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길 / 제주언론인클럽 회장·서귀포문화원 문화대학장

 8월이다. 예년보다 일찍 시작된 폭염(暴炎)이 8월 들어 절정을 이루고 있다. 원래 8월은 여름무더위가 막바지에 이르는 달이기는 하지만, 금년은 해도 너무 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계절은 속이지 못하는 법. 벌써 가을을 알리는 입추(立秋)가 엊그제(7일) 지났고,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돈다는 처서(處暑)가 오는 23일이다. 이제 찜통더위를 너무 탓하지만은 말자. 이런 날이 계속되어야 오곡백과(五穀百果)가 잘 여물어간다고 하지 않는가.

 8월은 불볕더위만큼이나 뜨거운 민족적 기념일이 있다. 일제의 식민지배에서 국권을 회복한 광복절이 있는 달. 올해로 73주년을 맞는다. 이날을 즈음하여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주최의 경축행사는 해매다 성대히 거행된다. 그러나 일반 가정에서는 공휴일, 그것도 단순히 쉬는 날로 넘겨버리는 게 대부분이다.

 8월 15일. 우리는 흔히 ‘8.15 해방’이라고 부르고 있으나, 정식 국경일명칭은 ‘광복절’이다. 대한민국정부가 당초 국경일을 제정하면서 ‘해방절’이라 하지 않고 ‘광복절’이라 명명한 것은 대단히 의의 있는 일이다. 해방(解放)은 ‘남의 속박으로부터 풀려남’을 이르는 말이다. 그나마 ‘자력이 아닌 타력(他力)에 의한 것’이라는 인상을 풍기는 것이어서, 수치심과 더불어 국민적 긍지마저 상하게 하는 단어이다. 

 우리 역사교과서에 광복이라는 낱말이 정착된 것은 1982년의 일이다.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서 종래 ‘민족의 해방’이라고 표현해오던 단원 제목을, 이때부터 ‘민족의 광복’으로 바꾸어 쓰기 시작한 것이다. 광복(光復)이란 ‘빛을 도로 얻었다’는 뜻으로, 잃었던 우리의 주권을 되찾았다는 의미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며 우리의 정서에도 알맞은 용어라 할 수 있다.

 8월, 광복의 기쁨을 만끽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8월은 또 다른 짐을 우리에게 지워주고 있다. 8월 29일이 어떤 날인지 아는가. 일본에게 치욕적으로 병탄(倂呑)된 날이다. 1910년 이날, 우리는 일본에게 국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반만년에 이르는 역사에서 외침(外侵)은 수백차례 부딪쳐보았으나, 실제로 나라를 송두리째 강탈당한 것은 이게 초유였다.

 그런데 일본은 뻔뻔스럽게 양국의 합의에 따라, 순수하게 두 나라를 합쳤다면서 ‘일한합방(日韓合邦)’이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썼다. 광복이 된 후 우리는 “비록 일본에 합방은 됐었지만, 그래도 일(日)이라는 글자를 앞에 쓸 수야 있겠느냐”는 얄팍한 자존심에서 ‘한일합방’이라는 용어를 여과 없이 사용해 왔다. 우리가 일본에 병합(倂合)되었던 마당에, 한국의 ‘한(韓)’을 먼저 쓴다고 해서 무슨 체면이라도 선다는 말인가. 

 이미 우국지사들은 ‘경술년(1910년)에 겪은 국가적 수모’라는 뜻으로, 경술국치(庚戌國恥)라는 말을 썼다. 차제에 ‘경술국치’라는 용어로 일치를 시키든지, 아니면 강제합방의 동의어인 ‘병합늑약’으로 대체했으면 싶다. 늑약(勒約)은, 굴레․강제․억지조약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역사는 현재의 거울(鑑)이라고 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와 교훈이 역사 속에 있다. 역사에는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일이 있는가 하면, 슬프고 수치스러운 일도 있게 마련이다. 역사에서 배울 것이 없으면, 버릴 것이라도 익히는 것이 우리의 책무이다. 대한민국의 국권과 주권을 지키는 일, 경술의 국치에서 깨달아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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