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소개] 서명숙의 서귀포를 아시나요(마음의 숲, 2019)

책의 표지.

가수 조미미가 1970년대에 부른 노래 ‘서귀포를 아시나요’가 있다. 당시 작사가인 정태권이 서귀포에 4박5일 여행을 다녀갔는데, 그 감흥을 차마 그냥 흘려보낼 수 없어서 노랫말을 썼다. 노래는 당시 크게 히트를 쳤다. 노래는 ‘밀감향기 풍겨오는 가고싶은 내고향, 칠백리 바다건너 서귀포를 아시나요’로 시작한다.

제주올레길로 걷기 열풍을 일으킨 서명숙 이사장이 《서귀포를 아시나요》를 펴냈다. 옛 노래 제목을 책의 제목으로 차용한 듯 하다. 책도 노래처럼 서귀포가 고향인 사람들의 마음을 잘 담았다. 책은 고향 서귀포를 매일 걸으며 일반인들이 잘 몰랐던 서귀포의 신비와 아름다움, 그 속에 가려진 아픈 역사를 조명했다. 그 속에는 가족, 특히 아버지의 절절한 사연도 있다.

서명숙은 그동안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올레여행》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 등 주로 제주의 길과 문화를 탐색했다면 이번엔 오롯이 자신이 나고 자란 서귀포의 길을 걸으며 색다른 풍경, 생태, 사람, 역사에 천착했다.

이 책은 마치 유적지의 보물을 찾아 걸어 들어가는 사람처럼 페이지마다 흥미롭고 새로운 서귀포 이야기를 풀어낸다. 서귀포에서만 보이는 무병장수의 별 노인성, 서귀포에서 보면 다른 모습인 한라산 설문대할망, 생태적으로 잘 보존된 다섯 개의 도심공원 등 저자가 걸음걸음 찾고 보고 발견한 풍경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서명숙은 터키 이스탄불과 프랑스 프로방스 못지않은 중층적 매력을 지닌 서귀포라는 소도시에 켜켜이 쌓인 역사의 지층도 들췄다. 서복공원 절벽에서 스러진 4·3 희생자들, 일제강점기 강제노동에 시달린 제주 삼촌들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을 걷고 또 걸으며 아름다운 풍경에 가린 슬픔을 실감하기도 했다. 특히 2020년이면 50주기를 맞는 서귀포판 세월호 ‘남영호 사건’의 악몽을 희생자 가족의 증언으로 생생하게 소환하며 우리가 왜 아픈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묻는다.

삽화가 더해져 저자의 절절한 마음이 잘 드러난다.

인민군 포로 출신인 아버지와 가시리 출신인 어머니 등 가족사와 관련된 얘기도 흥미롭다. 백두산 자락 북중 접경지역 무산이 고향인 아버지는 북에 두고온 아내와 자식들이 있다. 백두산 여행길에 올랐을 때 아버지 생각이 간절해 서러운 눈물을 쏟았다.

저자는 서문에 ‘이책이 서귀포의 모든 것을 담아내고 설명하는 유일한 책이 아니’라고 전한다. 도시든 시골이든 날마다 걷다보면 뜻밖에 풍경을 만나게 되고 그 속에는 애달픈 사연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에 대한 개인적 눈뜨임 같은 것을 기록했다는 말이다. 어쩌면 길가 일상의 풍경 속에서 내면에 숨어있던 자신의 목소를 듣는 것일지로 모른다.

책 중간에 페이지 양쪽을 가득 채운 삽화들이 있다. 어반 스케치 박지현 작가가 그린 풍경화들인데, 서귀포의 풍경들을 정겹고 평화롭게 잘 묘사했다. 고향 서귀포를 향한 저자의 절절한 사랑이 그림이 더해져 잘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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