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송주연 서귀포가정행복상담소 소장

송주연 서귀포가정행복상담소 소장.

여성폭력의 후유증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먼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을 제대로 알아야하겠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란 심각한 외상을 보거나 직접 겪은 후에 나타나는 불안장애를 의미하는데, 전쟁과 사고, 자연 재앙은 물론 가정폭력이나 성폭력을 포함한 다양한 폭력의 상황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로 인하여 심각한 신체 손상이나 생명을 위협하는 경험을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하고, 이 같은 외상적 경험들에 대하여 불안감과 공포심을 느끼고, 아무도 도와 줄 수 없다는 느낌을 갖게 되고, 반복적으로 사건이 회상되기도 하고 이것이 다시 기억나는 것을 회피하려고 애를 쓰게 과정이 반복되기도 합니다.

폭력피해의 후유증은 개인에 따라 다소 다르게 나타납니다.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우울감, 두려움, 무력감, 자존감 저하 등 단기적인 증상들을 보이기도 하지만, 피해 노출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생활 부적응 문제라던가 자신감의 부족 혹은 히스테리컬한 상태에서의 공격성을 보인다거나 급격한 기분변화로 인하여 충동자제력이 부족해진다던가, 심지어는 절망 끝에 가출을 하든가 자살하는 사례까지도 나타납니다. 심각한 가정폭력으로 인하여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아파트 창문에서 뛰어내리길 시도하다가 그만두었다고, 허탈하지만 담담한 표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던 내담자도 떠오릅니다.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자식처럼 기른 얘 때문에 내가 죽을 수도 없어요”라고 한 여성,“‘이렇게 살아야 한다면 죽는 것이 차라리 더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아침저녁으로 들어요”라고 했던 내담자는 또 얼마나 많았던가요. 가정폭력이나 성폭력의 후유증은 어쩌면 살아있음과 맞바꿔서 죽음을 당기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것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원치 않는 성적 행위가 상대방의 동의 없이 타인에게 가해지는 것이 성폭력이라면 모든 성폭력사건에 있어서 성희롱이나 성추행은 가볍고 경한 사건으로 강간은 무겁고 중한 것으로 우리는 착각하기가 쉽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피해자에게 있어서 모든 성폭력사건은 다 무겁고 강하고 위중한 것입니다. 첫 직장에서 지속적, 반복적으로 몇 개월간 상사로부터 직장 내 성희롱을 경험한 20대의 젊은 여성은 고민하고 망설이다가 어렵사리 상담소를 찾아와서 하소연하는 것을 듣다보면 이 세상의 모든 폭력은 결코 가벼운 것은 없다는 것이 피해자상담을 한 제 생각입니다. 무심코 던진 돌이 상대방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폭력은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피해자의 연령대는 제 경우, 가장 어린 아이가 세 살, 가장 나이 많은 경우는 78살의 동네 할아버지에게 강간 피해를 당할 뻔한 할머니였는데 74살이었습니다. 이 분의 경우, 자신의 집을 방문한 가해자가 끌어안으려 해서 피하고자 도망가다 염좌-허리를 삐면서 동네병원에서 두 달간 물리 치료를 받아야 했는데 그보다 더 한 피해는 40여 년간 살던 정든 동네를 떠나 이사를 해야 했으며, 주택의 출입문과 집안에 CCTV를 달고 드나드는 사람을 일일이 확인해야만 하는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의 치료는 우선 외상을 경험한 것을 지지해 주고 격려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이에 대한 대처 방법을 교육해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후 경우에 따라서 약물 치료와 정신치료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하지요. 여성폭력 피해자가 상담소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당연한 이유입니다. 혼자서만 고민하지 마시고 상담소의 문을 용기 내어 두드리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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