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의날 특집 7] 비양도, 2만6000년 전에 형성된 분석구

비양도 가는 뱃길. 이 바다는 삼별초의 항쟁 이후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기억한다.(사진은 장태욱 기자)
어망. 주민들은 최근 무슨 이유에서인지 고기가 잘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사진은 장태욱 기자)

제17호 태풍 '타파'가 남긴 상처의 후유증이 가시지도 않았는데, 다시 태풍이 발생해 북상한다는 소식이다. 설악산에는 벌써 단풍이 붉게 물들었다고 하는데, 태풍이 밀어올린 더운 공기로 제주도에는 무더위가 다시 찾아왔다.

돌문화공원관리소가 지난달 28일에 사회교육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비양도 지질 현장답사를 진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동참하기로 했다. 마침 세계유산본부(한라산연구부)의 전용문 박사를 초빙해 전문 해설도 전한다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다.

오전에 답사팀 일행과 비양도 도항선에 몸을 실었다. 출발해서 10분 남짓한 뱃길이지만 바다는 역사의 피비린내를 기억하는 현장이다.

1270년 진도의 용장성이 함락되기 직전 삼별초의 별장 이문경이 이 바다로 들어왔다. 3년 후 고려장수 고여림은 풀을 가득 실은 배 30척을 이 바다에 띄어 삼별초를 유인했고, 주력부대를 함덕포로 상륙시켜 삼별초를 격파했다.

원‧명 교체기에 원과 고려는 탐라로부터 끊임없이 말을 차출하려 했고, 탐라에 있던 몽고의 목호들은 고려 사신을 죽이고 난을 일으켰다. 최영의 군대가 ‘목호의 난’을 토벌하기 위해 들어온 길목도 이 바다였다.

19세기 중반 이전에는 왜구들이 들락거리는 소굴이었다. 장림목사가 1510년에 명월성을 지은 이유가 비양도에 들락거리는 왜구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비양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 고종 13년(1876)이라고 한다.

삶에 지친 사람들은 비양도를 한 바퀴 둘러보며 평화를 누릴 수 있다.(사진은 장태욱 기자)
과거 군인들이 초소로 썼을 것이다.(장태욱 기자)

비양도에는 '천년의 섬'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천 년 전에 섬이 바다에서 솟아났다는 <고려사>의 기록 때문이다.

일본의 저명한 지질학자 나카무라 신타로 동경대 교수는 <고려사>의 기록을 살펴본 후 목종 5년의 분화는 비양도이고, 목종 10년의 분화는 군산이라고 하였다. 이후 1000년 전 비양도의 분출은 오래도록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1000년 전에는 해수면이 현재와 비슷했기 때문에 분화가 일어났다면 바다 속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마그마가 수중에서 분출하여 물과 반응한다면 격렬한 수성폭발을 거친 후 화산재가 쌓여 응회환이나 응회구를 형성한다.

비양도가 제주의 일반적 오름과 같은 분석구(cynder cone)형태를 띠고 있다는 건 해수면이 현재보다 100m 정도 낮았던 시기에 육상환경에서 섬이 형성됐다는 의미다.

그런데 전용문, 고기원 박사 등을 포함해 연구자 6인은 비양도의 지질을 연구하고 지난 6월에 논문 ‘제주도 북서부 비양도 화산체의 지질과 화산활동’을 발표했다. 이들은 용암류의 절대연대 측정을 통해 비양도의 형성시기를 약 2만6000년 전이라고 제시했다.

비양봉 등대.(사진은 장태욱 기자)
펄랑못.(사진은 장태욱 기자)

비양도는 동서로나 남북 간 지름이 대략 820m에 이른다. 북동-남서 방향으로 뻗은 축의 길이가 970m에 이르러, 타원형 섬의 장축에 해당한다. 섬의 둘레로 산책길이 조성됐는데, 길이가 3km 안팎이어서 걸어서도 한 시간 남짓이면 일주할 만하다.

포구 서쪽에 섬에 드물게 밭이 조성되어 있는데, 그 틈으로 비탈진 산길을 오르면 비양봉의 정상에 오르게 된다. 비양도 분석구는 분화구 주변에 두 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가장 높은 곳은 고도가 해발 114m에 이른다. 주봉의 정상에 흰 등대가 있는데 주변 바다와 어우러져 낭만적인 정취를 더한다.

섬의 북서쪽 ‘코끼리 바위’ 주변에는 직경이 최대 7m, 무게 20톤 이상에 달하는 초대형 화산탄이 다수 분포한다. 앞서 언급한 논문에 따르면, 무게가 20여 톤에 달하는 비양도 초대형 화산탄의 최대 비행거리는 300m 정도다. 이들 초대형 화산탄의 꼬리방향을 감안 할 때, 화산탄을 분출한 분화구는 ‘코끼리 바위’ 서쪽 약 300m 지점(현재의 바다)으로 추정된다.

즉 비양도의 화산활동은 최소 두 차례 서로 다른 위치에서 이뤄졌다. 지금의 비양봉이 형성되기 이전에 섬의 서북부에서 화산활동이 먼저 있었는데, 파도의 침식으로 고화산체의 해수면 상부는 사라져버렸다.

섬의 동쪽에 자리 잡은 비양분교 인근에는 해수가 채워져 호수를 이룬 해적호(lagoon)가 있는데, 사람들은 이 해적호를 '펄랑못'이라고 부른다. 이 호수는 지하를 통해 해수가 드나들기 때문에 조수운동과 연동하며 수면의 높이가 변한다.

코끼리 바위와 주변에 화산탄을 분출한 화산은 비양봉 화산체와는 다른 것이다. 지금 섬의 서북부 바닷속에 화산을 분출했던 분화구가 있었을 것이다.(사진은 장태욱 기자)
애기업은돌.(사진은 장태욱 기자)
호니토는 고온의 가스가 분출되는 통로였기 때문에 바위 내부가 비어 있다.(사진은 장태욱 기자)

비양도 동북쪽 해안에는 색깔과 모양이 매우 독특한 바위들이 분포한다. 색깔이 붉고 촛농이 초를 타고 흐른 것처럼 표면이 울퉁불퉁한 바위들이 30개 가까이 있다. 호니토(hornito)라 불리는데, 이 바위들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애기업은돌'이라는 바위다.

전용문 박사는 용암이 분화구를 통해서 분출되는 도중에 당시 육지의 습지와 만났을 경우, 수중기가 갑자기 가열돼 위로 솟구치며 굴뚝과 같은 관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애기업은돌 주변에는 중간이 절단된 호니토가 있는데, 수중기의 통로였기 때문에 그 내부가 관처럼 텅 비었다. 비양도의 호니토는 그 희귀성을 인정받아 천연기념물 제 439호(제주 비양도 호니토)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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