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송주연 서귀포가정행복상담소 소장
“제주도에서 어디가 가장 인상적이예요?” 혹은 “제주도를 처음 찾은 사람들에게 권할만한 곳은 어디예요?”제가 주변인들에게 곧잘 하는 질문입니다.
처음 제가 제주에 온 것은 졸업여행 때였습니다. 같은 과 친구들과 밤새 목포에서 배를 타고 어영부영 자고 일어나보니 제주항이었습니다. 그때의 기억 중 가장 선명했던 것은 백록담을 올라간 것이었는데 영실로 올라간 것은 확실하고 내려올 때, 그만 사달이 벌어지고 말았지요. 학과친구가 관절염에도 불구, 백록담을 도전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만 정상에서 탈이 나고 말았지요. 손가락도 까딱 못할 지경으로 관절염이 도져서 친한 친구 6명이 번갈아 업고 내려오는 것을 밑에서 목격한 것이었지요. 하산길, 다리가 절로 춤추듯 꺽어지는 상황에서 누군가를 업고 내려온다는 것은 경외할만한 일이었지요. 그 친구 이름이 문재였던걸로 기억합니다. ‘결국 니가 문제였어. 이름값 하는군!’하면서 걱정 반 놀림반의 후일담이 전해졌으니까요.
그리고는 신혼여행이 두 번째 방문이었습니다. 용두암에서 해삼과 멍게를 초장에 찍어 먹으며 남편과 낄낄거리던 기억, 그 당시 중문의 여미지식물원에서 키보다 더 컸던 선인장을 마주 대하며 경탄했던 기억, 해안가 어디에서 말을 타고 아슬아슬한 키스신을 마치도 배우처럼 열연(?)했던 기억도 저멀리, 몇 번의 제주도 방문 후 이제 생활인으로 제주에 정착한지 2년을 넘겼습니다.
그간 해안도로 일주도 몇 번인가...제법 이골이 나고 그럴듯한 오름이며 관관 명소라는 곳을 대강 섭렵한 제게 첫 질문으로 돌아가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을 꼽으라면 쇠소깍과 가파도와 추자도, 그리고 숲터널입니다.
비 온 후 여물통에 꽉 찬 소먹이처럼 휘돌아나가는 쇠소깍의 물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민물과 바다가 만나 빚어내는 풍경의 오묘함은 어떻게 말로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청보리가 물결치던 가파도며 성폭력예방교육 출강으로 느닷없이 가게 된 추자도에서 주변에 점점이 뿌려진 42개의 섬들과 바다 색깔의 푸른 조화는 충격적이었지요. 그리고 5·16도로의 늘어진 숲터널은 언제가도 배반하지 않는, 여름이면 여름대로의 무성함으로, 겨울이면 겨울 그대로의 앙상함으로 ‘널 환영해, 널 품을께, 어서 와!’라면서 손을 벌리고 안아주는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5·16도로에서의 반전은 지난 4월의 마지막 주. 제주지방경찰청에서의 성폭력유관기관 회의 후에 서귀포시로 돌아오면서 내리막길 어디 즈음에 다리를 건너는 순간에 일어났습니다. 화창한 해질녁의 제주시를 뒤로 하고 성판악을 지나고 옅은 안개비 내리는 숲터널도 지나 왕복 2차선 도로의 끝 즈음에서 계곡 사이의 다리를 건너는데 "어, 어어, 어어어.....,"하면서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차가 휘청거리면서 중앙선을 넘는데 맞은편에서 줌업되는 헤드라이트처럼 차의 불빛이 보이길래 급하게 꺽은 핸들을 너무 돌렸나봅니다. 산허리를 들이박고 멈춰선 차는 운전석 바퀴가 도랑에 빠지고 앞 범퍼는 처참했지요. 내리는 산그늘은 곧 밤이 될테고, 2차 피해는 막아야한다는 다급함으로 안개비 중에도 정신없이 수신호를 보내면서 휴대폰으로 이곳저곳 연락하는데 멈추며 다가선 차량문을 열고 “사고인가봐요, 많이 떨고 있네요. 뭐 도울 일이라도.....,”라면서 자신의 차에 들어와 한사코 쉬라던 여성운전자는 말 그대로 구원의 신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곳은 단지 풍경으로만 대변되지 않는, 사람 사는 곳입니다. 치열한 삶의 에너지로 숨 가쁘게 돌아가는 희노애락의 땅입니다. 변화무쌍한 자연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울대는 땅, 제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