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송주연 서귀포가정행복상담소 소장

폐막식에서 연설하고 있는 서지현 검사.(사진은 한국여성의전화 제공)

지난 한 주, 5박6일의 일정으로 대만 까오슝에서 열리는 세계여성쉼터컨퍼런스에 다녀왔습니다. 캐나다, 미국, 네덜란드에 이어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개최되었는데, 여기에는 여성폭력 근절을 위해 활동하는 세계 각국의 여성폭력 활동가, 연구자, 학생, 정부기관 종사자, 정책과 입법 제안자 등 세계 120여 나라에서 1400여명 참석한 이번 대회에 한국은 제주여성인권상담소·시설협의 25명을 포함해 전국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협의회와 한국성폭력상담소, 여성가족부 등 총 75명의 여성폭력피해자 지원 단체 및 관계자들이 참여했습니다.

비가 많이 온다는 대만이었지만 엿새 동안 화창하고 청명한 날씨 덕택에 대만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주제가 ‘영향력과 연대’로, 세계 각국의 쉼터 활동가들 사이의 네트워킹을 통해 다른 국가들의 쉼터 운영과 활동들에 대해 배우고, 여성을 상대로 행해지고 있는 젠더폭력 종식을 위한 협력이 행사의 취지입니다. 언어와 인종, 문화와 국가는 달라도 여성폭력분야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공감대로 행사장인 고웅전람관은 후끈하고 열정적인 분위기로 달아올랐습니다. 떠오르는 이슈, 예술과 운동, 쉼터 운영과 사회 복지의 혁신적인 방식, 정책과 입법, 평등과 경제적 역량강화 등 5개의 핵심주제를 중심으로 나흘간 7개의 대강연과 패널토론, 63개의 워크숍이 숨 가쁘게 진행되었습니다.

지휴영GNWS 회장은 ‘우리는 서로 공유하고 격려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함께할 때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중략) 환경이슈와 더불어 장애를 가지고 있는 여성들에 대한 차별, 성소수자, 이주여성, 소수 민족 여성 등 특별한 니즈를 가지고 있는 여성들, 차별 위치에 있는 여성들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는 개회사를 했습니다.

홍콩 대표인 린다 웡은 홍콩의 경찰들이 신체적, 성적으로 시위자들을 폭행하고 있다고 고발하면서 “이러한 성폭력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상대를 억압하고 창피를 주기 위한 것이며, 성폭력 자체에는 힘을 과시하기 위한 행위로 이루어진다. 약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행위인 성폭력은 여성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남성을 대상으로 한 성적 폭력도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조사가 필요하다”고 호소했습니다. 대만의 변호사로 활동하는 빅토리아 쉬는 2009년에 LGBT인권그룹을 만들어 올해 2019년 5월 동성결혼법이 통과가 되기까지 활동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아직까지도 대만사회에서 호모포비아를 경험한다. 동성결혼이 허용되었으나 아직까지도 사회의 편견으로 주변에 알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강연 <예술과 운동>에 발언하고 있는 최영미 시인.(사진은 한국여성의전화 제공)

한국여성의전화는 ‘한국 최초의 쉼터 32년, 성과와 한계:상호의존적인 자립을 향한 실험들‘이라는 주제로 워크숍을 열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최영미 시인이 토론회의 토론자로 초대되었는데, 그녀는 2017년 한 잡지의 편집장이 성평등에 대한 시를 요청해서 ’괴물‘이라는 시를 썼고, 고은 시인의 성폭력을 폭로하면서 미투운동이 점화되었음을 알렸습니다. 폐막식에서는 서지현 검사가 대미를 장식했습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8년 침묵 끝에 여성 검사들이 같은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기 위해 미투운동에 함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내용입니다. 물론 성폭력은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 가해자의 잘못이며, 채용이나 성차별 문제와 친밀한 관계 내 폭력 등 한국의 성차별과 성폭력 현실을 설명하는 어조는 단호했습니다.

6일간의 일정이 숨 가쁘게 돌아가는 와중에도 25명이 함께 움직이다보니 유쾌하고 신나는 분위기가 넘쳐흘렀습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자신을 ‘하나의 점처럼, 배경처럼’ 찍어달라고 주문하기도 하고, 너무나도 자연스레 어울렁더울렁 서로를 챙기고 배려하는 모습과 매순간순간에 몰입하는 모습 역시 감동적으로 다가들었습니다. 물론 가장 큰 소득은 가부장제에 대한 여성으로서의 동질감을 국경 너머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돌아온 주말, TV 속 뉴스에서는 연일 홍콩의 송환법 반대 시위와 관련된 보도가 나옵니다.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 과정에서 여성들의 인권이 심각하게 유린되는 것이 지구상의 60억 인구 중 절반에 달하는 30억 여성의 작금의 현실입니다. 마음이 참 무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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