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평생학습관 서예교실, 참가자들 진중한 분위기 속 솜씨 다듬어

오창림 선생이 수강생 고성진 씨의 글에 첨자로 지도하고 있다. 고성진 수강생은 서예 경력이 5년인데 미술대전에서 특선을 차지할 정도다.(사진은 장태욱 기자)

강의실에 묵직한 정적이 흐른다. 평생학습프로그램인데, 참가자들의 표정이 한결 진지하다. 주부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는 여타의 시민강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참가자들도 모두 남자들이다.

매주 금요일 서귀포시평생학습관 1층 미술실에서는 시민을 대상으로 서예교실이 열린다. 강좌는 오전과 오후 각각 세 시간 과정으로 하루 두 차례다. 30일 오후 강좌가 열리는 시간에 미술실을 찾았다.

10여 명 수강생이 수업이 시작되기도 전에 자리를 잡고 먹을 갈고 있다. 수강생들은 모두 중년을 넘긴 남성들인데, 서예 경력은 초보에서 미술대전 수상자까지 다양하다.

서예에는 먹과 벼루, 붓, 화선지 등 준비해야 할 도구들이 많다. 벼루는 무겁기 때문에 평생학습관이 제공하고, 먹과 붓, 화선지 등은 수강생들이 개인적으로 마련한다.

강좌를 맡은 오창림 선생은 먹을 가는 과정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오창림 선생은 “먹을 가는 과정과 붓을 쓰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근육이 같기 때문에 옛날 선비들은 오전에 시간을 두어 먹을 갈아 숙성시킨 후 오후 내내 글을 썼다”라며 “그냥 먹을 가는 것이 아니라 글 쓸 소재를 구상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오창림 선생은 “송나라 때 소동파는 70평생 먹을 갈고 글씨를 썼는데, 나중에는 ‘내가 먹을 갈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먹이 나를 갈았다’는 말을 남겼다”라며 “먹을 가는 과정에 인격을 수양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수업을 듣는 김현수 씨는 지난해 서울에서 제주로 이주했다. 서귀포에서 은퇴생활을 하는 와중에 서예교실에 참가하고 있는데 “재미있지만 생각만큼 잘 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현수 씨는 “세 시간 강좌 가운데 처음 40분 정도는 집중하기 어려운데 그 시간이 지나면 집중도 되고 글씨도 써진다”라고 말했다.

고성진 씨는 전직 초등학교 교사인데 퇴직 후에 서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5년 경력인데 광주광역시미술대전과 무등미술대전 등에서 서예로 각각 특선을 차지했다. 서예의 경지가 높아질수록 배우고 다듬어야 할 게 많다. 글씨를 쓴 후 오창림 선생에게 일일이 첨자 지도를 받는다. 지도를 받은 분위기가 사뭇 진지하다.

은퇴 후에 서예를 배우는 이들, 어쩌면 글을 닦기보다 인격을 닦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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