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현장실습고등학생사망에따른제주지역공동대책위원회 김경희 사무국장

모두가 약속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2017년 11월 19일, 故이민호 학생은 사고발생 10일 후 열여덟 번째 생일을 사흘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파견형 현장실습제도로 인한 실습생들의 비극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발생한 민호의 죽음은 제주도를 넘어 전국을 충격에 빠뜨렸고, 이는 전국적인 애도의 물결로 이어졌다. 제주에서는 26개 노동시민단체와 정당이 모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위가 결성되었다. 전국 곳곳에서 추모 촛불이 밝혀졌고, 그동안 묻혀있던 실습생의 재해사실이 추가로 밝혀지기도 했다. 애도의 목소리와 촛불행동이 전국으로 이어지면서 노동부는 사업장에 대한 특별감독을 실시했고, 교육부와 노동부는 사고에 대한 합동조사를 진행했다. 참으로 많은 주요 인사들이 장례식장을 걸쳐갔다. 기관의 장을 비롯하여 당대표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여야를 막론하고 찾아온 국회의원은 사고에 대한 애도를 표하면서 너나없이 유족의 손을 잡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눈물도 흘렸다. 김상곤 교육부총리도 방문했다.

파견형 현장실습제 폐지, 실검 1위

2017년 12월 1일, 교육부에서 “파견형 현장실습제도 폐지”를 선언했다. 실시간 검색어 1위로 “현장실습제 폐지”가 올랐다. 하지만 실질적인 내용은 폐지가 아니었다. “학습형”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지만, 그 실질의 내용은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후 교육부에서 발표한 “학습중심 현장실습 조기정착 방안”도 과거의 주먹구구식 개선안을 넘어서지 못했다. “학생들이 보다 안전한 환경에서 실습할 수 있도록 현장실습 기업 후보군, 현장실습 선도기업 등을 통해 안전한 산업체의 정보를 학교에 제공한다”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안전한 산업체”라니.. 전국의 수만 명의 실습생의 목숨을 걸고, 교육부가 거만해도 이렇게 거만할 수가 없다. 학생들의 안전을 누가 어떻게 보장한다는 것인가!

안전한 곳은 없다. 민호의 죽음과 진상규명 과정이 근거다

민호의 장례식 다음날, 노동부 제주센터는 사고현장에 유족3명과 대책위를 불러 노동부에서 파악한 사고의 원인과 재발방지 대책을 설명했다. 공장이 재가동 될 때, 다시 유족과 대책위를 불러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사항을 보고하겠다고 약속했다. 사망이후 100일이 지났지만, 노동부는 감감무소식이었고 공장은 재가동 되었다. 뒤늦게나마 재발방지조치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했으나 노동부는 거부했다.

유족과 대책위가 2박 3일의 상경투쟁을 하여 국회를 방문하고,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나서야 사고현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확인결과 진상규명을 위해 점검되어야 할 기계의 오류는 점검조차 되지 않았다. 재발방지를 위한 방호울에는 여전히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틈이 있었고, 위험한 곳에 설치되어야 할 센서도 미비 되어있는 등 전체적으로 부실했다. 학생이 사망하여 전국적인 이슈가 된 라인 1개의 소규모 공장조차도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전국의 수많은 현장의 안전을 누가, 어떻게 보장한다는 것인가!

교육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선도기업인증제’가 얼마나 허구인가를 민호의 죽음이 보여주고 있다. 실습생이 사망한 공장의 노동안전도 제대로 점검되어 담보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또다시 죽음의 현장에 학생들을 내몰고 있는 학습형 현장실습제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사회적 타살을 개인이 고스란히 감내해야하는 현실

유족은 민호의 죽음 앞에 책임자의 처벌과 재발방지를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결국 부모의 잘못이라고 끊임없이 자책하며 지쳐가고 있다. 유가족의 서울 상경일정 이후 고용노동부의 산업재해예방보상국장이 제주까지 방문해 교육부와 노동부가 협조 하에 현장실습제도를 점검하겠다고 했지만 그 때 뿐이다.

민호의 죽음에 많은 이들이 미안해하고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이유는 그 죽음이 사회적 타살이기 때문이다. 작년 사고 후 1년이 지났다. 작년 11월 장례식장에 찾아와 손을 잡으며 재발방지 노력을 하겠다는 국회의원들은 현장실습관련 의무 위반시 사업주에 과태료를 부과시키는 것으로 법을 개정한 것에 머물렀다. 고용노동부는 사업장의 안전보건을 위해서 힘쓰겠다고 했지만 10월 제주 삼다수 생산라인에서 똑같은 이유로 30대 노동자가 희생되었다. 교육부는 파견형 현장실습제도를 폐지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학습형 현장실습이라는 명목으로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선도기업’을 선정하여 또다시 실습생을 산업체에 내보내려 하고 있다. 일년 동안 이러한 일을 겪으면서 민호의 유족은 옆에서 보아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슬픔과 자책, 분노로 가득 차 있다.

故이민호 학생의 1주기를 맞아 제주를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추모행동이 진행될 예정이다. 제주에서는 민호의 1주기인 11월 19일 오후6시30분, 제주시청 어울림마당에서 추모제가 열린다. 추모행동이 유족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라며, 잊지 않고 행동하겠다는 전국 각지의 국민들의 마음이 모아지는 자리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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