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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원혼에 길을 안내하는 화살표[신간] 오승철 시인 시집 <오키나와의 화살표> 발표
장태욱 | 승인 2019.06.14 13:37
시집 <오키나와의 화살표> 표지.

오승철 시인이 시집 <오키나와의 화살표>(황금알, 2019)를 발간했다. 갑인년 대기근과 태평양전쟁, 제주4․3은 물론 82년 비행기 추락으로 유명을 달리했던 수많은 원혼들의 노래를 시로 엮었다.

오키나와 바다엔 아리랑이 부서진다/ 칠십 여년 잠 못 든 반다

그 건너/ 그 섬에는/ 조선의 학도병들과 떼창하는 후지키 쇼겐

 

마지막 격전의 땅 가을 끝물 쑥부쟁이/ “풀을 먹든 흘 파먹든/ 살아서 돌아가라”

그때 그 전우애마저 다 묻힌 마부니언덕

 

그러나 못다 묻힌 아리랑은 남아서/ 굽이굽이 끌려온 길,/ 갈 길 또한 아리랑길

잠 깨면 그 길 모를까 그려놓은 화살표

-작품 ‘오키나와의 화살표’ 일부

태평양전쟁 말기 오키나와 전투에서 희생된 740명 조선인 학도병들을 위로하는 시다. 후지키 쇼켄은 당시 소대장으로 참전해 한국 학도병들을 지위했는데 전투에서 유일하게 살아남고 조선인 학도병 유골을 봉환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오키나와의 화살표는 후지키 쇼켄이 조선인 학도병 원혼에게 고향을 찾아갈 방향을 알려주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표지판 속 화살표는 한반도를 향한다.

불을 끈 지 사흘 만에 다시 번진 산불처럼/ 다시 번진 산불처럼 그렇게 꿩은 울어,

전투중지 무장해제 숨바꼭질 꿩꿩, 오라리 연미마을 바리밭에 꿩꿩, 너분숭이 섯알오름 <4․3평화공원> 양지꽃 흔들며 꿩꿩, 그 소리 무명천 할머니 턱 밑에 와 꿔~엉꿩

 

칠십 년 입술에 묻은 이름 털듯 꿩이 운다

-작품 ‘3일 평화(부제 4․3 두 청년 이야기)’의 일부

김익렬 연대장과 김달삼 사령관이 48년 4월 28일에 구억국민학교에서 펼쳤던 평화회담을 소재로 쓴 시다. 이후 미군정은 5월 1일에 소위 ‘오라리 방화사건’을 일으켜 회담을 무산시켰고 제주4․3의 비극을 막으려는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 그리고 너분숭이는 군경의 학살을 증언하고 그 60년 후에는 희생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제주4․3평화공원이 지어졌다. 무명천 할머니의 삶은 비극을 고스란히 증언한다.

이번 시집에는 유난히 꿩이 자주 등장한다. 꿩은 제주 들녘 어디에나 있다. 놀라 짧게 비병을 지르면서도 멀리 날지를 못한다. 비극을 피하고 싶어도 섬을 떠나지 못했던 섬사람들의 서러운 원혼이다. 70년 전 비극을 목격했던 꿩이 여전히 제주4․3평화공원에서, 무명천 할머니 곁에서 울고 있다.

용산에서 목포역,/ 덩크렁 덜컹 완행열차

번번이 빈손으로 돌아서는 청춘이지만/ 새벽녁 쪽잠은 공짜 배편까지 챙겨주던

 

아직은 연륙의 꿈 내 안에 있는 걸까/ 안성호 갑판 같은 그 식당에 다시 서면

삼학도 섬 그림자가/ 발 밑에 삐걱인다

-작품 ‘목포항’(부제 제주식당)의 일부

목포행 완행열차와 안성호가 등장하는 걸 보니 아주 오래 전에 준비한 작품이다. 서울에서 떠돌던 청춘은 고향 제주에 가려고 값싼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목포로 향했다. 그리고 목포에서 제주행 여객선 안성호에 타기 위해 기다리다 인근 제주식당으로 걸음을 향했다.

섬 그림자가 제주식당과 삼학도를 연결하고 있다. 마치 제주와 삼학도를 잇는 느낌이다. 도회지 삶에 찌든 자신에게 다시 고향 제주를 떠나올 마음이 있는지 묻는다.

김효선 시인은 해설에서 “시인은 죽은 정령들의 목소리를 대신 전달한다. 영혼의 목소리를 빌어 슬픔의 부조리를 꼬집고 있다”고 했다. 원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인의 슬픈 운명을 읽을 수 있는 시집이다.

 

오승철 시인 : 남원읍 위미리에서 태어나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조집 <터무니 있다>, <누구라 종일 홀리나>, <개닦이> 등을 발표했다. 중앙시지도상과 한국시조대상, 이호우시조문학상, 오늘의시조문학상, 한국시조작품상, 유심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오늘의 시조시인회의 의장을 맡고 있다.

장태욱  taeuk3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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