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의날 특집 2] 주상절리와 풍화혈의 섬, 섶섬

글라스 보트 티고 섶섬으로 가는 길.(사진은 장태욱 기자)

유리바닥을 통해 지귀도 해안을 관찰한 후, 우리를 태운 보트는 섭섬을 향해 서쪽으로 달렸다. 섶섭은 지귀도 서쪽 5km 남짓한 거리에 있다.

배가 섶섬을 향해 내달리는 동안 오후의 태양은 뱃길 앞에 찬란하게 쏟아졌다. 눈부신 바다 너머에 섬이 희미하게 실루엣을 드러냈다.

섶섬은 서귀포시 보목동 산 1번지에 해당하는 무인도서다. 섬은 동서로 620m, 남북으로 420m, 정상부 표고는 159m에 이른다. 가운데가 높게 튀어나온 철형사면 구조를 띠고 있다. 다만 섬의 남쪽은 파도의 침식을 많이 받아서 수직에 가까운 해식절벽으로 이뤄진 반면, 북쪽은 침식이 적어 상대적으로 완만하다.

고기원과 박준범 등을 포함해 5명의 연구자들은 지난 2013년 대한지질학회지에 논문 ‘제주도의 화산활동’을 발표했다. 이들은 도내 78개 시추공에서 획득된 시추 코어와 74개의 노두 시료의 암석 연대를 측정해 제주도의 화산활동사를 새롭게 제시했다.

연구에 따르면 약 180만 년 전에 제주에서 최초로 화산활동이 시작됐다. 당시는 육지가 만들어지기 전이었기 때문에 바다 속에서 화산활동이 시작됐다. 당시 분출한 화산 분출물이 새연교 서쪽 절벽에 남아있어서 이 층을 서귀포층(일본인 지질학자 하라구치가 1931년에 붙인 이름이다.)이라 부른다. 서귀포층을 만든 화산의 분출은 오래 지속되어 약 50만 전에 끝났다. 서귀포층은 제주도 대부분 지역의 지하에 분포한다.

화산폭발로 서귀포층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육상 환경이 조성됐는데, 약 100만 년 전에 육상으로 최초의 현무암 분출이 시작됐다. 당시 분출의 흔적은 동홍동이나 신례리 등 매우 제한적인 지역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90만 년 전에서 65만 년 전 사이에 점성이 높은 안산암질 마그마가 여러 곳에서 분출됐다. 산방산과 가파도, 문섬, 섶섬, 각수바위, 월라봉(대평리) 등이 대표적이다.

섶섬의 생성 시기는 약 72만5000년 전인데, 당시는 해수면이 현재보다도 100미터 이상 낮았다. 점성이 높은 마그마가 분출해 산방산과 비슷한 종모양의 용암돔을 형성했는데, 이후 해수면이 상승해 섬의 신세가 됐다.

안개에 덮인 섬은 뱀의 전설을 떠오르게 한다.(사진은 장태욱 기자)

배가 근접하자 섬이 조금씩 제 색깔과 모습을 드러냈다. 어디서 몰려왔는지, 안개구름이 섬의 서쪽을 희미하게 덮고 있다. 섶섬에 안개와 관련해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섬에 용이 되고 싶은 뱀이 살았다. 용이 되길 염원하며 3년을 기도했다. 여의주만 있으면 용이 되길 염원하며 용왕이 그만 여의주를 잃어버렸다. 뱀은 100년 동안 여의주를 찾아 물속을 뒤졌지만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한채 죽고 말았다. 비가 오려면 섶섬 봉우리에는 안개가 끼었는데, 사람들은 안개가 뱀의 원한 때문이라고 했다. 여름 작열하는 태양이 수증기를 빚어 만든 몽환의 섬, 그 섬엔 뱀의 슬픔이 서려있다.

섬은 점차 신비의 베일을 벗고 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대학 초년생 시절에 여자 친구 소개시켜준다는 말에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커피숍에 앉아 기다리는데 멀리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여학생, 멀리선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그야말로 지와 미의 복합체다. 서프라이즈!! 섶섬은 바로 그 기억을 되돌려줬다.

섶섬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건, 우선 섬을 꽉 채운 주상절리 때문이다. 섬의 동쪽에서 한 바퀴 둘러보는데, 마치 전체를 주상절리로 외장공사를 한 듯하다. 남쪽에서 파도의 침식을 많이 받은 주상절리대는 기둥이 짧은 반면 북쪽의 것들은 매우 길다.

섶섬은 전체가 주상절리로 덮여 있다.(사진은 장태욱 기자)
소금에 의해 바위가 부서져 떨어져 나간 자리에 큰 구멍들이 남는다. 이를 타포니(풍화혈)라 하는데, 그만큼 풍화에 시달린 기간이 길었다는 증거다.(사진은 장태욱 기자)
상대적으로 파도의 침식이 적은 북쪽 사면에 다양한 식생이 분포한다. 특히 파초일엽의 자생지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는다.(사진은 장태욱 기자)

대포동 주상절리의 경우 기둥의 모양이 연필처럼 단순하고 규칙적인 반면, 이곳에선 그 모양이 다채롭다. 중간에 휘어진 것들도 있고, 위로 갈수록 두께가 얇아지는 것들도 있다.

두 번째로 놀라는 건 주상절리에 구멍을 뚫어놓은 타포니(taffoni, 풍화혈) 때문이다. 타포니는 산지 내륙에서는 서릿발의 작용에 의해 주로 나타나는 반면, 해안가에는 소금의 풍화작용에 의해 나타난다.

해안가 바위의 작은 구멍 안에 바닷물이 들어가 머물게 되는데. 바위 안으로부터 소금에 의해 풍화작용이 일어난다. 그 작은 구멍들은 점점 성장하는 과정에서 바위 내부가 팽창하며 바위 표면을 밀어내 구멍을 만든다.

환경부와 국립환경연구원이 지난 2002년에 발표한 ‘전국 무인도서 자연환경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섶섬 타포니 가운데 가장 큰 것은 폭이 660cm, 높이가 210cm에 깊이가 무려 160cm에 이른다고 한다. 섶섬의 타포니가 이렇게 발달된 것은 그만큼 해풍에 오래 시달렸다는 흔적이다.

섬의 남쪽은 파도의 침식으로 식생이 크게 발달하지 못했는데, 북쪽에는 다양한 식생이 분포한다. 앞서 언급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 바위섬에 무려 155종의 식물이 자란다. 구실잣밤나무와 참식나무, 담팔수, 생달나무, 까마귀쪽나무 등이 분포하고, 정상부에는 곰솔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파초일엽의 자생지이자 북한계이기 때문에 천연기념물 제 18호로 지정돼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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