瀛洲吟社 漢詩 連載(영주음사 한시 연재)(6)

吟漢拏暮煙 (한라산 저녁 안개를 읊다)

▶淸虛 金昌琪 (청허 김창기)

 

漢拏暮靄美望遙 (한라모애미망요) 멀리서 보니 한라산 저녁 안개 아름답고

夕照霞光嶂繞腰 (석조하광장요요) 저녁에 비추는 노을빛 산허리를 둘렀도다

登嶺騷人詩賦詠 (등령소인시부영) 재에 올라 시인은 시와 부를 읊고

樂山賞客酒歌謠 (요산상객주가요) 산을 즐겨 구경하는 객은 술타령 부르네

斜陽衆鳥棲巢木 (사양중조서소목) 지는 해에 새들은 나무의 보금자리에 깃들고

昏路歸童負背樵 (혼로귀동부배초) 저문 길 돌아오는 아이 땔나무 짊어졌네

靈室奇岩章我假 (영실기암장아가) 영실기암은 나에게 문장을 빌려주고

鹿潭秘景萬民招 (록담비경만민초) 백록담 숨은 경치 만민을 불러들이도다

 

영실기암.(사진은 장태욱 기자)

◉ 解說(해설)

▶文學博士 魯庭 宋仁姝 (문학박사 노정 송인주)

한시를 쓰는 것은 집을 짓는 것과 비슷하다. 집을 지을 때 설계도에 따라 집을 짓는 것처럼, 한시 속에도 눈에 보이지 않은 시의 설계도(근체시의 형식)가 숨어 있다. 혹자(或者)는 한시의 설계도, 즉 한시의 작법이 너무 어렵다고 꺼리며, 자유롭게 쓰는 고시 형식을 고집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전국 한시백일장에서는 고시 형식을 채택하는 경우는 없고, 근체시 형식을 기준으로 삼아 한시를 심사하고 있다. 당대(唐代) 최고의 시인인 두보(杜甫)의 시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복잡한 근체시 형식 안에서 노련하고 자유롭게 자기의 생각을 표현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영주음사의 한시들도 이런 근체시 형식을 지키고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시는 한라산 저녁 안개를 읊고 있는 시로, 이 시의 운자(韻字)는 ‘遙(요), 腰(요), 謠(요), 樵(초), 招(초)’이고, 칠언율시 평기식의 시이다. 이 시의 수련(首聯)에서는 한라산의 아름다운 저녁 안개와 붉은빛 노을이 산허리를 두른 모습을 읊으며 시상을 일으키고 있다. 함련(頷聯)은 한라산의 풍경으로 향하던 시야를 시인과 등산객으로 옮겨서 읊고 있는데, 이 부분은 위아래의 글자를 ‘登嶺(등령)-樂山(요산), 騷人(소인)-賞客(상객), 詩賦(시부)-酒歌(주가), 詠(영)-謠(요)’로 배치하여 對句를 맞추고 있다. 이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리(地理)를 나타내는 글자는 지리(地理)를 나타내는 글자로, 사람을 나타내는 글자는 사람을 나타내는 글자로 대(對)를 맞추고 있고, 시(詩)는 술로 대(對)를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련(頸聯)에서는 위아래의 글자를 ‘斜陽(서양)-昏路(혼로), 衆鳥(중조)-歸童(귀동), 棲巢(서소)-負背(부배), 木(목)-樵(초)’로 설정하여 對句를 맞추고 있는데, 1구에서는 새들도 해가 지는 것을 알고 보금자리를 찾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고, 2구에서는 저녁 무렵 땔나무를 지고 돌아오는 산촌 아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저녁 시간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새도 아이도 휴식하며 지낼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소소한 행복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미련(尾聯)에서는 저녁 안개가 피어오르는 영실기암이 작자에게 문장을 빌려준다고 말을 하고 있다. 여기서 읊고 있는 영실기암은 무생물이다. 작가는 영실기암에 생명을 불어넣어 작가에게 문장을 빌려주는 대상으로 말을 하고 있다. 이 부분은 당나라 시인 이백(李伯)이 春夜宴桃李園序(춘야연도리원서)에서“대자연이 나에게 문장을 빌려주었음에랴(大塊 假我以文章 대괴 가아이문장)”라고 읊은 구절을 문득 떠올리게 한다.

시를 읽노라면 그 시 속에서 시인의 모습이 보인다. 시인의 마음이 평화로우면 시 속에 평화로움이 나타나고, 시인의 마음이 근심스러우면 시 속에 근심이 은연중에 나타난다. 이 시를 쓴 작가는 경치를 아름답게 느끼며 시를 읊고 있고, 술타령의 흥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있다. 그리고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갈 편안한 보금자리도 언급하고 있다. 작가의 마음속에 이런 시정(詩情)을 담고 있으니, 시인 삶도 이 시처럼 평온함과 여유로움이 항상 함께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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