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보전지역 해제·문화재청 설득 과제.. 道, 4.3주요유적지종합관리계획으로 해결 시도

서복전시관 야외 공연장에 바라본 인근 해안. 억울한 주민 248명의 목숨이 희생된 곳이다.(사진은 장태욱 기자)

시원한 물줄기가 바다로 떨어지는 장관을 보러 수많은 관광객이 즐겨 찾는 서귀포 정방폭포. 오래전부터 특이한 풍광을 좇아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데, 실상은 제주4‧3의 아픔을 뼈저리게 기억하는 곳이다.

1948년에 제주 4‧3이 발생하고 그해 8월 15일에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됐다. 정부는 11월 17일에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민간인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작전을 수행했다. 제주4‧3 당시 정방폭포 인근 서귀리는 서귀면사무소와 서귀포경찰서 등이 있는 산남의 중심지였다. 중산간 지역 초토화 작전이 시작되면서 2연대 1대대가 서귀리에 주둔했고, 서북청년단도 이곳에 사무실을 열었다.

당시 인근에 있었던 서귀포경찰서.(사진은 '창제60주년 남제주화보집'에서 발췌)

토벌작전이 시작되자 군경 당국은 남원읍과 효돈동, 안덕면, 대정면 등지에서 무고한 주민들을 붙잡아 서귀리에 있던 감자 전분공장, 단추공장 등에 집단 수용했다. 그리고 붙잡힌 주민들을 1949년 1월까지 정방폭포 주변에서 처형했는데 확인된 피해자만 248명에 달한다.

당시 많은 이들이 학살된 소남머리에 서복전시관이 자리를 잡았고 주변은 중국인 관광객들 맞기 위해 서복과 관련된 조형물들로 채웠다. 하지만 당시 비극의 실상을 알리는 어떠한 조형물이나 안내표지도 설치되지 않아 유족들은 비통한 심정이다.

정방4․3유족회(회장 오순명)가 결성되어 이곳에 위령탑을 건립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고 위성곤 국회의원이 애를 써 두 차례 정부 예산도 교부됐다. 위령탑 건립이 가능해질 듯 보였지만, 입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교부금을 반납해야 했다.

제주자치도와 정방4․3유족회는 위령탑 건립을 위해 한라대 김동민 교수와 박경훈 전 문화예술재단 이사장 등과 협의했다. 특히, 위령탑의 위치와 관련해서는 현 서복전시관 야외공연장의 무대가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 곳이 제주4․3 당시 가장 많은 주민이 희생을 당한 곳이고, 주변에서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이기 때문이다.

유족회와 전문가들은 야외공연장 무대에 위령비를 설치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런데 이 곳이 절대보전지역, 공원지구, 문화제보호구역 등에 묶여 있어 건립이 쉽지 않다. (사진은 장태욱 기자)
위령비 건립와 관련해 간담회가 20일 저녁 열렸다.

야외공연장은 현재 서복협회가 관리하고 있는데, 정방동 주민들이 각종 문화행사를 펼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게다가 문화재보호구역이면서 절대보전지역. 공원지구 등에 지정되어서 위령비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시청 도시과와 문화예술과, 해양수산과 등이 협의해서 절대보전지역이나 공원지구에서 일부 해제해야 한다. 게다가 중국서복협회에서 기증한 물품 등이 문화재로 지정됐기 때문에 문화재청도 설득해야 한다. 넘어야할 산이 첩첩이 남았다.

서귀포시는 한동안 무대 서쪽에 설치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지만 유족과 전문가들은 위치를 옮기면 위령탑을 설립하는 취지가 무색해지기 때문에 당장 설치가 안 되더라도 현재 무대가 있는 자리에 설치하는 방안을 찾아보자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제주자치도는 최근 4.3주요유적지종합관리계획을 수립하는 중이다. 도내 500여 유적지 가운데 20개를 선정해 국비로 유적지를 관리하는 방안을 찾겠다는 구상이다. 오는 12월에 기본계획이 수립되면 국비로 사업을 추진할 근거가 마련된다.

이런 과제들을 풀기위해 유족회와 제주도청‧서귀포시청 관계자들이 20일 저녁 흑한우명품관에서 만났다. 유족회가 사업의 추진 경과를 확인하기 위해 면담을 요청해 성사된 자리다.

제주도청 관계자는 “그동안 장소가 제대로 선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을 추진한 탓에 다소 엉뚱한 장소에 위령탑이 건립되는 사례가 있었다”라며 “장소 문제 먼저 해결하고 사업비를 확보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그리고 “ 4.3종합관리계획이 나오면 부서별 협의를 거쳐 절대보전지역을 해제하고 문화재청 설득의 논리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라며 “위령탑 건립은 물론 보조사업으로 관리비도 확보가 가능해질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유적지종합관리계획이 수립되면 내년에 국비를 신청해 2021년에는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족회 관계자는 “그동안 가족을 잃고 할말 못한 억울한 세월이 있는데 위령탑이라도 건립해서 억울한 원혼들을 달래야 한다”라며 “실체도 불분명한 서복 때문에 사업이 자꾸 차질을 빚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소 시일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된 위치에 위령탑을 건립해 이곳이 4‧3당시 많은 주민이 희생된 곳임을 선명하게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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