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문화의 성지 대정읍성 기행’ 10월까지 매달 둘째 주 토요일 진행

대정읍성

김정희 유배지로 잘 알려진 대정읍에는 제주추사관이 대정읍성 내에 자리잡고 있다. 뿐만아니라 광해군을 비판하는 상소 때문에 제주에 유배왔던 동계 정온 선생의 유배지이기도 하며, 이재수의 난의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신유박해(1801년)로 제주도 대정에 유배되어 온 정난주 마리아의 묘역도 자리잡고 있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는 대정읍의 주요 유적지를 답사하는 ‘유배문화의 성지 대정읍성 기행’을 지난 13일 시작으로 10월까지 매달 둘째 주 토요일 진행한다.

대정읍성 기행은 추사 김정희 유배지를 출발해 동계 정온선생 유배지, 이재수의 난을 주도했던 인물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대정삼의사비 등 읍성 내 역사문화자원을 스토리를 들으며 돌아보는 프로그램이다.

답사는 사전에 인터넷으로 신청하거나 제주추사관(710-6802)으로 전화로 신청하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며, 행사 당일 현장에서도 접수한다.

지난 13일 처음 진행된 대정읍성 기행에는 지역 역사에 관심을 갖고 있는 15명 정도가 참여했다. 대다수가 가족단위였는데, 인근 영어교육도시 이주민들이 많이 참석해 관심을 보였다. 기행은 오후 2시부터 2시간 정도 진행됐다. 유산본부 관계자는 “처음 진행되는 것이라 홍보도 부족하고 준비도 부족한 것 같다”면서 “내달에는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추사유배지(사진=양용주 기자)

이날 추사 유배지를 출발해 성벽을 따라 정온선생 유배지, 남문앞물, 대정삼의사비 등을 답사했다. 해설은 제주대 김진철 강사가 맡았다.

제주도지정문화재 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되어 있는 대정읍성은 조선 태종 16년(1416년) 대정현이 설치되고, 2년 뒤에 대정현감 유신이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축조했다. 1915년 군제가 폐지되고 도제가 시행되기 이전까지 대정현의 행정 중심이었으나, 이후 4.3 사건을 거치면서 훼손됐다. 성벽 둘레는 약 1614m이고 높이는 약 5.1m로 보성리, 인성리, 안성리 일대에 걸쳐 있다. 동문, 서문, 남문 세 개의 성문에는 돌하르방이 각 4기씩 총 12기가 세워져 있다.

이원진이 쓴 <탐라지>에는 당시 대정현에 소속된 병력은 파총 1명, 성장 2명, 초관 7명, 기패관 2명, 군관 72명, 기병 204명, 보병 101명, 수군 375명, 차비군 111명, 속오군 555명, 서기 7명, 사명 40명으로 구성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온선생 유허비 앞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사진=양용주 기자)

정온선생 유허비는 1842년(헌종 8)에 제주목사 이원조가 대정현성 동문 밖에 세웠다. 원래 안성리 막은골에 세웠었는데 1963년 보성초등학교 교정으로 옮겨졌고 1977년에 현 위치인 보성초등학교 정문 앞으로 옮겨졌다.

정온선생은  태자 시강원의 필선(弼善)으로 있으면서 영창대군을 죽인 정항(鄭沆)의 처벌과 영창대군의 복원을 주장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1614년 대정현으로 유배되었다가 인조반정 이후 풀려났다. 정온 선생이 머물렀던 자리는 현재 추정만 되고 있을 뿐 흔적은 남아있지 않다.

대정삼의사비(사진=양용주 기자)

대정삼의사비는 중앙정부의 봉세관의 부패와 일부 천주교도들의 행패에 맞서 1901년 5월 제주도민들이 봉기한 '이재수의 난' 당시 세 장두인 강우백, 이재수, 오대현을 기려 60주기가 되는 1961년에 세운 비이다. 처음에는 대정지역 유지들과 이재수의 후손들이 안성리의 중심부인 ‘홍살문거리’에 세웠었다. 이후 도로 확장 등의 사정으로 옮겨다니며 마모되고 초라해지자 이를 안타깝게 여겨 1997년 대정고을연합청년회 주체로 현재의 자리인 대정읍 안성리 추사기념관 앞쪽 도로변에 세워지게 되었다. 

비석 뒷면에는 “여기 세우는 이 비는 종교가 무릇 본연의 역할을 저버리고 권세를 등에 업었을 때 그 폐단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교훈적 표식이 될 것이다”라는 문구로 시작해 이재수 난의 원인과 경과, 비석을 세우게 된 경위와 고쳐 세우게 된 경위 등이 기록되어 있다.

홍살문 거리(사진=양용주 기자)
남문앞물(사진=양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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