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송순현 / 명상힐링 컨설턴트

 1993년, 홍신자의 라이프 스토리 「자유를 위한 변명」을 펴낸 출판사 <정신세계사>의 발행인으로서 맺은 인연이 25년이 지난 오늘에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 다 지금 서귀포에 거주하며 이곳이 예술·명상·행복의 고장이 되기를 함께 꿈꾸고 있으니 참으로 각별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에고를 벗어난 춤이야말로 진정한 춤이라고 말하는 홍신자에게 있어서 춤은 곧 명상이고 명상은 곧 춤이다. 이러한 춤은 대자아의 자유를 얻는 신성한 몸짓이 된다.

 홍신자는 서귀포 어느 평화로운 마을에 ‘춤 동네’를 이루어 주민들과 함께 더불어 춤추며 여생을 보내고자 한다. 그리고 ‘서귀포시니어무용단’을 창단해서 이곳이 활기차고 행복한 노인들이 사는 고장, 그래서 이곳이 모두가 행복한 고장이 되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이런 뜻은 「자유를 위한 변명」에 이미 배어 있다. 이 글들을 음미하며 우리 모두의 삶이 춤과 명상의 삶, 자유와 행복의 삶으로 성숙하기를 기대해본다.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며 자유와 예술의 혼을 빛냈던 구도(求道)의 춤꾼 홍신자가 마침내 평화의 섬 제주도, 그리고 행복의 도시 서귀포를 인생의 최종 정착지로 정하고 여기에서 이웃들과 더불어 낙도(樂道)의 삶을 펼치려고 한다. 참으로 뜻깊고 기쁜 일이다.

 모든 사람이 구도를 위해서, 또는 공연을 위해서 춤을 출 수는 없다. 그러나 누구라도 생활하면서 언제라도 자유롭게 춤을 출 수 있다. 집에서든 밖에서든, 혼자서든 여럿이서든 모든 사람이 춤을 추는 세상은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이다.

 춤을 추면 즐거워진다. 즐거워지면 자신과 남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춤은 머리로 추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생각은 없어지고 움직임만 남는 신선함과 자유를 느낄 수 있게 된다. 춤을 통해서 진정한 자신을 만나게 되면 자유로운 삶이 열린다.

 삼십대 중반 인도의 구루  오쇼 라즈니시에게 깨달음을 구할 때 그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그대는 완전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억하라 사랑의 회오리바람을. 삶의 에너지가 그대를 사로잡는 대로 따라가라. 노래 부르고자 하는가? 그러나 그대 자신이 노래해서는 안 된다. 삶의 펄펄 끓는 에너지가 그대를 통해서 노래로 흘러나오게 하라. 춤추고자 하는가? 그러나 그대 자신이 춤춰서는 안 된다. 삶의 야생의 에너지가 그대를 통해서 춤으로 흘러나오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참된 구도의 길이다. 이것이 바로 삶의 충만이며 영원의 세계에 사는 것이다.

 삶의 야생의 에너지가 어디로 그대 자신을 이끌고 갈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대의 동작은 이제 순수한 움직임으로 바뀐다. 여긴 어떤 목적도 없다. 오직 순수한 법열과 에너지의 충만이 있을 뿐이다.”

 나는 많은 춤을 보았고 많은 춤을 직접 추었었다. 그 중에는 감동이 진하게 전달되는 작품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작품, 심지어는 불쾌감마저 느끼게 하는 작품도 있었다. 이들을 갈라놓는 것은 바로 에고의 있고 없음이다. 춤은 무엇을 증명하거나 제시하기 위하여 추는 것이 아니다.
 춤은 등의 아름다운 선을 자랑하고 팔다리의 기교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무엇을 보여 주겠다는 의지가 강해질수록 춤은 보이지 않고 춤추는 자의 몸만 보인다. 춤은 완전한 ‘자기 없음’이 되어야 한다.

 오직 순수한 에너지의 흐름만이 몸에 실려 저 영원의 율동으로 남아야 한다. 그것은 곧 무아(無我)의 상태이다. 무아의 상태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자유의 상태이다. 춤은 그 자유로 가는 길을 제공해 준다.

 파도와 같이 순간 엄습해왔다가 사라지는, 저 멀리 퍼지는 에너지, 이것이 곧 춤이다. 그 에너지와 더불어 나의 몸을 움직이는 것, 그것이 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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