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송주연 서귀포가정행복상담소 소장

서귀포항 절경을 가리는 펜스.(사진은 서귀포신문 DB)

제주로 옮겨온 지 이제 삼년의 시간이 다 되어 갑니다. 한라산과 오름과 올레길과 해안도로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제주살이에서 가장 위안이 되는 것은 파란 바닷물과 함께 어디에서든 한라산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산 중턱에 단풍에 이어 낙엽이 흩어지는 이맘때의 한라산은 시루떡에 켜켜이 색색으로 뿌린 고명처럼 초록과 분홍빛과 갈색, 푸른빛이 돌기도 합니다. 가끔 밤새 눈이라도 오면 하얀 고깔모자를 쓴 모습으로 새초롬이 그 자리에 여전히 앉아있기도 합니다.

제주에 살면서 한라산처럼 어디에서나 만나는 이야기는 설문대할망의 전설입니다. 서명숙올레센터 이사장님이 펴낸 ‘서귀포를 아시나요’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끌어와 봅니다.

「그녀는 동북아에서도 손꼽히는 신령한 산 일명 영주산으로도 불리는 한라산을 만들어냈고, 그 한라산만으로는 너무 밋밋하고 심심하다는 생각에 흙으로 365개의 오름을 빚어 제주 이곳저곳에 뿌려놓았고, 오름 군락을 지켜보며 매우 기뻐했고, 한라산에 머리를 베고 누우면 두 발이 서귀포 바닷가 범섬에 가닿아서 범섬에 커다란 동굴 두 개가 뚫렸을 만큼 키가 크고 체구가 장대했고, 위쪽이 평평한 성산일출봉은 그녀의 빨래판이었고, 우도는 원래 따로 떨어진 섬이 아니었는데 설문대할망이 성산읍 오조리 식산봉과 성산리 일출봉에 양다리를 걸치고 앉아 오줌을 싸자 육지가 패이며 바다가 그 사이로 들어와 섬이 생겼고 오줌 줄기가 얼마나 셌는지 바다가 깊이 패여 성산과 우도 사이 바다는 물살이 유난히 빠르게 되었고, 할망이 치마폭에 물을 가득 담아서 이 마을 저 마을에 조금씩 나눠주어 용천수가 솟아나게 해 준 덕분에 마을사람들이 바닷물 아닌 단물을 마시게 되었고, 할망이 그만 물조절을 잘못 하는 바람에 그 물을 못 나눠준 마을은 용천수가 솟지 않아서 다른 마을로 허벅을 지고 물을 길러 다녀야만 했고, 육지와 연결되지 않아서 고립감을 느낀 제주 사람들이 할망에게 제발 다리를 놔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자 할망은 자신에게 맞는 옷을 만들어주면 다리를 놔주겠노라고 약속을 했고, 사람들은 부지런히 할망의 옷감을 짜기 시작했고, 하지만 사람들이 총동원되어 지은 옷감을 모아서 드렸지만 할망의 몸을 다 감싸기에는 천이 부족했고, 할망은 거의 다 되어가던 다리 공사를 화가 난 나머지 중단해 버렸고, 그래서 제주는 끝내 섬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더라」

서귀포는 진시황의 명을 받아 불로초를 구하러 온 서복이 돌아간 포구라는 연유로 생겨난 지명이라고 하지요. 택시 기사님이 얘기해 준대로 서귀포 칠십리는 조선시대 정의현이 있던 성읍마을에서 서귀포구까지의 거리를 나타내는 개념이었지만 요즘에는 서귀포의 아름다움, 옛 모습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단어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그 압권은 단연코 천지연폭포가 자리한 서귀포항구입니다. 세연교를 건너서 저어기 새섬이 자리하고 있고, 새벽녘 왁자한 항구를 빠져나오면 이중섭이 아내와 아이들을 늘 그리워하며 기다렸다는 자구리해변을 지나 4・3의 슬픈 구전이 내려오는 소낭머리의 기암괴석과 소나무, 검은여에 널브러진 많은 현무암들, 그리고 낚시꾼의 천국이라는 섶섬에 이르기까지 이곳의 풍경은 처연하도록 아름답습니다.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날이 화창하면 화창한대로 서귀포는 아름답다는 외마디 비명으로도 다 담아내지 못하는 날 시퍼런 비장미가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소라의 성 근처 아무도 모르게 내동댕이쳐진 듯 외로이 서있는 빛바랜 남양호위령비이며, 서귀포항구의 배들을 가둬놓은 듯한 시야 차단용 하늘색 철창을 걷어내고 싶어 하는 바람은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닐 겁니다.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그리고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드는 서귀포의 옛이야기는 우리가 함께 풀어가야 할 서귀포의 ‘못 다한 숙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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