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송주연 서귀포가정행복상담소 소장

송주연 서귀포가정행복상담소 소장.

오늘도 고등학교 동창의 단톡방에서 두 건의 아이들 청첩장을 받았습니다. 부고장을 받는 마음과는 달리 행복한 소식을 전하는 청첩장 안 검정 턱시도와 순백의 웨딩드레스로 한껏 치장하고 마주하며 함박웃음을 날리는 신랑신부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슬며시 떠오르는 웃음기도 잠시,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친구들의 등골 휘어짐(?)도 오간데 없고, 아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지 인생 선배로서의 노파심으로 마음이 어지럽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결혼이란 제도 안에 들어가자마자 확인한 것은 웨딩마치와 함께 날아가 버린, ‘인간’으로써의 나는 온데간데없고 ‘여자’인 것만이 거듭 확인되는 하루하루를 살게 되더란 것입니다. 열흘 전 결혼식에 입었던 시아버지와 시동생의 와이셔츠 빨래가 대야 안에 비누방울도 다 꺼지고 구겨진 채 담겨있는 것을 비비기 시작하는 것으로 ‘아, 이런 것이 결혼생활이로구나’하는 느낌적인 느낌(?)이 머릿속에서 울려 퍼진 것을 어제 일인 양 또렷한 기억으로 지금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시집 와서...”라는 이야기를 가로막고 “얘는 시집이 뭐야, 시댁이라고 해야지!”했던 시어머니, “여자는 이집 귀신이 되어야지!”했던 시아버지의 일갈에서 느껴지기 시작하는 며느리에 대한 미묘한 일상적인 하대부터 크게는 남자와 여자 집안의 차별 문제, 양쪽의 다른 호칭의 문제, 명절에 친정을 가는가마는가의 사소하지만 상처투성이 언쟁, 여성을 향한 일상 가사 분담의 불평등, 독박육아의 구조적 문제, 폭력적인 모성애에 대한 압박, 주변에서 아들과 딸에게 행해지는 성차별적인 태도에 대한 부당함, 친구들이 혹은 주변 사람들이 당하는 임금시장에서의 부당한 대우, 불평등한 남녀 임금 구조와 여성 경력 단절의 문제, 그러면서도 ‘나는 아내로, 주부로, 엄마로 열심히 살고 있는데, 이건 뭐지?’하는 속으로부터 올라오는 이상한 죄책감 등등. 결혼하고 출산한 여성들이 경험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남의 일이 아닌 ‘나의 문제’로 개인적인 경험들을 일상적으로 견뎌내면서 힘들었었는데 덜컥! 서른다섯의 젊은 나이에 유방암 진단을 받으면서 정신없이 수술하고 항암제를 6개월 동안 치러내고 머리카락이 다시 나기 시작하면서 다시 여느 해처럼 봄이 오고...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고 첫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등등 숨 가쁘고 치열한 일년 반의 시간을 보내고서야 아이의 같은 반 자모모임에서 동갑인 친구를 통해 우연히 만난 안양여성의전화에서 해묵은 문제들이 일거에 해갈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아, 이 문제는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여성의 문제인거구나!’를 깨닫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예전의 나, 비혼 시절의 내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요. 그간 나는 결혼제도 안에서 얼마나 상처받았는지요. 당사자 관점으로 이 모든 문제를 다시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현실을 좀 더 명확하고 분명하게 파악하고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땅의 모든 여성들은 ‘가부장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득권인 남성들은 자유로울까요? 가정폭력과 성폭력, 성매매의 문제 역시 가부장제와 뗄 수 없는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가 가부장제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과 대안을 모색해야 할 시기입니다. 그것이 이 봄, 우리 아이들을 웃음으로부터 지켜내는 어른이 된 우리들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자, 우리 함께 머리를 맞대어 볼까요? 함께 고민하다보면 분명 새로운 세계가 우리 앞에 펼쳐질 것임을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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