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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 폐가의 주인은 어디서 뭐하며 살까?[섬의날 특집 8] 마라도, 바다 위에 떠 있지만 바다로 나갈 수 없던 섬
장태욱 | 승인 2019.10.15 00:46
마라도. 모슬포 남쪽 11km 거리에 있다. 운진항에서 약 25분 뱃길을 달리면 도착한다.(사진은 장태욱 기자)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도 놀라다고 했는데, 19호 태풍 하기비스 때문에 끝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하늘이 도왔는지 태풍이 동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모처럼 잔잔한 가을바다를 맛보기 위해 모슬포 운진항에서 마라도행 도항선에 몸을 실었다.

오후 2시경에 출발한 배는 잔잔한 물살을 가르기 시작했다. 배는 출발한 지 25분쯤 후에 마라도 자리덕 선착장에 닿았다. 선착장에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해안가 절벽에 커다랗게 뚫린 해식동굴들 때문이다.

마라도를 구성하는 암석과 관련해 모슬포‧한림도폭 조사에는 광해악현무암이라 기록됐다. 마라도가 형성될 당시는 이 일대가 육지였는데, 지각을 뚫고 현무암질 용암이 분출했다. 용암이 냉각되는 과정에 규칙적으로 갈라지며 주상절리가 발달했다. 이후 해수면이 상승해 섬이 되자, 파도가 주상절리의 틈을 파고들어 바위를 깎아 절벽을 만들고 절벽 구석구석에 큰 동굴을 뚫었다.

마라도는 동서로 0.5Km, 남북으로 1.25Km, 돌레 4.2km에 이르는 섬으로 남북으로 길쭉한 고구마 모양의 섬이다. 섬의 넓이는 0.3㎢에 이른다.

마라도는 사방이 절벽으로 둘러싸였다. 파도의 끊임 없는 침식으로 해식동굴과 대문바위 등 다양한 지형을 만들었다.(사진은 장태욱 기자)

섬의 가운데에 마라도 교회와 제주기독교100주년 기념비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주변이 마라도에서 가장 높은 지역인데, 고도는 34m다. 교회 주변 동쪽은 대체로 높고, 서남쪽으로는 대체로 낮은 구릉 형태를 띠고 있다.

조선 후기까지도 마라도는 사람이 살지 않은채 방치돼 숲이 무성한 섬이었다. 그런데 고종 21년(1884)에 경작이 허락되자 사람들이 살기 위해 숲을 태웠는데, 타는 연기가 무려 보름동안 지속됐다고 전한다.

당시 모슬포에 살던 주민 김 씨와 나 씨, 이 씨 등이 섬에 정착했는데, 주로 물질과 고기잡이로 생활을 영위했다. 그런데 포구가 인정되지 않아, 큰 배를 만들 수도 없는 처지여서 어업은 크게 번성하지 못했다.

이후 일본이 조선에 진출한 후 조선총독부는 <한국수산지>(1911)를 작성했는데, 마라도에 대해 ‘가파도에서 남쪽으로 약 3리 거리에 있는데, 둘레가 10리가 되지 않는 낮고 평평한 섬이다. 선박을 정박할만한 항만은 없고 또, 식수도 없다’고 기록했다. 그리고 ‘이 부근 바다에는 어린 상어가 많아 자망으로 활발하게 어획한다. 그 외 삼치, 전복, 미역 등이 난다’고 했다.

일본인들이 ‘방어’를 ‘상어’로 오인한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다. 아무튼 당시 일본인들이 제주의 부속섬에 관심을 가진 건 해산물을 수탈하기 위해서였다. 일본인 잠수기선들이 제주 해안에 진출해 해산물을 무더기로 약탈하던 시기였다.

민속학자 고광민은 <제주도의 생산기술과 민속>(2004)에 마라도의 어로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마라도는 낭떠러지(제주어로 ‘덕’)로 둘러싸인 섬이다. 포구가 발달될 수가 없는 곳이어서 바다 한 가운데 있으면서도 섬사람들은 쉽게 바다로 나갈 수가 없었다.

국토최남단비.(사진은 장태욱 기자)

그래서 뭍에 올려놓았던 작은 배를 타고 가까운 바다밭에서 어로에 종사하거나 ‘덕’ 위에서 물고기를 잡았다. 자리덕이라는 이름도 ‘그물로 자리돔을 잡던 덕’을 의미하는 지명이다. 마라도에는 자리덕 외에도 살레덕과 장시덕이라는 지명이 있다.

섬에 올라 가장 처음 마주하는 것은 서로 ‘원조’를 내세우는 짜장면집들이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최근에야 입도한 자들이다. 130여 년 전에 섬에 들어와 일터를 가꾼 사람들의 후손들은 어떻게 살까?

자리덕 선착장에서 반시계방향으로 해안을 둘러보는데, 가파분교 인근 해안에서 두꺼운 바위기둥이 섬의 지반을 받치고 있다. 사람들이 ‘대문바위’라고 부르는 기둥이다. 파도가 오랜 두드림 끝에 주변 바위를 뚫고 지났기 때문에 남은 바위가 거대 신전의 기둥처럼 절벽을 받치고 있다.

섬의 동남쪽 끝단에 국토의 최남단을 알리는 비석이 있고, 최남단비 아래 해안가에는 주상절리가 파도의 침식에 깎여 바닥만 남은 대지가 있다. 마치 건물의 바닥에 다양한 타일로 마감공사를 해놓은 것 같은데, 주변에서 낚시꾼들이 한가롭게 세월을 낚고 있었다.

최남단비석을 지나 북서쪽으로 향하는 길은 구릉 오르막인데, 잠시 구릉을 오르고 나면 고구마 모양의 성당과 마라도 등대가 보인다. 마라도 등대 동쪽에 서면 북쪽으로 가파도와 송악산, 산방산, 한라산 등이 병풍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마라도 성당과 등대.(사진은 장태욱 기자)

등대를 지나면 내리막이다. 그리고 완만하게 비교적 넓게 초원이 펼쳐진다. 초원 위 억새가 춤을 추는 경관은 마라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다.

초원의 끝, 섬의 북서쪽에 돌담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기도처가 있다. 주민들이 할망당 혹은 애기업개당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오래 전 해녀 밑에서 애기를 돌봐주며 밥을 얻어먹던 애기업개 소녀가 있었다. 그런데 소녀는 해녀의 물질을 따라갔다 죽었고, 주민들은 당을 지어 그의 죽음을 위로한다.

애기업개당.(사진은 장태욱 기자)
마라도 자연경관은 아름다운데, 주민들이 터전을 살펴보면 걱정이 앞선다.사람이 떠난 폐가를 쉽게 볼 수 있고, 영업을 하다 방치된 폐카트도 보인다. 카트 영업을 금지하기 위해 시청에서 방지석을 설치했던 자리가 흉터처럼 남았다.(사진은 장태욱 기자)

잠시 시간이 남아 주민들이 사는 마을 가운데를 둘러봤는데, 주민들이 떠나고 폐허가 된 집들도 눈에 띄고, 예전 영업을 하다 버려진 폐카트도 보였다. 주민들이 살기 어려운 섬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태욱  taeuk3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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