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송주연 서귀포가정행복상담소 소장

송주연 서귀포가정행복상담소 소장.

4년간의 자원봉사 시절을 마감하고 대표로부터 상근자로 일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상담원으로 근무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2000년도 즈음으로 기억합니다. 상담소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면접을 원한다고, 강보에 싸인 젖먹이가 있으니 나갈 수 없으니 방문을 해 달라고, 마침 남편도 외출 중이라 이리로 와주면 고맙겠다고...

가정폭력상담소 소장님과 상담실장님, 상담원 상근 초짜인 저. 이렇게 세 명이 바로 달려갔습니다. 한적한 식당의 ‘휴일입니다’라는 안내판이 걸린 입구의 커튼을 열어젖히면서 조심스레 그러나 잔뜩 긴장한 표정의 그녀는 우리를 확인하고 잠시 안도감이 역력한 표정으로 그러나 짙은 불안감이 깔린 암울한 표정으로 조심스레 문을 열어주었지요.

탁자와 의자가 놓인 식당 한 공간에는 낮에는 앉은뱅이 테이블로 손님을 맞고 밤에는 식구들의 잠자리로 쓰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환한 대낮, 전기불도 켜지 않은 채로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긴 상담을 진행하다가 ‘힘들겠지만...지난밤의 상처를 좀 보여줄 수 있나요?’라고 조심스레 건네자, 두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하얀 반팔 원피스 지퍼를 열어 자신의 몸을 보여주었습니다.

아아, 그녀의 몸 위에는 삭여져가는 동전만한 크기의 멍자국과 야구배트로 맞은 지난밤의 선연한 자국이며 몸통과 상박근, 허벅지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온몸이 멍투성이였습니다. 시간을 두고 각기 다른 날 맞은 멍은 색깔조차도 다 달랐습니다. 가공할만한 것은 원피스 밖으로 드러난 얼굴과 팔꿈치 아래며 무릎과 종아리는 깨끗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밖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절대 때리지 않아요”라고 이야기하던 눈동자는 초점 없이 허공을 헤매고 있었고 그녀의 표정은 공허했습니다.

“어떻게 상담소에 연락하게 되었나요?”라고 묻자, “점쟁이를 찾아갔더니 둘째를 낳으면 남편과 사이가 좋아질 거라고, 둘째를 낳으라고 권했어요. 아이가 두 사람의 관계를 회복시켜줄 거라고요”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연애 때를 포함하여 결혼 후 지금까지 10여 년간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그녀에게는 구세주의 한마디였고, 점쟁이의 말에 희망을 걸고 크게 의지하면서 또, 남편의 폭력이 ‘부디’ 잠들기를 기도하면서 아기를 낳았다고 했습니다. “제가 매 맞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기 싫었는데...”라면서 그녀는 그 날 아침, 초등학교 고학년인 아들이 학교를 가면서 용돈을 달라고 했는데 요구한 액수대로 주지 않자, “××, 뭐 같은 년이네”라는 말을 남기면서 신발주머니를 들고 뛰어가더랍니다. 평소 때리는 남편에게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 아이 입에서 튀어나오는 순간, 그녀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고 합니다. “아침 내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어요...”라면서 울먹이는 그녀의 말에 저조차도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고 하지요. 아이의 눈이 열리고, 아이의 귀가 열리고, 아이의 머리가 열리는 순간부터 아이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어른으로부터의 학습’입니다. 어릴 때부터 수없이 엄마를 때리는 아빠를 보면서 아빠의 험악한 욕설과 고함, 죽여버리겠다는 협박, 심지어는 손을 치켜드는 사소한 행동까지도 고스란히 아이는 ‘어른’을 그대로 닮아갑니다. 연애 때부터 때리는 남편의 행위를 ‘나를 사랑해서 그런 것이겠지...나를 누군가에게 뺏기기 싫으니까 질투하는 거야... 그러니까 저러는 거야...’라면서 상대의 뺨때리기와 발길질을 정당화하고 욕설과 고함을 감내하고 결혼했다면 언젠가는 그 말이, 그 행위가 그녀처럼 심장을 관통하는 화살이 되어 자신에게 되돌아올지도 모릅니다.

가정폭력 상담현장에서 신체적 폭력은 20여 년 전보다 비율이 다소 감소하면서 이제는 언어적·정서적·성적·경제적 폭력의 상태를 하소연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물론 신체적 폭력을 포함해 다섯 가지가 섞인 중복적인 피해도 여전합니다. 그간의 꾸준한 언론 보도로 인해 피해자가 신고하면 경찰의 출동하는 구조임을 방송이나 신문을 보고 알게 된 가해자들이 점점 더 교묘한 방법으로 아내를 괴롭히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제는 당연히 경찰에 신고 접수된 가정폭력을 상담소로 연계하는 건수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법과 제도가 예전과 많이 바뀌어 피해자를 보호한다고는 하나 그 사실이 창피해서, 남이 알까 두려워서, 소문나는 것이 감당하기 힘들어서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면 아무도 ‘집안에 갇힌 피해자인 당신’을 도와줄 수 없습니다.

당신, 오늘, 바로 지금, 밖으로 드러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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