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있는 풍경] 정호승 시인의 '능소화'

담장에 핀 능소화.

동백도 아니면서

너는 꼭 내가 헤어질 때만 피어나

동백처럼 땅에 툭 떨어진다

너는 꼭 내가 배고플 때만 피어나

붉은 모가지만 잘린 채

땅에 툭툭 떨어져 흐느끼더라

낮이 밤이 되기를 싫어하고

모든 인생은 점점 짦아지는데

너는 꼭 내가 넘어질 때만 떨어져

발아래 자꾸 밟히더라

내가 꼭 죽고 나면 다시 피어나

나를 사랑하더라

-정호승 시인의 ‘능소화’ 전문

 

시인은 7~80년대 시대와 현실의 목마른 척박함에 발을 대고 서 있지만 위로 하늘을 향해 열려있다는 평을 받는다. 스스로도 시대상황의 반영과 서정성을 모두 품기 위해 노력했고, 그래서 서정주와 김수영의 결합에 어느 정도 성공해서 다행이라고 한다.

능소화도 척박한 골목 담벼락에 발을 딪고 하늘로 오르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수간 선홍색 통꽃을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뜨린다. 절망이지만, 그렇다고 죽음은 아니다.

잡지사 기자와 교사, 소설가, 시인 등 인생 갈래에서 좌절할 때 시인은 발아래 밟히는 능소화를 만났나보다.

능소화는 능소화과에 속하는 낙엽활엽덩쿨식물이다. 마을 골목 안 담장에 주로 식재했다. 회갈색 줄기가 5~10m까지 자라는데, 가지 끝에는 5~15개의 원추형 꽃이 핀다. 능소화 혹은 자위화라고 불렀다.

능소화는 약용으로도 사옹됐다. 순환계나 피부 및 부인과 질환 치료에 사용됐다. 최근 연구결과 능소화에는 terpenoids나 steroids 등에 속하는 성분들을 포함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항산화와 항혈전, 항염증 등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물질들이다.

위로와 치료의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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