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사고의 상대성과 절대성

박정신과의원 원장 박용한

 

현자에게 누군가 질문을 하였습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현자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그 질문은 당신의 뇌가 하는 질문이라네.” 이러한 에피소드는 현대 정신의학적 측면에서 많은 점을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진료실을 찾은 환자분들에게 자주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당신은 키가 큽니까? 작습니까?”, “당신은 돈이 많습니까? 적습니까?”, “당신은 잘 생겼습니까? 못생겼습니까?” 이러한 질문에 환자분들은 대부분 자신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키가 작고 돈도 없고 못생겼다고 대답을 합니다. 치료자는 그러한 반응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당신은 키가 큰 사람 옆에 있으면 작아보이고, 키가 작은 사람 옆에 있으면 크게 보입니다. 당신은 1원이라도 많은 사람과 있을 때에는 그 사람보다 돈이 적은 사람이고, 1원이라도 적은 사람 옆에 있을 때에는 그 사람보다 돈이 많은 사람입니다. 잘 생겼다고 생각되는 사람 옆에 있을 때에는 자신이 못 생겨보이고, 못 생겼다고 생각되는 사람 옆에 있을 때에는 자신은 잘 생겨보입니다. 이렇게 조건에 따라 변화하는 상대적인 모습을 우리는 고정 불변한 모습으로 자신을 한정시켜 가두어놓고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괴로움을 만들고 있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변화가능한 자유로운 상태에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생각은 언제나 나와 관련이 있습니다. 나는 어떤 상태이고, 나는 무엇을 해야하고, 나는 상대와 어떤 관계이고, 상대는 나를 어떻게 보고 있고, 나는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떻게 앞으로 될 것이고, 나는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결해야하고, 무엇을 대비해야하고, 나는 행복하고 싶다는 등등 나의 생존전략을 위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뱀을 만약 보았다면 공포반응이 나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뱀이 지나갔는데도 우리는 그러한 충격적 경험을 기억으로 간직하고 지속적인 반추를 해나갑니다. “하필이면 나에게 왜 뱀이 나타났을까? 뱀이 또 나타나면 어떻게 하나? 뱀이 나타나서 물리면 어떡하나? 물리면 죽을 수도 있는데 죽으면 안되는데 어떻게 하나? 여기에 뱀이 있을까? 저기에 뱀이 있을까?” 지금 이곳에 뱀이 없는데도 뱀에 대한 생각으로 불안에 떨고 있다면 이 상태는 합당하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뱀을 본 것이 첫번째 화살이라면 뱀에 대한 지속적인 생각은 나의 마음 특히 뇌가 만드는 두 번째 화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두 번째 화살을 통해 괴로움을 나도 모르게 창조해나갑니다. 이러한 생각을 알아차림 하는 것이 바로 정신건강을 스스로 돌보는 데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말미잘과 멍게는 태생기 이후 뇌를 이용하여 먹이가 많고 가장 서식하기 좋은 장소를 찾은 후에는 바위에 몸을 흡착하여 고정 시키고 주위 환경에 반응하지 않도록 뇌를 스스로 분해하여 없애서 절대 움직이지 않도록 한 후 평생을 보낸다고 합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사례는 마치 에고라는 개인적인 조건을 벗어나 있는 그대로 주위와 함께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해탈의 모습 같아 보입니다.

생존전략의 중추인 뇌가 삶의 주도권을 가지는 게 아닌, 그것을 인지하는 존재로서 주도권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갈 때에, 삶은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움으로 지금 이순간 생생하게 경험되어지는 행복함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알아차림을 강화하는 명상은 이런 맥락에서 행복을 가져다 주는 열쇠입니다.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