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주명 탄생 110주년 기념 학술대회, 12일 제주대학교 인문회관에서 열려

'석주명의 삶과 학문세계’를 주제로 학술대회가 12일, 제주대학교 인문대학 2호관 세미나실에서 열렸다.

나비전문가를 넘어 자연과 인문, 사회의 다양한 분야를 두루 섭렵한 통섭학자 석주명. 국내 여러 분야의 연구자들이 석 박사의 필드 사이언스가 형성되는 과정과, 제주에서의 나비연구, 제주어 연구에 미친 영향 등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했다.

‘석주명 탄생 110주년 기념-석주명의 삶과 학문세계’를 주제로 학술대회가 12일, 제주대학교 인문대학 2호관 세미나실에서 열렸다. (사)제주학회(회장 윤용택)가 제48차 전국학술대회로 마련한 행사다. (사)제주학회와 제주학연구센터, 서귀포시 등이 학술대회를 공동주최했고 (사)제주학회가 주관했으며, 오리온재단과 석주명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가 후원했다.

윤용택 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석주명 선생이 10월에 태어나서 10월에 돌아가셔서 이 행사를 10월에 마련했다”며 “단순한 연례행사가 아니라 석 박사님을 제대로 이해하는 의미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윤용택 제주학회 회장(좌)과 이석창 석주명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우).

박찬식 제주학센터장은 환영사에서 “제주학센터는 해마다 제주학 선구자에 대한 공모사업을 추진하는데, 작년에는 현용준 선생이 올해는 석주명 선생의 대상에 올랐다”며 “사업이 잘 되면 훌륭한 단행본이 만들어질 것이다”고 발했다.

이석창 석주명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서귀포시와 제주대학교가 석주명기념관 건립을 위한 토지교환 등 행정절차를 밟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라며 “학술대회를 통해 풍부한 논의가 이뤄지고 이를 기반으로 석주명기념관이 제대로 건립되길 바란다”고 밝했다.

개회식에 이어 기조강연이 이어졌다. 송상용 학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이 ‘석주명의 삶과 학문’이라는 제목으로 가장 먼저 발제에 나섰다.

송상용 선생은 “석주명 선생은 평양에서 태어나 숭실교보에 진학한 후 동맹휴헙에 참여한 후 송도교보로 전학했고 신극활동에 종사하며 연예계에 진출할 뻔 했는데, 스스로 한계를 인식하고 과학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일본 카고시마고등농림학교에 진학했는데, 스승의 권유로 조선의 나비에 전력투구하게 됐다”며 “온나라를 누비며 75만 표본을 조사해 통계처리하면서 기존 일본연구가들의 오류를 바로잡았고, 석주명의 연구결과 한국나비는 248종으로 정리됐다”고 말했다.

송상용 선생(좌)과 전경수 교수(우).

송 선생은 “일본 시바타니 아츠히로가 1985년 석주명 업적을 평가하는 글을 발표했고 영국왕립아시아학회 조선지부는 1940년에 석주명의 논문 <한국 나비의 동종 이명목록>을 펴냈다”고 설명했다.

송 선생은 “석주명이 연구를 한국나비에 한정했기에 ‘조선 생물학’이 성립될 수 있었고, 조선왕조실록과 문집들을 분석해 나비에 관한 기록을 조명했기 때문에 역사학자로 볼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일본에 유학하면서 에스페란토를 공부해 논문의 요지를 에스페란토로 쓸 정도였으면서도 창씨개명을 하지 않아 민족주의자이면서도 동시에 국제주의자였다”고 밝혔다.

그리고 “석주명은 경성제대 부설 생약연구소에 근무하다 1943년에 제주시험장으로 전근하며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에 발을 디디며 제주 방연연구에 몰두했다”며 “생물‧인구‧지리‧언어‧역사 등의 연구는 석주명을 제주학의 선구자로 만들었다. 개성에 돌아간 이후 제주도총서 6권을 발표했다.”고 말했다.

송 선생은 “석주명이 한국전쟁에서 요절한 것을 보면서 프랑스 혁명에서 요절한 화학자 라부아지에와 70년대 요절한 이휘소를 떠올린다고 말했다.”며 “윤용택 회장이 석주명을 르네상스인으로 부르는데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밝혔다.

송 선생은 피타고라스(BC 7세기)와 아리스토텔레스(BC 4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15~16세기 ), 괴테(18세기), 니덤(19세기) 등을 세계 르네상스인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독백 ‘아 나는 철학도, 법학도, 의학도, 심지어는 신학도 온갖 노력을 기울여 철저히 공부했지만 전보다 똑똑해진 것은 없다“는 대목을 인용하며 ”석주명은 괴테와 같은 과학자였다“고 밝혔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가 ‘석주명의 야학(필드 사이언스)과 카고시마고등농립학교의 교육과정:인과론’을 주제로 주제발표를 이었다.

전 교수는 “동아시아 인류학사를 연구하며 자료를 찾는 와중에 석주명에 관한 새로운 자료를 손에 넣었다”며 카고시마고등농립학교과 소장된 석주명의 졸업논문을 소개했다.

전 교수는 “카고시마고등농림학교은 일본에서 두 번째로 생긴 고등농림학교였다”며 “교과과정을 분석한 결과, 이론에 매몰되지 않고 농민들이 실제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현장적이고 실천적인 교육을 시키고 있었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가고시마는 날씨가 따뜻하기 때문에 열대작물 재배에 도움을 주기위해 설립된 학교로, 순수과학이 아니라 실천과학을 가르쳤다. 그리고 석주명의 득업(졸업)논문은 나비가 아나라 나방이었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당시 다마리 교장이 정부에 중국 해남도에 고등농립학교 실습장을 제안할 정도로 국제적 스케일을 품은 사람이었고, 일본정부가 이를 들어줄 수 없었기 때문에 사다에 실습장을 설립했다”며 “사다에는 석주명이 실습기간에 거쳐했던 건물이 남아있었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석주명이 남긴 연구총서 6권을 분석해보면 민속학적인 내용들이 있는데, 다마리 교장과 스승 오카지마 긴지 선생이 모두 민속학적 책을 발간한 경험이 있었다”며 “카고시마고등농림학교 커리큘럼에는 민속학이 들어있지 않지만 야외 실습 등을 통해 훈습할 수 있는 배경이 있었다”고 밝혔다.

전 교수는 끝으로 “석주명 선생의 민속학적 연구가 형성될 수 있었던 배경을 설명할 수 있도록 당시 지식인 지도를 만들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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