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송주연 서귀포가정행복상담소 소장

송 주연 서귀포가정행복상담소 소장.

‘매 맞는 아내’의 이야기에서 꼭 따라붙는 질문은 ‘매 맞는 남편도 있잖아요?’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매 맞는 아내가 있는 것처럼 매 맞는 남편 역시 엄연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 수치에 있어서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가정폭력 피해자 중 신체적 폭력을 당하는 남녀의 비율은 97.3%대2.7%입니다. 97대3이라는 것은 100명의 가정폭력 피해자가 있다면 매 맞는 아내는 그중 97명, 매 맞는 남편은 3명이라는 의미입니다. 매 맞는 남편이 3명이란 것은 무시해도 된다는 수치가 아닙니다. 주목해야 하는 사실은 매 맞는 아내가 훨씬 더 많고 훨씬 더 치명적이라는 것입니다.

잽콥슨(Jabcobson)과 가트만(Gottman)은 연구에서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것과 아내가 남편을 때리는 것은 그 의미와 출발점이 다르다고 했다. 남편은 아내를 통제하기 위하여 폭력을 사용하고 그 결과 아내는 두려움을 느끼지만, 남편들은 아내가 때린다고 해서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이것은 남편이 아내보다 신체적, 경제적, 사회적 권력을 더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편은 신체적으로 몸집이 크고 힘이 세기 때문에 아내가 더 다치기 쉽고 손상도 더 크다”고 했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피해자들은 참혹했습니다. 사라져가는 멍 위로 또 다른 멍들이 교집합처럼 무늬를 그리는 몸 여기저기를 가정폭력 피해의 증거로 사진을 남기기 위하여 동전이나 자를 놓고 크기를 확인하면서 마치도 전기가 내 몸 위를 찌르고 지나가는 듯한 전율스러웠던 기억도 있습니다. 사진으로 만나 피해사실은 칼로, 전기다리미로, 끓는 물로 손상된 환부를 드러낸 상태며, 뼈가 부러져 기브스를 하고... 그야말로 처절한 고통의 흔적들로 보는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이기도 했습니다.

다이아나 비비안(Diana Vivian)은 “남자가 여자보다 신체적으로 더 강하고, 남자는 통제 수단으로 폭력을 사용하도록 사회화되었기 때문에 남편이 아내를 쉽게 때릴 수가 있다. 남편이 아내를 공격하는 것은 단순히 신체적 공격만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아내에게 신체적 공격을 사용함으로써 통제와 협박을 통해 친밀한 상대를 정복하려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합니다.

요즈음 뉴스에서 많이 보게 되는 데이트폭력의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하지요. 단지 연락이 되지 않거나 자신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성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머리채를 휘어잡아 맨바닥에 끌고 다니고, 이단옆차기로 날라들어 가격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이거야말로 영화 속의 한 장면인가 눈을 씻고 다시 보게 되는 CCTV 영상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입니다. 남성의 목표는 오로지 ‘여성에 대한 통제와 협박’입니다.

가정폭력 가해자 프로그램에서 부부가 쌍방으로 가해자로 판결 받아 오는 경우가 왕왕 있었습니다. 남편의 주먹을 막으려 방어 차원에서 손을 올렸는데 그게 주먹질이 되었다고 억울해 하는 아내도 있었습니다. 남편을 차마 때릴 수가 없어서-때리면 더 큰 폭력으로 해코지를 당하므로 화분을 집어던지거나 가재도구를 내동댕이쳤다 파편에 다친 남편의 맞고소로 졸지에 가해자가 된 아내도 있습니다. 과연 이런 경우 부부싸움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두 사람의 힘과 권력이 대등한 위치에서 진행되지 않았는데요? 폭력의 발생과정이나 폭력의 내용, 폭력으로 인한 손상의 정도 또, 폭력이 끝난 이후 가정 내에서의 권력 양상의 변화 등에서 남녀는 분명한 차이가 나타납니다. 가정 내에서 더 큰 힘과 권력을 가진 남편이 아내를 통제하기 위하여 행하는 폭력과, 힘과 권력이 없는 아내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하여 행해지는 폭력은 결단코 동일하게 평가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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