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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등가죽 벗겨내던 주둔소, 그 고통의 흔적[신간] 한상봉 작가의 <제주4․3시기 군․경 주둔소>(도서출판 흥제, 2019)
장태욱 | 승인 2019.05.03 16:02

 

책의 표지.

제주4․3은 제주민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3만 명에 이르는 도민의 목숨을 앗아가고 삶의 터전을 황폐화시켰다. 도민 사회에 집단 트라우마를 남긴 후, 말 못하는 70여년의 세월을 강요했다.

제주4․3당시 정부는 토벌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응원경찰을 대대적으로 제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서북청년단원 등 폭력조직을 경찰에 편입시켜 공권력이라는 미명으로 집단학살을 자행했다.

49년 무장대가 거의 괴멸된 상황에서도 당국은 미처 내려오지 못한 '산사람' 200여 명을 진압할 명분으로 도내 40여 곳에 주둔소를 설치했다. 주둔소를 축성하는 과정에 제주 전 지역에서 주민들이 동원돼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한상봉 작가가 과거 주둔소가 있던 흔적을 답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제주4․3시기 군․경 주둔소>(도서출판 흥제, 2019)를 발간했다. 출판을 위해 제주4․3평화재단이 연구비를 지원했다.

한상봉 작가는 위미중학교와 남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남대학교에서 국사학을 전공했다. 성균관대학에서 한국사서교육원을 수료하고 지금은 제주국제대학교 도서관에 근무하고 있다. 전문 연구원이 아니라 도서관 사서가 직업이다.

작가가 확인해 발표한 도내 주둔소는 43개소다. 그 가운데 상천리 대남도 주둔소를 포함해 6개소는 1949년 이전에 축성됐고, 가시리 사슴이 주둔소를 포함해 32개소는 1950년에서 1952년 3월 사이에 축성된 것들이다. 아라동 관음사 주둔소 등 나머지 5개소는 1952년 4월 이후에 축성됐다.

▲1948년~1949년 기간 축성된 군․경 주둔소

이승만 정권이 1948년 11월 17일, 계엄령을 선포하고 도민에 대해 무차별 학살을 자행하던 시기에 만들어진 주둔소들이다. 군경은 한라산에서 게릴라 활동을 벌이던 무장대뿐만 아니라 피신했던 민간인들을 토벌작전 대상으로 삼았다.

9연대가 11연대에 합편된 이후 축성한 것으로 보이는 대남도 주둔지와 응원경찰이 축성한 것으로 보이는 생물도 주둔지, 2연대가 머물렀던 관음사․수악계곡․교래리 군 주둔지가 있다.

▲ 1950~1952년 봄 기간 중산간 마을과 목장지 경찰 주둔소

이덕구가 사망한 후 무장대는 거의 궤멸됐다. 1950년도에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해병대가 제주에 주둔하며 무장대 토벌을 실시했다. 중산간마을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잔여 무장대와 주민을 격리하기 위해 주둔소가 축성됐다. 살아남은 자들은 마을 재건과 주둔소 축성, 두 가지 짐을 짊어져야 했다. 주민들로 ‘특동대’를 조직해 주둔소에서 부역을 감당하게 했다.

▲1952년 4월 이후 경찰 주둔소

;제주도 치안수습(잔비섬멸) 계획서에 따라 1952년 4월 이후 한라산 속에 여러 개의 주둔소가 축성됐다. 제주경찰국장은 주둔소 보다 한라산쪽으로 20~30리 안으로 전투 주둔소를 전진 주둔시켰다. 경찰 수뇌부는 무장대 토벌작전이 미진한 것에 불안을 느껴 잔여 무장대 토벌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한라산 수림지 안에 주둔소를 설치하고 토벌작전을 강행했다. 수망리 가친오름 주둔소와 토평동 남성대 주둔소, 영남동 시오름 윗 주둔소 등을 포함해 5곳이다.

당시 주둔소 축성에 도내 거의 모든 마을이 동원될 정도였다. 명도암 주둔소는 화북동, 도련동, 삼양동 마을에서 동원됐고, 위미 감낭굴 주둔소는 위미리, 신례리 사람들이 동웠됐다. 갓 열 살 넘은 어린아이에서 예순 노인까지 ‘훗구실’(한 가정에 한 명을 노역에 배정)이라는 명목으로 동원됐다. 장비도 없는 상태에서 먼 곳까지 가서 돌을 구하고 지개로 날랐다. 등에 피멍이 들고 몸에 껍질이 벗겨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한 작가는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그동안 제주도가 너무 빨리 개발되어 주둔소가 상당수 훼손되거나 사라져버렸다”라며 “존재여부, 정확한 위치가 확인되지 않아 과거 연도별 위성사진을 비교하고 노역에 동원됐던 촌로들을 물색해 증언을 얻은 후에 흔적을 겨우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제주시 소재 주둔소들은 대부분 훼손되거나 없어졌는데, 다행스럽게도 서귀포의 것들은 흔적이 많이 남아있었다”고 말했다.

한 작가는 “현장을 답사하던 중에 진드기에 물리기도 여러 차례였다”며 “제주4․3과 관련해 한 가지 자료를 더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2만5000원, 5월 10일 경부터 구매가능하다.

 

장태욱  taeuk3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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