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송주연 서귀포가정행복상담소 소장

송주연 서귀포가정행복상담소장.

저희 서귀포가정행복상담소는 사회복지 현장실습이 가능한 기관입니다. 먼저, 실습을 시작하게 되면 가정폭력과 성폭력, 성매매에 대한 기본지식의 습득을 위하여 가정·성폭력전문상담원양성교육 교재와 인터넷 검색 등 자료를 모아서 보고서를 작성토록 합니다. 그리고 여성폭력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하여 독후감을 제출하도록 하는데 가정폭력은 정희진의 ‘아주 친밀한 폭력’을, 성폭력에 있어서는 은수연의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를 필독서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지난 11월 22일, ‘찾아가는 여성폭력 예방교육’의 도내 주관기관인 제주YWCA통합상담소에서 열린 강사 워크숍은 작가 은수연를 강사로 초빙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녀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대학교 1학년까지 장장 9년간 친부에게 성폭력을 당했습니다. 폭력이 9년간이나 지속되었던 이유는 가해자가 아버지였다는 것, 가족으로부터 아버지의 폭력을 잠시 가라앉히는 ‘도구’로 이용되고 희생되었다는 것입니다. “딸에게 그런 짓을 했던 사람이 아내에게는 폭력이 오죽했겠어요. 제 남동생은 말이 없습니다”라는 그녀의 얼굴에 잠시 지나가는 어두움이 느껴졌습니다.

그녀는 끊임없이 친부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탈출을 시도하나 다시 붙잡혀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지요. 그녀는 결국 집을 벗어났고, 상담소의 도움을 받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한다면 현재의 은수연 작가는 긴 시간 동안 개인상담과 글쓰기 지도를 받아왔고, 현재는 상담사로 피해자를 현장에서 만나고 있으며 또 강사로 폭력예방을 위하여 전국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정말 많은 고마운 사람들을 만났고,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네 시간 넘게 강의를 듣는 우리들에게 강사는 성폭력의 문제를 현장에서 계속 고민하라고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나의 인식에 대한 점검과 피해자와 끝가지 함께 할 수 있는가를 계속 던집니다. 그리고 ‘나는 성폭력을 넓고, 깊게 문제를 이해하고 톺아볼 수 있는가’를 질문합니다.

그녀가 상담 받는 동안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말은 “니 잘못이 아니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야”라는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해자는 “조용히 해, 말하지 마”, “말해도 소용없어”, “달라지는 것은 불가능해”라면서 끊임없이 협박하고, 으름장을 놓거나 위협하고 혹은 달래기도 하면서 피해자를 침묵하게 만듭니다. 아닌 게 아니라 상담 현장에서 성폭력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게 됐습니다.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라면서 눈물을 흘리며 절규하는 피해자는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2012년에 한겨레와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그녀의 사진은 늘 뒷모습입니다. “어떤가요? 어떤 느낌인가요? 피해자인 나보다도 어쩌면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서, 가부장제와 가족 보존을 위해서, 정상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모습, 그런 사진이 아닌가요?”라고 던지는 질문에 어쩌면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우리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잘한 꽃무늬 프린트가 들어간 짙은 청색 시폰 원피스를 입은 모습은 가녀려 보였으나 결코 그녀는 여린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치유는 삶의 목표가 아니라고 힘주어 말한 그녀는 영화 ‘노예 12년’의 솔로몬 노섭의 말을 끝으로 강의를 마무리했습니다. “나는 생존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나의 삶을 살고 싶다”고 말입니다.

친부인 ‘가해자’는 2019년 1월에 죽었다고 합니다. 소식을 들으면서 그녀는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로 잠시 고민과 갈등에 빠졌다고 합니다. 만감이 교차하는 인간적인 고뇌의 단면을 느끼면서 전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야기하듯 구어체로 쓰인 쉬운 이 글의 갈무리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성폭력의 정의를 통하여 느낄 수 있습니다. ‘성폭력은 성의 문제가 아닌, 폭력의 문제’라는 것을요. 그녀는 ‘생존자’가 아닌, 오늘을 잘 살아가고 싶은 ‘한 사람’뿐인 것을요. 그녀에게 깊은 존경을 보냅니다. 그리고 내 주변에 혹 있을지도 모르는 또 다른 ‘은수연’에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응원과 격려를 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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