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사동이》 글 노수미 / 그림 변명선 / 서귀포신문

<법정사 동이>(노수미 글/ 변명선 그림/서귀포신문 출판)

“우리는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으려고 하는 거야.”

한 칸짜리 초가 법당에서 스님들과 동네 삼춘들이 모여 제주도에서 일본인들을 쫓아내기 위한 조심스러운 계획을 세운다. 총포 세 자루, 그리고 나무 방망이가 일본 경찰들에게 대적할 수 있는 무기의 전부이지만, 그러나 우리에게는 목숨이 위태로운 줄 알면서도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시작된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은 1918년 10월 7일 제주도 도순리 법정사를 중심으로 하여 영남리, 하원리 등 인근 마을 주민 700여 명이 일본인의 축출과 국권 회복을 주장하며 일으켰던 제주도 내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이다. 그날 스님들은 서귀포지역 주민들과 함께 중문경찰서까지 행진하고 중문경찰서를 불태웠다.

법정사 승려들은 1914년경부터 일본의 국권 침탈의 부당함을 신도들에게 설명하며 항일의식을 심어주었다. 거사 실행 6개월여 전부터 조직을 구성하고, 독립을 위해 일본인 관리와 상인을 제주도에서 쫓아내겠다는 격문을 작성하여 배포했다.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은 1919년 3.1운동보다 먼저 일어난 항일운동이었다.

“제주는 우리나라의 닻에 해당하느니라. 이제 우리가 닻을 들어 올렸으니, 배는 움직이기 시작할 게다. 한번 움직이기 시작한 배는 절대 멈추지 않으니, 더디 가더라도 희망을 버리지 말고 계속 가거라.”

법정사의 큰 스님은 9살 어린 소년 동이에게 늘 이와 같은 말을 했다.

“싫어요, 안 할래요.”를 입에 달고 살던 동이. 머리에 이가 바글바글한 데도 스님이 머리를 밀어주겠다는 것을 한사코 싫다 한다. 스님처럼 머리를 깎고 나면 정말 스님이 되어 계속 절에 살아야 할까 봐 겁이 난다. 일 년만 있으면 데리러 온다며 돈 벌러 대마도로 물질하러 떠난 엄마는 이년 째 소식이 없다.

먹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어린 소년 동이는 작은 사건 사고를 일으키며 법정사에서 스님들과 함께 살아간다. 동이가 사는 법정사의 법당에서는 스님들과 마을 삼춘들이 이야기를 나눈다. 바다에서는 일본 어부들이 잠수선까지 동원해서 전복을 싹쓸이해가며 우리네 사람들을 사정없이 공격한다는 이야기, 토지조사사업으로 조상 대대로 내려온 땅을 빼앗겼다는 이야기, 건물을 짓고 도로를 낼 때 마을 사람들을 억지로 끌고 가 일을 시켰다는 이야기, 산신제를 지내는 것도 넋들이는 것도 모두 미신이라며 못하게 한다는 얘기들.

좀처럼 일을 시키는 일이 없는 큰스님이 동이에게 삭정이 모아 오는 일을 시키신 날 스님에게 칭찬 받고자 한 아름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지게를 가득 채워 돌아왔다. 칭찬 받을까 잔뜩 기대했던 동이의 마음과는 다르게 지게 가득 채워진 삭정이를 보며 심각한 대화를 나누는 스님들과 삼춘들. 그날 밤, 동이는 삭정이를 가득 채운 지게 사이에 네 통의 격문을 몰래 숨겨 내려가는 마을 삼춘의 뒷모습을 보았다.

어린 동이도 귀동냥하며 어렴풋이 스님들과 삼춘들이 무엇을 하려는지 느끼고 있다. 그러나 동이를 지키고자 스님들은 동이를 보살님에게 맡기고, 스님들까지 사라져 버리면 아무도 없는 외딴곳에 혼자 버려질까 동이는 두렵고 서럽기만 하다.

“너는 경찰이 있는지 없는지 미리 가서 알아보는 역할이다.”라고 말하는 큰스님을 보며 동이는 제가 선봉대가 된 양 해죽 웃는다.

그렇게 마을로 내려가는 갈림길에서 스님들과 삼춘들은 왼쪽 길로 내려가고, 동이와 보살님은 오른쪽 길로 들어선다. 동이는 돌아서가는 스님들에게 인사를 한다.

“이따가 만나요! 꼭이요!.”

마을로 내려온 스님들과 삼춘들은 거사를 함께 할 이들을 모으지만, 모든 이들이 거사에 선뜻 동참하지 않았고 비밀리에 준비했던 거사이기에 모르는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했다. 그렇게 서귀포 주재소를 공격해 서귀포의 일본 경찰들을 몰아내고, 다음날 제주향을 습격하기로 세운 계획은 급박하게 수정될 수밖에 없었고, 스님들과 결사대는 중문 주재소로 향했다.

목숨을 내놓고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했어요. 남다른 사명감과 불타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일 것만 같았거든요. 그런데 그냥 동네 삼춘들이어서 많이 놀랐어요.

1981년 10월 7일에 일어난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 올해 100주년을 맞이해 출간된 《법정사동이》는 고단했던 시절 순수하고 해맑은 9살 소년 동이의 시선을 통해 법정사를 중심으로 시작됐던 항일운동의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전한다. 물이 다 빠진 갈중이 바지와 해진 삼베 저고리, 짚신을 신은 볼이 발그스레한 귀여운 동이의 순수한 모습은 너무도 슬프고 용감한 그 날의 이야기를 더욱 진중하게 전한다.

황지넹이, 갈중이, 곤밥, 고사리 장마, 몽돌, 갱이 범벅, 질구덕, 동고량착, 물허벅, 차롱, 개역, 지슬, 낭푼, 도채비고장, 꿩독새기, 산톳, 삭정이, 물애기, 정낭 등 《법정사동이》에 실린 제주어는 그날 그 시대의 이야기에 생명력을 더한다. 제주에서 시작된 항일운동을 소재로 한 동화 《법정사동이》, 물질하러 떠난 엄마를 기다리는 9살 어린 동이를 통해 나라를 되찾고자 나섰던 제주에서 그날의 이야기를 담백하게 풀어낸다.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