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송주연 서귀포가정행복상담소 소장

송주연 서귀포가정행복상담소 소장.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느 날, 정말 뜻밖의 상황을 맞닥뜨릴 때가 종종 있습니다. 지난 주, 친구 배우자의 부고를 단톡에서 접하고는 너무나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힌다는 것이 딱! 이런 거로구나...하는 생각으로 며칠간 망연자실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제주도로 삶의 거처를 옮겨 2년을 지나는 동안, 특히 지난 한 해는 참 어처구니없는 소식을 왕왕 접했습니다. 구정에 가출한 아들이 섬뜩한 내용의 문자를 남기고 한강에 투신한 이후로 근 한 달만에 물 위로 떠올랐다는 이야기를 전하는 친구는 아들의 마지막 모습조차도 남편이며 주변에서 만류하는 바람에 못 보고 보냈다면서 전화기 너머에서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이혼하고 홀로 두 아이를 악착스럽고 야무지게 키워내던 중‧ 고등 6년간의 친구는 느닷없이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했고요. 친한 최측근 친구는 아니었지만 고등학교 단톡방에서 활짝 웃는 아침인사를 매일 띄우던 불심 돈독한 친구는 유방암 소식을 전해서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아이들 유치원 때부터 구역예배팀에서 만나 이십년이 넘도록 이날 이때껏 모임을 계속해 온 이는 무더운 여름날 느닷없이 실명소식을 전하고는 두문불출하면서 모임의 성원들 모두의 걱정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누구는 아들딸 결혼시킨다는 청첩장을 돌리기도 했고, 할머니가 되었다는 소식도 전하면서.. 정말이지 희노애락의 혼돈 속에서 우리네 삶은 여전히 바삐 제 나름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절절히 느끼면서 고개를 끄덕이게도 했지요.

상담 현장에서도 간혹 당황스러운 경우를 만나기도 했는데 이름하여 ‘정당방위사건’입니다. 정확하게 풀어내자면 ‘가정폭력 피해자에 의한 가해자 사망사건’입니다. 여성가족부의 조사에 의하면 가정폭력 피해자가 가정폭력을 당하는 기간은 평균 12.8년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짧게는 수개월 혹은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간 가정폭력을 당하다가 결국은 별거 혹은 이혼으로 결혼을 마무리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살아서의 ‘이별’이 아닌, 어느 한쪽은 결국에 배우자를 살해하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가정폭력에서 ‘분리’되는 경우도 많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2018년 7월 03일 한국여성의전화에서 발표한 화요논평의 <‘가정폭력 피해자에 의한 가해자 사망사건은 ‘정당방위’이다>라는 글의 일부분입니다.

지난 7월1일은 가정폭력 처벌법(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시행 2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가정의 보호와 유지’ 관점의 가정폭력 처벌법 목적조항은 제정 이래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가정의 보호와 유지’를 위해 법이 작동하는 한 가정폭력 가해자는 제대로 처벌받을 수 없고 피해자는 제대로 보호받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법의 한계로 인해 가정폭력은 결국 ‘죽거나 죽이거나’ 사건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7월 2일 대법원 1부는, 37년간 가정폭력에 시달리다가 집에 있는 돌로 남편의 머리를 내리쳐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60대 여성에게 징역 4년을 확정했습니다. 이 여성은 "혼인기간 내내 칼에 찔리고 가스통으로 머리를 가격당해 혼절해서 응급실에 실려 갔던 적도 있는 등 지속적인 가정폭력으로 생사를 넘나들어야 했습니다. 여성은 “사건 당일에도 여러 가지 폭력을 당했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방어하기 위해 남편을 살해했다"며 `정당방위`를 주장했습니다. 또한 여성은 37년간의 가정폭력 피해 후유증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상태에 있었습니다. 가정폭력 피해자와 가해자와의 관계성 및 폭력의 지속・반복성 등을 고려했을 때 가정폭력 피해자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일반 살인처럼 적용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가정폭력 피해자는 폭력상황에서 가해자가 자신을 죽일지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 속에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방어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사법부는 가정폭력 피해자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가정폭력 피해자에 의한 가해자 사망사건에서 단 한 번도 정당방위를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 남편을 ‘살해’하기까지 수많은 폭력에 시달렸을 삶의 과정들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 것입니다. 폭력에서 벗어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정당방위를 했음에도 여성들의 목소리는 계속 외면된 채 남편을 살해한 ‘범죄자’로만 남고 있습니다.  

인간의 죽음은 삶과 마찬가지로 누구나 존엄성과 존귀성을 보장받아야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가정폭력 현장에서 만나게 되는 ‘죽음’은 우리의 일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기에 이 글은 많은 생각을 자아내게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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