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많고, 가게도 많고, 변화도 많은 서귀포의 이중섭 거리.

 

대향 이중섭. 그는 불과 11개월이었을 뿐인데 서귀포에 남기고 간 그의 흔적은 오늘날에서야 더더욱 크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가 없는 서귀포는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피난 속에서 화가 이중섭은 가족들과 단란한 시간을 보냈던 서귀포의 생활은 가난 속에서 살아가야 할 수 밖에 없었다. 1.4평의 단칸방에서 맨밥으로 허기를 달랬고, 피난민 배급품과 고구마로 연명했고, 이러한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이중섭은 많은 명작들을 남기고 1951년 12월 경 부산으로 다시 떠나게 된다. 그는 서귀포가 행복한 기억만 가득했다고 전해진다. 이 시기 이중섭의 그림은 섬, 게, 물고기, 아이들을 소재로 한 ‘서귀포의 환상’등 서귀포의 따뜻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화폭에 담아내기도 하였고, 그의 시그니쳐 작품인 담배를 싼 은지화 역시 그를 이야기 할 때에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작품과 삶의 흔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이중섭 거리, 가을에 가면 더더욱 그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삶이 빛났던 제주살이를 기억하며’라는 테마로 제주관광공사 추천 9월 여행 10선에 뽑히기도 하였다.

그런 이중섭 거리 인근에 유난히 반갑고 정겨운 골목가게 맛집이 있으니 그곳이 바로 ‘신촌 수제비’이다. 20년 즈음 되었을까? 가게는 제법 협소하다. 좌식 테이블 3개만이 그 곳의 수제비를 먹을 수 있는 공간의 전부다. 그렇지만 이 곳은 매니아들이 있을 정도로 팬 층이 무척 두터운데 관광객보다는 도민들의 단골 맛집으로 더 유명한 곳이다. 보통 술 한잔 걸치고 2차 혹은 3차로 찾아가는 곳 중 하나가 여기다. 저녁 6시에 문을 열고 새벽 3시에 문을 닫는다. 국물이 칼칼하고 시원하다. 속에서 끓어오는 그 맛이 한마디로 끝내주기 때문에 많은 애주가들이 속을 풀기 위해 혹은 조금은 부족한 배를 채우기 위해 늦은 밤 이 곳의 문을 연다. 조심스레 살짝 여쭤보면 북어머리와 양파, 파 등을 넣고 끓여내는 수제비 육수는 2년간 연구를 해온 결과이기 때문일까? 다른 곳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그런 맛이다. 미더덕과 바지락 정도가 국물 안에 담겨져 있는데 어째서 그런 국물 맛이 나는지 그 비법이 참 놀라울 따름이다. 지금이야 제주시에 분점을 오픈했지만, 제주시 사람들도 일부러 본점을 찾아올 정도로 인생수제비로 꼽는 이유는 본점에 대한 깊은 그리움이 서려있기 때문이다. 수제비는 당연히 쫄깃하다 못해 입 안에서 탱클탱글한 식감마저 자랑한다. 수제비는 알록달록 4가지 색깔을 띄고 있는데 흰 반죽은 밀가루를, 노란 반죽은 단 호박을, 보라색 반죽은 적채를, 녹색 반죽은 시금치를 갈아서 직접 손 반죽을 하기 때문에 보는 맛 역시 훌륭하다. 제법 쌀쌀해지는 가을 밤거리에 뜨끈한 국물에 술 한잔이 간절하다면 이곳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신촌 수제비’에서 수제비 말고도 두 가지를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김치김밥’과 ‘김치’이다.

‘김치’는 석박지 같은 두툼한 무 김치와 배추김치가 나오는데 식당에서 흔히 접하는 업소용 김치가 아닌 집에서 직접 담근 진한 맛이 느껴지는 김치다. 살짝 신 김치의 맛에 가까운데 눈 앞 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일뿐만 아니라 김치만 먹어도 참 행복한 것이 바로 이 곳의 김치다. 밥 한 공기에 먹을 수 있다면 참 행복하겠다.

 

이 곳의 단골 매니아들은 들어가자마자 수제비와 ‘김치김밥’을 동시에 시킨다. 김밥에는 사실 김치 외에는 다른 재료가 거의 들어가지 않는데, 중독성 강한 시큼 매콤한 맛의 김밥은 수제비와의 궁합이 매우 훌륭하다. 제주에서 맛있는 김밥 집 3군데를 뽑으라고 하면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곳의 김밥을 선택할 수 있을 것 같다. 두툼한 김밥의 굵기는 이 곳의 넉넉한 인심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허름한 서민적인 분위기 속에 테이블 앞에 옹기종기 모여 먹는 다락방의 감성도 느낄 수가 있다.

썸도 좋고 조금 한 층 더 가깝게 다가가고 싶은 상대와 술 한 잔을 해야 한다면 이 곳을 가는 것을 추천한다.

나는 ‘신촌 수제비’를 지나갈 때마다 가게 안을 들여다보게 된다. 사실 이 곳을 찾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음식을 만들어 주시던 어머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항간에는 욕쟁이 어머님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사실은 절대 아니다. 특유의 무표정과 웃음기 없는 친절 때문에 붙혀진 별명이지만, 그 어느 곳 보다도 따뜻한 인심과 가게에 대한 자부심이 멋지신 분이었다. 어깨동무를 하며 반갑게 인사를 해주던 기억도 있었고, 늦은 밤 피곤한 몸으로도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졸린 눈 비비며 사다리 계단에 내려오며 수제비를 끓여주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한데, 최근에는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인지 큰 따님이 서귀포 점을, 둘째 따님은 제주시 점을 맡고 있다고 한다. 다행히도 따님들이 하루하루 열심히 어머님의 손 맛을 따라가려 하고 있다.

 

제법 쌀쌀해지는 가을 밤, 뜨끈한 수제비 국물과 매콤한 김치김밥 앞에 옹기종기 모여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잔을 부딪히면 그게 바로 낭만수제비가 된다. 그럴 때 마다 늘 우리 곁에 든든히 계셔주었던 어머님이 있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힘차게 반죽을 하며 어머님이 끓여주던 늦은 밤 인생 수제비 한 그릇을 오래오래 먹고 싶다. 나만의 인생수제비와 인생김밥을 찾고 싶다면 이중섭 거리로 나서는 가을 발자국을 새겨보자..

 

문의 : 064.732.1029

위치 : 서귀포시 명동로 28-1

오픈 : 저녁 6시 ~ 새벽 3시

휴무 :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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