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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인사들 모임 어색해 도망치는 시인[신간] 김순이 시인의 시선집 『제주야행』(황금알, 2019)
장태욱 | 승인 2019.06.21 14:42
김순이 시인의 시선집 『제주야행』(황금알, 2019).

김순이 시인이 자신의 시세계를 정리하는 시선집 『제주야행』(황금알, 2019)을 발표했다. 섬사람으로, 시인으로 살면서 가슴에 담아온 자유에 대한 갈망과 미지에 대한 원초적 그리움, 떠나간 사랑에 대한 연민 등을 읽을 수 있는 작품 80점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김순이 시인은 1946년 제주시 삼도동에서 태어나 제주여고를 졸업했다. 여고 2학년 시절인 1963년에 월간 <학원>에 시 ‘자회상’을 발표했으니, 시작에 입문한지도 56년이 넘었다. 이후 시인은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제주여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85년에 제주문인협회 회원으로 가입해 문학활동을 재개했고, 1988년에 계간 <문학과 비평>에 ‘마흔 살’외 9편으로 등단했다. 2001년 첫 번째 시집 『제주바다는 소리쳐 울 때 아름답다』(문학과 비평)을 발표한 이후 시집을 다섯 차례나 발간했다. 지난 2014년에 성산읍 난산리로 이주해 살고 있다.

『제주야행』은 그간 발표한 5개 시집에서 좋은 작품들을 추려 1부에서 5부로 나눠 엮은 것이다.

1부(제주바다는 소리쳐 울 때 아름답다)에 ‘그대는 시인’이라는 시가 있다.

저녁 바다에 지는 해를 전송하고/ 실연한 듯 허탈해진 발길 가누는/ 그대는 시인

저명인사들이 모인 리셉션에 넥타이 차림 어색해서/도망치듯 빠져나가는/ 그대는 시인

-시의 일부

시인은 바람과 꽃과 교감하는 사람이다. 지는 해와 눈물겹게 작별하고, 흔들리는 풀잎에 마음이 아픈 사람이다. 그런데 바람이 없고 들꽃이 메마른 현대 문명사회에서 시인은 질식할 수밖에 없다.

산소를 측정하는 기계가 정교하게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해군은 토끼를 잠수함에 태웠다. 산소가 부족하거나 압력에 이상이 생기면 토끼의 귀에 돌출된 혈관이 사람의 혈관보다 먼저 파열하기 때문이다. 루마니아 작가 콘스탄틴 게오르규는 작가를 ‘잠수함 속의 토끼’에 비유했다.

‘저명인사들이 모인 리셉션’에서 시인이 가장 먼저 빠져나오는 것은 저들의 대화 속에 생명과 산소가 부족함을 가장 먼저 감지하기 때문이다.

3부(미친 사랑의 노래)에 있는 작품 ‘이어도1’도 가슴이 아리다.

그리운 사람들/ 고운 옷 입고/ 고운 밥 먹으며/ 연꽃 구경하며 우음 짓는 섬

가슴이 미어질 때마다/ 떠올리고/ 오장이 찢어질 때마다/ 불러내며

이승의 주린 육신 달래는/ 영혼의 땅/ 어여도여 이여도여

-작품의 일부

제주섬은 기근과 수탈이 끊이지 않았던 섬이었다. 이 섬에서 주민들은 거친 바다와 메마른 땅을 터전 삼아 삶을 유지했다. 어떤 이는 풍랑에 휩쓸려 죽고 어떤 이는 굶어 죽었다. 또 어떤 이는 왜구의 노략질로, 어떤 이는 국가의 탄압으로 죽었다. 살아서 단 한 차례도 자유를 맛보지 못했던 이들은 때론 혁명을 꿈꾸고 때론 죽어 이상향에 닿길 소망했다.

이어도는 섬사람들이 꿈꾸던 이상향이다. 사람들은 출항한 배가 돌아오지 않으면 이어도에 닿았을 것이라 안심했다. 이어도에서 고운 옷 입고, 고운 밥 먹고, 연꽃을 구경하며 살고 있을 것이라 위로하며 그렇게 주린 육신을 달랬다.

시인은 머리글에 “시골로 이사 온지 5년, 새소리가 아침잠을 깨우고 어느 문을 열어도 초록 세상이 안겨온다”라며 “민들레 채송화 산수국 쑥부쟁이 노랑어리연꽃 … 이들과 눈 맞추며 사는 나에겐 오늘 하루가 시다”라고 했다.

그런데 시인이 그토록 사랑하는 난산리 초록 세상이 제2공항에 깔릴 처지에 놓였다. ‘파괴와 수탈’은 제주와 시인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인가?

장태욱  taeuk3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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