瀛洲吟社 漢詩 連載(영주음사 한시 연재) - 14

秋思(추사) 가을을 생각하며

                         ▶猊巖 姜秉周 (예암 강병주)

蒼空高爽仲秋臨(창공고상중추임) 푸른 하늘 높고 상쾌해져 한가위 이르매

田野黃雲漸近今(전야황운점근금) 들녘의 누런 구름 점차 가까워짐이라

岸上金風來客路(안상금풍래객로) 언덕 위 찬바람은 나에게 불어오나니

林間紅葉出天心(임간홍엽출천심) 숲속 붉은 잎은 하늘 기운 드러낸다오

停車賞景詩囊滿(정거상경시낭만) 차 세워 경치 구경에 글 주머니 가득해

坐榭吟歌意氣深(좌사음가의기심) 정자에 올라 읊조리니 한뜻 깊어짐이라

不熱不寒開卷讀(불열불한개권독) 덥거나 춥지 않아 책을 펼쳐 읽는데

鄕村日暮動淸砧(향촌일모동청침) 동네에 해 저물어 다듬이 소리 요란 타오

가을 들녘에서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모습이다.(사진은 장태욱 기자)

◉ 解說(해설)

▶大韓漢詩學會 會長 玄巖 蘇秉敦 (대한한시학회 회장 현암 소병돈)

 

우리말에서 가을이란 ‘간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되었는데, 농경사회에선 가을걷이 즉, 추수로 결실한 농작물을 갈무리하는 철을 이름한다. 봄은 바라봄이고, 여름은 곡식과 열매들의 무성한 열음이며, 가을은 거두어 돌아감이다. 하여 가을은 되돌아가는 철이다. 뿌리나 혹은 흙으로 되돌아가며 떠나감에는 예나 지금이나 아쉽고 서운한 생각이 일어나 ‘나는 누구인가?’ 하는 근원적인 물음 앞에서 세상으로부터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끼기에, 흔히 세인들은 가을을 고독의 계절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동서양의 여러 형식의 시(詩)에 가을을 노래한 시들이 공통적으로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뿌리로 되돌아가기 전에 온몸을 태우듯 고움을 드러내는 나뭇잎의 갈 단풍과, 겨우 목숨만을 연명하며 살아가는 계절인 겨우살이 앞의 갈걷이는, 문틈으로 새어드는 찬바람처럼 쓸쓸한 황량함이 마치 밀레의 그림 만종(晩鐘) 속 여인의 애잔한 공허함과도 같다. 이래서인지 가을의 시는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 우러러 나옴이 많고, 꽃 피고 새 우는 화려한 봄날의 시는 두 눈으로 바라보며 읊조리는 경물시(景物詩)가 한시(漢詩)에 많은 까닭이다.

이번에 연재하는 시는 영주음사의 숨은 보석 같은 강병주의 ‘秋思(추사)’라는 제목의 시이다. 이 시는 칠언율시 평기식의 시이고 ‘侵(침)’ 운목(韻目)의 ‘臨(임), 今(금), 心(심), 深(심), 砧(침)’을 운자로 썼으며, 근체시의 시법에서 어긋남이 없어 이해하기가 쉽다.

전반적인 시상이 추석 드는 가을에 누구나 느끼는 소회를 꺼낸바, 서로 상대되는 말을 맞추는 소위 대구로써 경치를 말해야 하는 3, 4행의 함련에서 岸上(안상)과 林間(림간), 또 金風(금풍)과 紅葉(홍엽)으로 대구를 구성한 것은 선현들의 작시법을 철저히 연마했음을 알 수 있음이요, 감정과 정취를 서술해야 하는 5, 6행의 경련에서 停車(정거)와 坐榭(좌사)로 대구를 놓았음은 杜甫(두보)의 시 秋興(추흥)을 읽어 터득한 결과다. 결론인 7, 8행의 미련에서는 독서의 계절과 아련한 다듬이 소리로 가을의 정취를 만끽했다.

기, 승, 전, 결을 율시에서는 수련, 함련, 경련, 미련이라고 하는데, 시상을 엮어가는 어려움을 도처에서 하소연하기에, 이해가 쉽도록 脚(각), 目(목), 心(심), 口(구)로 풀어서 설명해 본다.

‘脚(각)은 어디에 갔는가?’를 나타내는 부분으로, 율시에선 수련을 읽으면 읊는 자가 산에 있는지, 바다에서 낚시하는지를 알 수 있어야 하고, 目(목)은 ‘무엇을 보는가?’이니, 이것은 함련으로, 보이는 경치를 서술해야 하며, 心(심)은 경련으로, 작자가 있는 곳에서 경치를 바라본 느낌 즉, 마음의 깨달음을 써줘야 하며, 미련인 口(구)는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한다는 사실에 부합하는 말을 드러내야 하는 곳이다. 脚(각), 目(목)에 해당하는 수련과 함련은 그림으로 옮겨 나타낼 수 있기에 ‘可觀(가관)’이라고 하며, 心(심), 口(구)에 해당하는 경련과 미련은 생각과 말이므로 드러낼 수 없어 ‘不觀(불관)’이라고 한다. 강병주의 心(심)에 해당하는 경련의 停車賞景(정거상경)은 그림으로 드러낼 수 있고, 詩囊滿(시낭만)은 그릴 수 없으며, 坐榭吟歌(좌사음가)는 드러낼 수 있고, 意氣深(의기심)은 그릴 수 없어, 경치 중에 마음을 드러낸 景中情(경중정)이 되었다. 미련에서 가을을 나타낼 때 자주 끌어 쓰는 독서와 다듬이질을 이끌어 마무리한 것은 작시의 노련함이며 다듬이 소리로 시의 맛을 한껏 높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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