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송주연 서귀포가정행복상담소 소장

송주연 서귀포가정행복상담소 소장.

이제 슬슬 명절 기운에 접어드는 시기입니다. 다음 주가 설이니까요. 출근 준비를 하면서 켜놓은 아침 뉴스를 왔다 갔다 하면서 잠시 본 택배현장 모습에서 ‘아, 그래. 설이지...’하는 생각에 새삼스러워졌습니다.

이맘때가 되면 한 지붕 아래 사는 식구들과 함께 예전에는 가족이라고 불리던, 그러나 지금은 결혼해서 따로 살고 있는 부모님과 친정식구들, 시집식구들과 친척하며 그간 소원했던 그리운 이들을 만나기 위해서 저마다 계획을 짜고, 이동 날짜를 잡고, 연휴에 뭘 먹고, 뭘 할까?를 생각하면서 조금씩 들뜨기 시작하는 명절 시작의 언저리입니다.

상담소 근무를 시작하면서 서귀포에 내려와 산 지 이제 2년. 작년에 맏며느리로서 결혼 30년간 해왔던 제사를 간소화하면서 비로소 1년에 두 번의 명절 제사에서 벗어나면서 홀가분해졌습니다. 육지를 왔다 갔다 하면서 이제는 육지에 가는 시기도 점점 간격이 늘어나 한 달에 두 번에서 한 달에 한 번으로, 두 달에 세 번으로 간격을 벌리는 동안, 꼭 가야만 했던 제사가 가족회의를 통해서 시부모님의 기제만 하기로 결정했다는 남편의 전화를 받으면서 해방감도 잠시, 너무나 복잡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실로 제사가 주는 중압감이 나름 저에게는 어마어마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디 제사만인가요? 30년 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남녀의 성역할 구분이 이토록 철저하다는 사실에 매일매일 놀라던 기억이 있습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저는 이름 석 자 엄연한 ‘사람’으로 살았는데 결혼을 하고 보니 ‘여자’로 살게 되었던 것이지요. 하루 삼시세끼의 식사와 설거지, 빨래, 청소뿐만이 아니라 육아에 따르는 온갖 일들, 양가의 대소사에 이르기까지 ‘그나마 남편이 장남이기는 하지만 삼남매라는 사실이 다행이다’ 할 정도로 주변에서 보고 듣는 이야기들을 다 합치면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수고와 인내를 요구하는 것인지 저절로 고개를 주억거리게 됩니다.

이제는 저도 나이가 들어서 몸이 젊은 날 같지 않다는 사실을 조금씩 가랑비에 옷 젖듯이 깨닫게 됩니다. 부침개를 한두 시간 쪼그리고 하다보면 일어서면서 장작 쪼개지는 소리를 내는 몸을 느끼면서, 왔다갔다 채소를 다듬고 고기를 재고 나물을 무치고 나면 무릎에서 후두둑 여름 소나기가 갑자기 오는 소리를 들으면서, 이 땅의 엄마들과 할머니들까지도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 결혼해서 만삭의 몸으로 출산 카운트에 들어간 제 딸아이도 물론 그 범주에 포함됩니다.

여성의 가사 노동이 값으로 환산되기는커녕, 그나마 평가 절하되기 일쑤인 대한민국에서 명절은 모든 여성들에게는 목 뒤의 혹처럼 마음의 짐이 됩니다. 젊은 세대의 풍속도가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나 많은 주부들이 명절에 휘몰아치는 부엌일로 몸이 상해도 큰일인데 마음마저 상하는 상황은 또 얼마나 많은지요.

신혼시절, 산더미 같은 제기 설거지를 하는 제게 다가와 ‘과일 내와야지’하면서 제 귀에 대고 속살거렸던 남편을 흘겨보면서 ‘설거지 끝내고!’라면서 신경질적으로 한마디 날렸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제 말에 머쓱해서인지 남편은 이날 이때껏 과일과 다과를 내는 것은 물론, 명절 전날 부침개도 부치고, 밥상에 손님 수대로 숟가락도 놓고, 제기 설거지도 다해주는 ‘남자’아닌 ‘사람’으로, ‘동반자’로 제 곁에 있습니다.

이 곳 제주의 명절풍속도는 어떤지, 부부의 일상생활은 어떤 모습인지 속속들이 들여다 볼 기회가 없어서 잘 모르지만 그래도 이곳은 여풍이 세다는 곳(?)이라는데 명절에 여성들의 신음소리가 특별한 곳이 아니었으면 하는 기대와 바램을 가져봅니다.

거기 밥상에 앉아서 이를 쑤시고 있는 남편분. 이제는 앞치마 걸치고 이번 명절에 씽크대 앞에서 설거지 한 번 해보심은 어떨까요. 아니면 쟁반에 사과와 배, 과도와 접시를 챙겨와서 서투르지만 과일 한 번 깎아보시는 게 어떠실까요.

이 말을 끝으로 오늘 이야기 마무리하렵니다. ‘가족 모두 행복한 명절을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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