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송주연 서귀포가정행복상담소 소장

 

올해도 어김없이 어버이날이군요. 어머니, 아버지 안녕하신지요? 아니, 오늘만큼은 살아생전 부르던 대로 엄마, 아부지라고 하고 싶네요. 이리 적고 보니 울컥합니다. 가족을 떠나 멀리 제주에서 마음이 쓸쓸하고 외로울 때면 “엄마, 힘드네...”, “아부지, 나 좀 도와주세요...”하던 때가 있다 보니 두 분 멀리 있지 않고 누구보다도 제 가까이에서 항상 머물러 저를 지켜보고 있는 느낌입니다.

지난 토요일은 서귀포시에서 주최하는 어린이날 행사장에 다녀왔습니다. 부모 손을 잡고 나온 알록달록 아이들을 보면서 아이들을 예뻐하셨던 모습이 떠오릅디다. “얘가 어쩜 이리도 원숭이 같을까?”라면서 산후조리하던 친정집 안방에서 혼잣말을 할라치면 “떽! 아이들은 자라면서 열두 번도 더 변한다, 그런 소리마라!”라고 일갈했던 엄마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합니다. 30일을 넘기고도 염치불구(?)하고 열흘을 더 몸조리할 때, 저녁마다 엄마가 씻기던 그 아이는 정말로 열두 번도 더 바뀌어(?) 이제 자기 집 거실에서 제 딸을 사위와 함께 낑낑거리면서 목욕을 시키고 있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진땀 흘리며 가제 수건으로 이마를 빡빡 닦으며 “이리 못 생겼나...아이구, 못 났네...”하던 엄마의 살짝 옅은 웃음도 그립습니다.

숨 막히는 독박육아에 지쳐 친정에 두 아이를 맡기고 동창들 만나 쌓였던 회포(?)를 풀고 귀가할려면 “이제 오나?”하면서 포대기에 아이를 들러 업고 아파트 마당을 서성일 때 가로등 불빛에 어른거리던 아부지의 그림자는 어찌도 그리 작던지요. “아부지는...파자마바람에 포대기까지... 남사스럽게...”하고 던지면 “아가 잠을 안 자서 식구들 시끄러울까봐 나왔다, 니 오는 것도 보고, 하마 오나? 어떻노...너무 했나?”하면서 허허거리던 아부지의 깊은 눈동자도 어제인 양 가슴 깊숙한 곳에 있습니다.

물놀이공원의 유수풀에서 튜브가 뒤집혀 잠깐 들어갔다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도졌던 중이염 수술을 반년 만에 다시 받으려 서울대병원에 입원했을 때, “아프나?” 하길래 그 순간, 응석받이가 되어 “응, 아부지. 진짜 아프네...불에 덴 쇠꼬챙이로 귀를 쑤시는 것 같네. 유방암 수술 때보다도 더 아프다” 하니 “니가 정말로 아픈가보네. 어려서도 아프다 소리 일절 안 하는 놈인데... 진짜로 많이 아프나?” 하면서 “어허”하던 탄식을 이제 멀리 제주서 육지의 제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마음속으로 기원합니다. 아이들이 아프지 말라고...

가끔 우리 형제들 모이면 “엄마가 해 준 탕수육 먹고 싶다”, “나는 마른 반찬”, “나는 갈비찜”이라고 하던 목소리도 이제는 점점 희미해져가는 엄마 모습처럼 예전의 농도보다는 옅어졌지만 그러나 여전히 우리 형제 모두에게는 살아 숨 쉬고 있는 엄마의 밥상을 느낍니다. 힘든 부도 위기를 두 번이나 겪고도 오뚜기처럼 일어섰던 아버지의 근성과 동네에서 소문난 살림꾼이었던 엄마의 부지런함을 쫓아가고자 “오늘도, 하루만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라면서 차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제주의 아침바람을 감사하면서 맞고 있습니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쉽지 않다지요. 두 분 이렇게 그리움으로 남을 것을 그때는 우리 아이들에 치여 두 분 넓고 깊은 은혜를 제대로 되돌려 드리지 못 했네요. 하느라고 했는데도 이리도 아쉬운 것은 멀리 있기 때문이 아니라 제대로 하지 않음이었음을 이제 나이 먹어 확연히 깨닫네요. 이제 어버이날이 어김없이 돌아오고 보니 송일영과 김영숙의 딸로 부끄럽지 않은 하루를 살아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다시 자신을 추려봅니다. 두 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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