瀛洲吟社 漢詩 連載(영주음사 한시 연재) 14

五賢壇綠陰(오현단녹음)

                                      ▶小峰 玄治秀 (소봉 현치수)

 

五賢形勝正佳陵(오현형승정가릉) 오현단 형승에 언덕이 때마침 아름다운데

城址綠陰交好朋(성지녹음교호붕) 성터 녹음에서 좋은 벗과 교유하네

橘院書童聞讀冊(귤림서동문독책) 귤림서원 서동들이 책 읽는 소리 듣고

祭壇俎豆動恭膺(제단조두동공응) 제단 조두석에 공경하는 마음 인다

騷人古跡吟登榭(소인고적음등사) 시인은 정자에 올라 옛 자취 읊조리고

旅客餘痕顧立層(여객여흔고립층) 길손은 계단에서 남은 흔적 돌아보네

先哲遺留良識抱(선철유류양식포) 선철이 남겨 놓은 양식을 품어

發香舊態氣風稱(발향구태기풍칭) 향기 풍기는 옛 모습이 기풍 드러내는구려

영주음사와 귤림서원이 있는 오현단.(사진은 장태욱 기자)

◉ 解說(해설)

                                         ▶魯庭 宋仁姝 (노정 송인주)

이 시의 제목에서 말하고 있는 오현단에는 영주음사와 귤림서원이 있는 곳이다. 영주음사는 1924년, 제주 문사(文士) 123인이 창립한 제주도 한시 창작 단체이다.

1897년 제주에 유배된 김윤식은 제주에서 적거 생활을 하던 문인들과 제주 토착 선비들을 규합하여 귤원시회를 조직했다. 그러나 이 모임은 3년여 만에 김윤식이 이배(移配)되면서 해체된다. 그 뒤 1924년에 영주음사가 탄생한다. 이때 창립을 주도한 멤버들은 바로 귤원시회의 동인들이다. 대하실록 제주백년, 제21장 홍종시의 학문과 인간상에서는 “오래도록 명맥을 유지한 귤회는 김응빈이 그 바탕을 이어 후에 〈영주음사로 개칭, 오늘에까지 그 전통을 계승하고...”라는 내용이 있다. 이 자료는 영주음사의 출발점이 바로 귤원시회임을 명확히 밝혀주는 것이다. 위의 자료에 근거하면 영주음사는 122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가진 제주도의 유일한 문학 단체가 된다. 그리고 오현단에는 조선 시대 초기 및 중기에 제주로 유배되었거나 방어사로 부임했던 오현(五賢), 즉 김정, 송인수, 정온, 김상헌, 송시열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후학을 양성했던 귤림서원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시의 작가는 조선시대부터 후학을 양성했던 귤림서원 있고, 그리고 오랜 전통을 가진 영주음사가 있는 오현단 지경(地境)의 녹음(綠陰)에서 보고 느끼는 바를 시로 읊고 있다.

이 시는 수련(1, 2구) 1구의 두 번째 글자가 평성으로 시작되고 있어서 칠언율시 평기식의 시이다. 운자는 ‘陵(능), 朋(붕), 膺(응), 層(층), 稱(칭)’으로 모두 ‘증(蒸)’ 운통(韻統)의 글자들이다.

이 시의 수련에서는 오현단 녹음이 우거진 아름다운 언덕에서 좋은 벗과 교유함을 말하며, 자신의 지금 어디서 시를 짓고 있는지 그 위치를 언급하며 시상을 일으키고 있다.

수련의 시상을 이어서 전개하는 함련(3, 4구)에서는 귤림서원에서 글을 읽는 아이들의 목소리와 제단을 바라보며 오현에 대한 공경심을 나타내고 있다. 이 부분에서는 ‘橘院(귤원)-祭壇(제단) 書童(서동)- 俎豆(조두), 聞(문)-動(동), 讀冊(독책)-恭膺(공응)’으로 對(대)를 맞추고 있고, 글자 수를 ‘2-2-1-2’의 구조로 배치하고 있다.

경련(5, 6구)에서는 선조들이 남겨 놓은 자취에 대해 읊고 있는 시인들의 모습과 지나가는 길손들이 옛 흔적을 돌아보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도 ‘騷人(소인)-旅客(여객), 古跡(고적)-餘痕(여흔), 吟(음)-顧(고), 登榭(등사)-立層(립층)’으로 대구(對句)를 완벽하게 만들어 내고 있다.

마지막 련에서는 선철(先哲)들의 남겨 놓은 귤림서원의 문화유산과 오래도록 전해지는 영주음사의 시향(詩香)을 ‘양식(良識)을 품었다.’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으며, 그런 옛 모습에서 기풍이 드러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여름이면 오현단에 있는 영주음사 사무실 뒤로 고목(古木)들이 무성한 잎을 드리워 커다란 그늘을 만든다. 한여름 더위를 식히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무더웠던 여름도 가을 기운에 그 꼬리를 내리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지금, 이곳으로 나아가 바쁜 일상 잠시 내려놓고 가을 풀벌레 소리 들으며 옛 선조들의 시향에 젖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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