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송주연 서귀포가정행복상담소 소장

송주연 서귀포가정행복상담소 소장.

제가 근무하는 상담소는 서귀포 시내의 매일올레시장 주변부 한 자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점심을 마치고 잠깐 짧은 산보를 한다거나, 퇴근 후에 시장을 둘레둘레 거닐면서 그 곳을 슬금슬금 돌아보는 것도 큰 즐거움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관광객들을 유심히 들여다보자면 머리부터 신발까지 통일된(?) 커플룩으로 치장한 알콩달콩한 연인이며, 알록달록 형형색색의 등산복으로 단장한 여성들끼리의 왁자지껄함과 또 다른 한 편에서는 모녀 혹은 부자처럼 보이는 끼리끼리와 아니면 3대쯤으로 보이는 가족단위의 오붓함과 느긋함이 뒤섞여 시장은 그야말로 왁자한 난장입니다.

초입의 과일가게를 지나면 삶은 고구마와 도넛가게가 있고, 옷이 즐비하니 걸린 밑에 악세사리와 생활용품이 늘어져 떠억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을 지나면 마농치킨집이 있습니다. 아주 가끔씩 오후 간식거리가 되어주는 싸고 푸짐한 양의 올레시장 안 전문 치킨집이지요. 막바지의 굴과 홍합 등을 들여다보노라면 ‘동래파전이라도 부쳐 먹어볼까’ 싶으리만치 입맛을 다시게 됩니다.

서귀포매일올레시장.(서귀포신문 DB)

사철 푸른 푸성귀가 끊이지 않는 제주에서는 알배기배추도 많고, 요즘은 봄동이 반찬가게에 계속 보입니다. 몸 같은 해조류는 된장에 무쳐 먹어도 질리지 않는 먹거리가 되었습니다. 생각만으로도 입 안에 침이 가득 고이네요. 시장 안 갈림길 직전에 생선좌판 아주머니 두 분이 양푼에 밥을 나눠먹는 모습도 볼 수 있고, 좋아하는 오메기떡과 시장 안 족발집의 족발과 편육은 이곳 시장의 압권으로 단연코 추천할만한 맛집입니다.

오른편으로 꺾어들면 시장 안을 따라 흐르는 작은 개울물이 있는데 저는 재래시장을 일부러 많이 다녀봤는데 이런 설계는 처음 보는 것으로, 시장 측의 살뜰한 배려가 가슴을 훅 비집고 감동으로 다가듭니다. 그 개울가에 관광객 시식용으로 아니면 휴식용으로 배려한 의자가 안전대처럼 둘러쳐져 있는데, 화분과 함께 어우러지면서 ‘시장도 휴식공간이 될 수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사람에 떠밀려 이리저리 휩쓸리고 떠밀려 가는 곳이 아닌, 가볍게 부유할 수 있는 ‘시골영감 처음 타는 기차놀이’ 같은 시장구경이 가능해 쉼표 같은 장소이기도 합니다.

여기저기에서 손바닥용 맛접시나 흑돼지꼬치, 떡볶이나 튀김을 들고서 먹는 한 편에는 주황빛 감귤류가 박스 포장된 채로 5Kg 2만5000원 혹은 한 봉지 5000원의 이름표를 이마에 붙이고 전시대에 누워서 시선을 유혹하고 있기도 합니다. 요즈음은 짙은 주황색과 색깔 못지않은 향의 레드향이니 한라산의 모양을 따서 한라봉이라 부르는 감귤류가 시즌 막바지이지요. 한 입 넣으면 ‘이런 맛도 있구나!’ 감탄하게 되는데 이제는 천혜향 시즌을 지나 고급스러운 이들을 계속 먹다보니 귤은 시시해져서 제주살이의 또 다른 격상(?)이 아닌가 싶어지기도 합니다.

이주 후 처음 귤철이 시작되면서 식당 입구에 놓인 귤바구니가 무척이나 충격적(?)이었는데 식후 입가심용으로 손님에게 내놓은 것이라는 설명을 들으면서 감탄했던 생각이 떠오릅니다. 양손 가득 들고 가도 눈 흘김이 없으니 눈치껏 맘껏 쥐어 가셔도 괜찮습니다. 아, 아닌가요?

뭐니 뭐니 해도 시장 안의 압권은 생선가게입니다. 회포장 가게도 그렇구요. 육지에서 오래전 물항이라는 제주음식 전문점에서 맛들인 고등어회 이후로 올레시장 안의 고등어회와 갈치회는 반갑기가 그지없습니다. 비린내요? 천만에요! 염려 붙들어 매시고 한번 드셔보십시오. 강추입니다. 요즘 아이들 표현으로 ‘쩔어요’예요. 게다가 쏙회는 또 어떻구요. 찬 얼음물에 흔들어 초장을 찍어 먹지 말고 그냥 쏙만 드셔도 단맛이 무지합니다. 예전에 초장 맛으로 회를 먹었던 게 아닐까 싶게 싱싱하고 게다가 저렴하기까지 한 회 한 접시 포장해서 시장을 빠져나오면 설레기조차 합니다. 듬뿍 말고 쌀눈만큼 살짝 초장 혹은 간장을 찍어 회를 한 점 입 안에 넣으면 그리운 가족들 생각도 다 달아나면서 포만감이 바다처럼 밀려옵니다. 해삼도 가끔은 호기부려서 먹을 만합니다. 제주 앞바다의 해삼이잖아요.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여기는 제주입니다. 올레시장은 생짜 제주어를 여과 없이 들을 수 있는 사람냄새 가득한 장소입니다. 콩나물 500원어치에 손사래 치면서 ‘이렇게나 많이요?’ 하면서 뒷걸음이 절로 쳐질 정도로 인정이 넘쳐나는 곳입니다. 무뚝뚝한 표정 너머로 인정 그득한 눈빛을 머금고 있는 제주사람들의 삶의 장소입니다.

처마 밑 빗소리가 뚝뚝 들리는 비 오는 수요일 아침입니다. 하루가 심드렁하거나 간밤이 무거웠다면 우산 받쳐 들고 메일올레시장 길을 한 번 걸어보시지 않으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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