때 “어머니는 내가 육지에 1인 시위 한 걸로 알고 계시다”며 “어머니가 단식에 대해 아시면 큰 일이 날 일”이라고 했다. 쉰 나이에 총각인 김경배씨는 시골에서 노모를 모시고 살고 있다. 그리고 “제2공항이 건설되면 노모와 자신이 살고 있는 조그만 집이 송두리 채 사라질 위기”라며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단식이 40일을 넘기고 몸이 망가져갈 때, 강우일 주교가 중재에 나서서 김경배씨와 원희룡 지사를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였다. 원희룡 지사는 결국 김경배씨를 비롯한 성산읍대책위위 입장을 국토부에 전달했다.

국토부는 ‘사전타당성검토 연구’에 대한 재조사 방침을 정하기는 했는데, 재조사와 더불어 제주 ‘제2공항 기본계획 연구’용역을 동시에 추진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재조사와 별도로 공항은 일정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재조사는 요식에 그칠 게 뻔했다.

국토부는 지난 2월 22일 ‘제주제2공항 사전 타당성 재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입찰을 마감하고 유신 컨소시엄에 재조사와 기본계획 연구용역을 맡기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주)유신은 ‘사전타당성검토 연구’를 맡았던 업체다. 부실 용역을 수행한 의혹이 짙은 당사자에게 용역에 대한 재조사 용역을 맡기는 우스운 상황이 재현됐다.

시민사회와 성산읍 주민들의 반발을 불러온 것은 뻔한 상황. 결국, (주)유신이 계약을 자진 철회하는 모양새로 국토부는 용역을 원점에서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

최근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제주 제2공항은 도지사 선거의 최대 쟁점으로 부상했다. 5명의 제주지사 예비후보들 가운데 제2공항 반대를 내건 건 고은영 녹색당 후보가 유일하다.

왜 우리 목소리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나... 성산 주민들의 좌절

주민들이 제주도청 앞에서 제2공항 반대 집회를 개최하는 모습.

김경배씨가 토론회장에서 원희룡 후보에 폭행을 가하기 이틀 전, 필자는 성산읍에서 제2공항을 주제로 열린 ‘낭송회’에서 김 씨를 만났다. 지난해 오랜 단식을 펼친 이유때문인지, 몸이 아파서 일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실제로 몸은 야위고 얼굴은 단식을 할 때보다 더 상해보였다.

그리고 “제2공항 문제가 더 나쁜 상황으로 나빠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비록 ‘타당성 연구에 대한 재조사’와 ‘기본계획 수립’ 용역이 뒤로 미뤄지면서 국토부와 제주도가 제2공항을 바로 밀어붙이지는 못하지만, 성산읍 주민들을 대변할 의미 있는 정치세력은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김경배 부위원장은 절망과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지금 어디선가 걷고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정처 없이 걷고 있는데

그 사람이 나에게로 오고 있다.

 

지금 어디선가 죽어가는 사람은

세상에서 까닭 없이 죽고 있는데

그 사람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엄숙한 시간’ 일부

 

김경배씨가 토론회장에서 원희룡 후보에게 폭행을 가하고, 현장에서 칼로 자해한 행위로 경찰은 김 씨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을 적용해 입건한다고 밝혔다. 서두에 밝혔듯 그의 행동은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지만,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혹은 우리 자신에게 일말의 책임은 없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그는 제주도가 다치고 아픈 만큼 제 몸이 아파가는 사람이다. 시인이 노래한 대로 어디서 죽어가는 사람이 당신을 쳐다보고 있다.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