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장태욱 편집국장

<새는 좌&#8231;우의 날개로 난다>와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사회와 국가에서 오른손과 왼손의 균형을 강조한다.

군사독재 시절 사상의 은사라고 불리던 리영희 선생은 <전환시대의 논리>(1974)를 출간해 냉전과 반공주의를 앞세운 독재정부를 비판했다. 책은 당시 청춘의 심장에 불을 댕겼고, 선생은 '사상의 은사'로 인정을 받았다.

박정희와 전두환, 노태우 정권을 통과하는 동안 선생은 여려 차례 저술을 발표했다. 그때마다 책은 청년들의 필독서가 됐고 선생은 교수직에서 해직되고 옥고를 치르기를 반복했다. 선생에게 사상의 세례를 받은 수많은 젊은이들은 민주화운동에 투신해 수배와 구속, 고문 등 고초를 짊어져야 했다. 

노무현 대통령을 소재로 만든 영화 ‘변호인’에서 ‘부림사건’에 연루된 학생들이 읽었다는 책 이름 가운데도 <전환시대의 논리>가 나온다. 책을 읽었다는 사실로만도 학생들을 고문할 만큼 전두환 정권은 사악했고 선생의 영향력은 지대했다.

그리고 1994년 7월에 평론집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책을 발간했다. <전환시대의 논리>를 펴낸 지 20년 만이었다.

‘인간보다 못한 금수의 하나인 새들조차 왼쪽 날개와 오른쪽 날개를 아울러 가지고 시원스럽게 하늘을 날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우주와 생물의 생존 원리가 아닐까? … 8․15 이후 근 반세기 동안 이 나라는 오른쪽을 신성하고 왼쪽은 약하다는 위대한 착각 속에 살아왔다. 이제는 생각이 조금은 진보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새보다 낫다고 할 수 있겠는가?’

본문의 일부분인데,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명제가 당시에는 답답한 사회에 사이다 같은 선언이었다.

그동안 <전환시대의 논리>이후 40여 년,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이후 20여 년, 우리사회는 숱한 변화를 겪었다. 형식적으로나마 사상의 자유도 보장되고, 이념을 기준으로 여러 정당도 설립됐다.

그런데 아직도 군대와 경찰, 공직사회 등 자신들의 소신을 밝히지 못하는 집단이 많다. 참여정부 시절 국정홍보처장을 지낸 인사가 남긴 “공무원에게 영혼이 없다”라는 말이 오래도록 회자됐는데, 나라의 살림살이를 책임지면서도 일에 대한 자부심이나 소신이 없다는 건 공무원 개인으로서나 국가로서 불행한 일이다.

비슷한 내용은 홍세화 선생의 글에도 등장한다. 홍세화 선생은 2002년에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을 통해 프랑스 사회의 거울로 한국의 현실을 조명했다. 프랑스 경찰의 시위를 프랑스 경찰이 가로막는 현장을 소개한 대목은 흥미롭다. 시위경찰은 사복을 입고 시위를 막는 경찰은 정복을 입고 있는데, 시위 경찰이 시위를 막는 경찰을 즐거운 표정으로 조롱하는 장면도 소개했다.

다른 집단과 마찬가지로 경찰도 사회적 불만이 있고, 경찰조직 내부에도 문제가 있다. 그렇더라고 이를 공론에 붙여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다면 불만과 문제를 덮고 밀봉하는 것보다 사회에 훨씬 유익하다. 그런 취지에서 프랑스 사회는 경찰공무원 노조의 단체행동권까지 보장한다.

홍 선생은 이 대목에서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브르디외의 ‘국가의 왼손’ 개념을 소개한다. 고위 정치인과 고위 관리, 국영기업의 사장 등이 ‘국가의 오른손’이라면 중하급 공무원 등은 ‘국가의 왼손’에 해당한다.

국가의 왼손을 키워서 오른손의 횡포를 막는 일은 중하급 공직자들의 권익을 지키는 일일 뿐만 아니라 국가를 더 투명하고 건강하게 유지하는 방안이다.

오른손과 왼손의 견제와 균형은 정부 부처사이에도 적용된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개발과 성장을 책임지는 게 오른손의 역할이라면, 절차적 투명성을 확보하고 성장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은 왼손의 책임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등이 오른손 역할을 맡으면 환경부와 고농노동부는 왼손 역할을 해줘야 한다. 그래야 정부가 건강해지고, 국가에 균형이 선다.

영국의 유력 언론은 최근 '눈길을 끄는 자본의 쓰레기들'로 표현한 세계 10대 건축물·시설에 한국의 4대강 사업을 포함했다. 비용 22조원을 갉아먹고도 홍수예방이나 수질개선효과가 전혀 없다는 게 선정의 사유다. 대재앙을 몰고 올 사업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정부 내에 저항하는 부서가 없었다는데서 오른손만 인정되는 정부의 병폐를 확인할 수 있다.

이강래 도로공사 사장이 전국의 낡은 가로등을 교체하면서 형제들이 운영하는 업체가 부품을 납품하도록 해 특혜를 준 사실이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이명박의 4대강 악몽과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이 기억에 선명한 상황에서도 이런 일이 버젓이 일어나는 것은 도로공사에 왼손의 역활이 여전히 작동하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최근 국토부가 제출한 제주 제2공항 사전환경영향평가 초안에 대해 환경부가 보완을 요청했는데, 국토부가 별다른 수정을 거치지 않고 본안을 작성해 환경부에 다시 제출했다고 한다. 국가의 오른손이 왼손을 얕잡아보는 수작이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듯, 국가도 왼손과 오른손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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