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매봉 공원 야간산책, 무더운 여름엔 제맛이다

삼매봉 야간 산책로. 큰 등불이 켜져 운치를 더했다.

가만있어도 몸에 땀이 고이는 무더운 날씨다. 그렇다고 무한정 실내에 앉아 있을 수마도 없다. 어디 시원한 곳을 찾아 더위도 날리고 활동도 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다.

지난 14일 저녁 무렵에 삼매봉 공원에 올랐다. 외돌개 입구에서 출발해 삼매봉 공원 계단을 오르는 길은 예상보다 서늘하다. 산책로를 뒤덮고 있는 천연 숲이 햇빛을 가려줄 뿐만 아니라 왕성한 광합성 활동으로 주변을 산소로 채워주기 때문이다.

계단을 오르다 잠시 하늘이 열려있는 틈으로 남쪽을 쳐다보면 서귀포 앞바다 절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서귀포항과 문섬, 범섬, 외돌괴 바위가 바다 위에 떠있고, 그 주변을 어선들이 부지런히 돌아다닌다. 방금 전까지 숲이 주는 산소로 몸을 채웠다면, 이후로는 바다의 절경으로 영혼을 채웠다.

삼매봉공원이 좋은 점은 도로에 자동차를 통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발길도 줄어들고, 부분별한 소음도 사라졌다. 트럭에서 음식을 파는 상인도, 길에 굴러다니는 담배꽁초와 술병도 없는 그야말로 도시 속 청정공원이다.

삼매봉은 서귀포시 외돌개 인근에 있는 해발고도 약 150m에 이르는 야트막한 오름이다. 제주대학교 윤석훈‧이병걸 교수와 경상대학교 손영관 교수 등이 지난 2006년에 공동으로 수행한 ‘하논 화산의 지형‧지질학적 특성과 형성과정’에 따르면, 삼매봉 주변의 지질은 천지연조면안산암으로 분류된다.

천지연조면안산암은 약 11만년 전에 형성됐고, 현재는 서귀포시 남성리 남쪽 해안과 천지연, 서귀포시 천지동 일대에 분포한다. 윤석훈 교수 등은 삼매봉이 형성된 이후 약 7만6000년 전에 인근에서 각수바위 조면안산암이 분출됐다고 밝혔다. 하논 화산체는 훨씬 나중에 형성됐다.

삼매봉공원은 약 19만평 부지에 삼매봉도서관(좌)과 서귀포예술의전당(우), 기당미술관 등의 교양시설을 품었다.

삼매봉 공원은 지난 1974년 5월에 도시공원(근린공원)으로 지정됐다. 올해 6월 도시계획심의위원회 발표 자료를 기준으로, 전체 면적이 62만6362㎡(약 18만9800평)에 이르는데, 17만30㎡(약5만1500평)가 국‧공유지이고, 45만6332㎡(약 13만8300평)가 사유지에 대당한다. 전체 공원부지 가운데 72.9%가 사유지에 해당한다. 사유지 가운데 과수원과 전 등 농지가 138필지 29만1827㎡(약8만8400)에 달한다.

공원 내에는 산책로와 광장(3만7156㎡) 등 공원 기반시설 뿐만 아니라 예술의전당(5만415㎡)과 삼매봉도서관(8114㎡), 기당미술관(4521㎡) 등 교양시설도 들어섰다.

삼매봉 정상에 올라서니 사람이 별고 없었고 체육시설과 팔각정이 쓸쓸하게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팔각정 주변에 누가 심었는지 칸나꽃이 노랗게 만발해 여름의 정취를 더한다.

제주의 해안 가까운 오름이 대체로 그러했듯, 삼매봉 정상에도 봉수가 있었다. 지금의 팔각정 남쪽에 있었다고 전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기를 ‘삼매양봉수는 정의현 서쪽 80리에 있으며 대정현에 있는 거옥악봉수와 교신한다’며 ‘오름 가운데는 많은 논들이 있는데 대지(大池, 큰 연못)라고 부른다’고 했다. 대지는 지금의 하논을 의미하는 것으로, 과거 사람들은 삼매봉과 하논분화구를 하나의 산체로 인식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조선시대 사람들은 남쪽 노인성을 보면 무병장수할 수 있다는 믿음을 품었다. 조선시대 제주에 유배됐던 충암 김정은 <제주풍토록>에 “남극의 노인성을 굽어보면 크기가 샛별 같고 일명 호남(弧南)이라고도 하는데, 하늘의 남극 축에 있어 하늘 위에 나오지 않는다. 만약 그것을 본 사람은 인덕이 있고 장수한다”고 기록했다.

삼매봉공원 정상에 있는 남성대 표석(좌)과 팔각정(우). 과거엔 팔각정 근처에 삼매양봉수가 있었다.

이런 무병장수의 희망 때문에 사람들은 노인성을 바라볼 수 있는 한라산 정상이나 삼매봉에 오르기를 좋아했다. 삼매봉 정상부근에는 남극노인성을 볼 수 있는 곳이란 의미로 남성대 표석이 세워져 있다. 외돌개 입구 마을 남성리도 남성대에서 유래한다.

정상에서 내려가려는데, 산책로 가로등에 불이 켜졌다. 김광균의 시 <와사등>을 떠올렸다.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있다/ 내 홀로 어디 가라는 슬픈 신호냐

긴 여름 해 황망히 날개를 접고/ 늘어선 고층 창백한 묘석같이 황혼에 젖어

찬란한 야경 무성한 잡초인 양 헝크러진 채/ 사념 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

 

여름 해 날개를 접고 황혼이 찾아왔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삼매봉 공원은 한 때, 적군의 침입을 알리는 봉수터로 또는 무병장수의 꿈을 키우던 남성대로 시민들과 함께했다. 그리고 지난 74년 이후로는 도시공원으로 시민들을 포근하게 품었다.

그런데 도시공원 역할도 자칫하면 2년 후에 사라질 상황에 놓였다. 지난 1999년 헌법재판소가 20년간의 유예기간을 두고 2020년까지 지자체가 매입하지 않은 도시공원 내 사유지를 도시공원에서 해제하라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도시공원 일몰제’의 적용을 받는데, 시한인 2020년 7월 1일이 다가오고 있다.

2년 뒤 도시공원 일몰제로 삼매봉 공원 산책로가 갑자기 출입 금지 구역으로 막힐 수도 있고, 일대에 아파트 단지가 조성될 지도 모른다.

전국적으로 도시공원 결정면적은 934㎢이고 이 가운데 516㎢가 일몰제 적용을 받을 전망이다. 여의도 면적의 300배 넘는 녹지가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니 국가적 문제이도 하다.

제주자치도나 서귀포시가 이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듯하다. 대한민국 땅값을 모두 합하면 캐나다 땅 6배를 살 정도로 부동산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누가 쉽게 해결할 수도 없는 과제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대책 마련에 나서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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