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 전시회라 동아리 수준 예측했는데, 놀랐다

개를 주로 그린다는 유승현 작가.

모교 동문 예술인들이 전시회를 개회한다고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동아리 수준의 활동가들 작품이 걸릴 것이라 예상하며 마구 기대도 안하고 갔다. 서귀포에서 열린 전시회 가운데 개인 전시회가 아니면 아마추어 전시회들도 많았다.

게다가 봄철 농사일이 워낙 밀려 있어 마지못해 갔다. 그래서 작업하다 신발만 갈아 신고 갔다. 예의가 아닌데도 어쩌랴. 예술보다 밥이고 일이다. 내 신세가 그렇다.

그런데 깜짝 놀랐다. 전시회 개막식에서 지루하게 이어지는 축사들을 제외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간이었다. 서예와 그림, 사진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고, 작가들의 경력이나 이력도 뛰어나다. 무딘 눈으로 봐도 예사롭지 않은 작품들이다.

지난해 가을에 서예전을 취재했던 중석 강경훈 작가도 이번 전시회에 동참했다. 강중석 작가가 동문인 것도 처음 알았다. 강창주 작가는 개인적으로 자주 만나 인사하는 사이였는데 서예작가인지도 몰랐다. 대한미국 미술대전에서 수상도 할 실력이었다니 미처 몰라뵈서 죄송할 따름이다.

입이 벌어질 만한 작품이 많았는데, 가장 눈에 띤 작품은 잠자는 개를 그린 그림이다. 단순한 색감인데, 털 한 올까지 살아 있는 느낌이다. 유승현 작가의 그림인데, 작가는 언제부턴가 개를 주로 그리고 있단다. 건국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다.

유 작가는 “제주도에서는 개가 거리를 자유롭게 다니거나 길가에서 마음 놓고 잠을 자기 때문에 개를 볼 때마다 자유롭다고 느끼게 되서 제 바람을 개에 담아서 그림을 그리게 됐다”고 말했다.

양동규 작가는 두 개의 작품을 전시했다. 하나는 요동치는 바다이고, 다른 하나는 눈보라치는 제주의 중산간 어느 들녘이다. 사실, 사진인지 그림인지도 구분이 잘 안 됐다. 사진이라는데, 칼라사진인지 흑백사진인지도 구분이 되지 않는다.

양동규 작가의 사진. 오른쪽은 다랑쉬 마을 인근의 들녘이다.

들판을 담은 작품은 다랑쉬마을이 있던 근처 들녘의 사진이다. 한 맺힌 제주 역사에 대한 분노와 절규를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한 번 전시회에 그림과 사진, 서예, 조형예술 작품까지 다 감상할 수 있다. 후회도 없을 터이니 가볼만 하다.

아무튼 그렇게 주말 아까운 시간을 보냈다. 봄철 과수원에 풀은 자라고 거름은 늦고, 새순이 나도록 가지 치는 일은 뒤로 미뤄졌다.

 

위계를 거부하는 예술인들이 모처럼 위계의 경계 속으로 들어왔다. 각자 영역은 다르지만 같은 학교를 졸업했다는 이유로 공동 전시회를 마련했다.

서귀포고등학교 동문 예술인들이 개교 50주년을 맞아 서귀포예술의전당에서 기념전 ‘서귀포에 부는 바람’을 마련했다. 서귀포고등학교 개교 50주년 기념사업회 예술분과위원회 주관으로 열리는 전시회인데, 23일부터 29일까지 전시가 이어진다.

23일 오후 2시에 전시회 개막식이 열렸다. 개막식에는 양용혁 총동창회장과 정성중 서귀포고등학교장, 강태완 50주년기념사업회장, 오창림 50주년 기념사업회 예술분과위원장, 위성곤 국회의원, 윤봉택 한국예총 서귀포시지회장 등을 비롯해 동문가족 50여명이 참석해 전시회를 축하했다.

오창림 위원장은 참여 작가들을 대표에서 인사를 전했다. 오 위원장은 “예로부터 서귀포는 예술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도시”라며 “이런 환경에서 소암 현중화 선생과 추사 김정희 선생, 이중섭 화가 등 많은 선배들이 예술혼을 불태웠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예술은 누군가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누군가에겐 위로를 준다”라며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통해 우리 삶이 풍요로워지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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