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고등학교 개교에 얽힌 사연①

필자는 서귀포고등학교 개교 50주년을 맞아 50주년사 편찬위원회 일을 돕고 있습니다. 최근 개교와 관련해 에피소드를 들었습니다. 과거 관료들의 행정 방식과 주민들의 애향심 등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라는 판단에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필자 주

서귀고등학교 초창기 모습.(사진은 서귀포고등학교 자료실 제공)

예상치도 못했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오광협 전 서귀포시장께서 서귀포고등학교 설립과 관련해 증언할 내용이 있다는 기별이다. 이 얘기를 빼면 서귀포고등학교의 역사가 완성될 수 없다고도 전했다.

그래서 양용혁 서귀포고 총동창회장과 함께 오 전 시장의 증언을 듣기로 했다. 오 전 시장을 뵙기 위해 나간 자리에는 서귀포고등학교 개교 당시 교사를 지냈던 노상준 선생도 함께했다. 그래서 두 원로와 대화를 나누며 서귀고등학교 설립과 관련한 눈물 나는 일화들을 귀담아 들었다.

오광협 전 시장은 서귀포고가 설립될 무렵, 서귀읍장에 재직하고 있었다. 서귀읍장는 당연직으로 서귀포고등학교 기성회장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설립과정에도 깊이 관여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오광협 전 시장이 60년대 서귀포의 상황 속에서 서귀포고등학교가 개교한 과정을 설명했다. 87세 노령에도 불구하고 당시 상황을 어제 일처럼 떠올렸다.

오광협 시장과 노상준 선생이 서귀고등학교 설립 과정에 얽힌 에피소들을 상세히 설명했다. 현장에 양용혁 총동창회장도 함께했다.(사진은 장태욱 기자)

5.16혁명이 61년도에 일어났는데, 군사정부가 62년도에 서귀읍장을 부윤경 씨로 교체했다. 부윤경 읍장은 취임하자마자 서귀포에 대학을 유치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대학 유치 자금을 모금하기 시작했다.

부윤경 읍장을 중심으로 서귀포 읍민들이 모금을 거쳐 3만평 정도를 구입했다. 지금의 서귀포고등학교와 중앙여중, 학생문화원과 서귀포도서관이 있는 자리가 모두 제주대학교 자리다. 당시 3만평 가운데 부씨 집안의 땅이 많았는데, 부윤경 읍장이 반 강제적으로 매입하다시피 했다. 당시 지가가 평당 40~60원 정도였다. 그런 과정을 겪고 제주대학교 농촌학부가 64년도에 그곳에 설립됐는데 이후 78년도에 제주시로 옮겨갔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서 고등학교 설립 운동이 일어났다. 성산읍 오조리 출신 현오봉 씨가 지역구 국회의원을 지낼 때였는데, 민주공화당 원내총무를 지낼 정도로 파워가 막강했다. 현오봉 의원은 고등학교 부지도 한 평 없는 상황에서 교육부를 겁박해 공립고등학교 인가를 받아왔다. 당시 서귀읍민들 사이에 공립 인문계고등학교 설립에 대한 움직임이 감지되자 현 의원이 준비도 없는 상황에서 학교 설립을 밀어붙인 것. 필자가 확인한 결과, 서귀고등학교 인가가 난 건 1968년 11월 20일의 일이다.

당시 교육부 장관이 권오병 씨였는데, 파워가 대단했다고 한다. 장관은 여당 원내대표의 말을 듣고 앞뒤 안 보고 억지로 인가를 내줬다. 학교 설립이 결정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읍민들은 부랴부랴 기성회를 결성했다. 부윤경 씨와 오석당 약방 정동규 씨, 강성근 씨 등이 기성회장을 맡았다. 

문교부가 발행한 개교 인가서.(사진은 서귀포고등학교 자료실에서 발췌)

서귀고등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유지들이 학교설립에 뜻을 모았다. 기성회를 중심으로 마을별 모금 캠페인이 진행됐다. 주민 대부분이 초가에 살고, 감귤이 보급되기 전이라 밥 굶기를 밥 먹듯 하던 시절인데도, 주민들을 주머니에서 1000원, 2000원 꺼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 돈들을 모아 지금 삼화아파트 자리에 부지 5000평을 매입했다. 이 와중에도 제주도교육청은 예산 한 푼도 지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69년 학교가 개교한 후 서귀고등학교에 발령된 교사들은 황당하기만 했다. 신생학교에 발령이 됐는데, 교실도 없고 땅 한 평도 없는 상황이었다. 인가가 늦었기 때문에 다른 학교의 신입생 모집도 끝난 상황이었다. 그래서 다른 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2차 모집에 들어갔다. 그렇게 모집한 게 44명이다.

69년에 1회로 입학한 신입생 44명은 서귀중학교 교실을 빌려 공부를 해야 했다. 교사들은 서귀중학교 서무실 한편을 막아서 임시 교실로 사용했다.

학생들이 서귀중학교에서 더부살이를 하는 동안 서귀고등학교 신축공사가 진행됐다. 그런데 이 또한 제대로 되지 않았다. 역시 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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